시작
일시: 2019년 11월 20일 1930 - 2130
코스: 월드컵경기장역 - 월드컵공원 - 한강 공원 - 난지나들목 – 노을공원 주변길- 메타세쿼이아 길
- 희망의 숲길 - 월드컵 경기장 역
날씨: 영상 2도
거리: 8km
누적거리: 8km
오늘부터 걷기 일기를 쓰기로 했다. 걷기 모임에 나가서 걷거나 또는 홀로 걷는 시간과 거리를 기록하고, 그 날의 날씨, 주변 상황, 경치, 개인적인 느낌들을 정리하고 싶어서 시작했다. 서울대 행복연구소 최인철 교수는 행복의 조건으로 “자유, 유능, 관계”를 언급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자유,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뚝심 있게 진행하며 느끼는 유능감, 그리고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가 행복의 중요한 조건이라고 했다. 걷기를 좋아하고, 걸으며 사진 찍고, 후기 쓰는 것을 좋아한다.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먀 하루하루 즐겁게 살고 싶다. 또한 걸은 거리를 기록하여 기억하고 싶다. 언젠가 걸을 수 없게 될 때 이 기록들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줄 수도 있다.
다니엘 페나크의 책 ‘몸의 일기’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죽기 직전까지 자신의 몸에 대한 변화와 느낌을 글로 기록하여 딸에게 죽기 전에 전달했고, 이 기록을 딸이 책으로 발간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만년필 드는 것이 히말라야 산 오르는 것보다 더 힘들다.’라는 글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제목을 이 책의 제목과 비슷한 ‘걷고의 걷기 일기’로 결정했다. ‘걷고’는 걷기 동호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닉네임이다. 동호회 활동에서는 익명을 사용하는 관례가 있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여러 가지 고민하다 ‘걷고’라는 이름으로 결정했다. ‘걷고’는 진행형으로 ‘걷고 또 걷고’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계속 걷고 또 걷는 '걷고'이다. 삶도 진행형이다. 티베트어로 사람의 의미가 ‘걷는 자’라고 한다. 걷고 또 걸으며 오늘을 사람답게 살고 싶다.
오늘은 걷기 동호회 ‘걷기 마당’에서 길 안내를 진행하는 날이다. 나 포함 13명이 참석하여 길을 걸었다. 추운 날씨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낙엽이 뒹굴고 있다. 그 모습이 쓸쓸하고 처연하다. 가로수 밑에 쌓여있는 낙엽은 부둥켜 안고 서로의 온기로 추위를 견뎌내고 있었다. 보기 좋다. 혼자는 외롭고 춥고 쓸쓸하지만, 함께 하는 세상은 따뜻하고 풍요롭고 아름답다. 한 분은 우엉 차를, 다른 한 분은 무 차를 준비해 오셔서 잠시 쉬는 시간에 차를 마시며 감사함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분들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몸도 마음도 따뜻해진다.
희망의 숲길 진입로에서 길이 울퉁불퉁하기에 조심하라고 참석자 분들에게 얘기하자마자 내가 앞으로 곤두박질쳤다. 손을 주머니에 넣고 걸은 것이 큰 실수였다. 제일 먼저 안경과 눈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둘 다 무사하다. 윗니와 윗입술 안 쪽이 부딪치며 조그만 상처가 났고, 인중, 왼쪽 콧등과 오른 손등에 자그마한 상처가 났다. 오른쪽 무릎이 쓰라리지만 확인할 길이 없다. 아픈 것 보다 집에 가면 듣게 되는 아내의 잔소리가 더욱 신경 쓰인다. 바닥에 멍석 같은 덮개가 깔려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만약 아스팔트나 맨 땅이었다면 상처가 더욱 크게 났을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은, 걷기를 마치고 빙 둘러서서 마무리 인사를 하는데, 인중에 난 상처가 보이지 않게 가로등을 등지고 서서 마무리 인사를 했다. 창피할 일은 아닌데도 괜히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참석자들에게 상처를 보여주기 싫었다.
앞으로 걷기 전에 스트레칭을 하고 손을 주머니에서 빼고 걸어야겠다. 하루 지나니 몸이 여기저기 쑤셔온다. 스트레칭으로 몸을 충분히 풀어준 뒤에 걸으면 다칠 위험이 적어질 것이다. 특히 겨울에 손을 주머니에 넣고 걷는 것도 아주 위험한 짓이다. 그나마 큰 상처가 아닌 것이 다행이다. 작은 상처로 큰 상처를 예방할 수 있는 예방 주사를 맞은 것이다. 이것도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