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디에고'

‘마라도나’ 가면 쓴 ‘디에고’

by 걷고

영화 ‘디에고’ 시사회에 다녀왔다. 우연한 기회에 영화 리뷰를 쓰게 되었고,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시사회 초대를 받은 것이다. 영화 리뷰를 쓰는 일은 초대의 대가로 써야만 된다는 이유도 있지만, 오히려 그런 이유보다는 리뷰를 작성하기 위해 영화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이유에서 나름 의미가 있다. 영화는 우리네 인생을 스크린에 담아 우리에게 돌려준다. 다소 과장되거나 축소되는 경향이 있기도 하지만, 그 주요 골격은 우리 삶의 모습이다. 영화 ‘디에고’는 축구 천재 ‘디에고 마라도나’의 삶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조명한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본 후에 어느 시각으로 리뷰를 써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였고, 어제 오후 영화 관람한 이후 오늘 오전까지 방향을 잡지 못했다.

오후에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디에고는 공 (ball)이고, 마라도나는 관중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에고’는 천성적으로 공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마라도나’는 관중 속에 비친 ‘디에고의 모습 중 하나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마라도나 가면 쓴 디에고‘란 부제가 떠올랐다. 과연 ’디에고‘는 ’마라도나‘를 좋아했을까? ’마라도나‘는 ’디에고‘를 사랑했고,’디에고‘가 원하는 삶을 살았을까?

우리 모두 각자 한 명의 자연인이지만 여러 가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 역시 그렇다. 남편으로, 아빠로, 아들로, 장인으로, 사위로, 상담사로, 강사로 등등. 어느 하나가 바로 ‘나’ 자체 일수는 없지만, 어느 하나 ‘나’의 모습이 아닌 것은 없다. ‘나’는 ‘나’ 이지만, 역할을 할 때마다 모습은 변화한다, 마치 자연이 계절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듯이. 시기에 따라 해야만 하는 역할이 있고,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다양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역할에만 너무 충실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원래 모습은 사라지고 역할극 가면을 쓴 ‘다른 나’가 ‘참 나’를 대신하며 ‘참 나’를 갉아먹기 시작한다.

‘마라도나’ 역시 구단과 관중의 기대에 맞는 역할에 너무 충실하다 보니 원래 자신의 모습은 사라져 버린 ‘마라도나의 가면’이 ‘디에고’가 되어가고 있다. 결국 너무 큰 기대와 실망, 존경과 비난, 정점과 나락의 롤러코스터를 타며 ‘디에고’를 놓아버리게 된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가 없게 되면 중독이라는 유혹에 쉽게 빠질 수밖에 없다. 또한 구단, 관중, 미디어는 ‘마라도나’를 더 이상 한 인간인 ‘디에고’로 존중하지 않고, 하나의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한다. ‘마라도나’는 이들에게 스스로 ‘마라도나’를 부셔버리는 방법을 통해 저항을 한다. 그 저항은 실은 ‘디에고’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영화 ‘디에고’는 ‘마라도나’와 ‘디에고’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며 한 인간의 희로애락을 보여주고 있다. 유명세를 치르느냐 아니냐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 삶 속에서 희로애락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각자의 ‘마라도나’에서 벗어나 ‘디에고’를 찾아가고 있다. 삶은 결국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 여정은 ‘마라도나’로서의 모습을 버릴 때 시작된다. 자신의 가면을 버림으로써만 참모습을 만날 수 있다.


인생 전반부를 사회적 지위, 경제적 부, 명예와 권위 등으로 자신만의 ‘마라도나’를 만들어 사회생활을 하였다면, 인생 후반부에서는 ‘디에고’를 찾기 위해 ‘마라도나’를 버려야만 한다. 칼 융은 이것을 ‘개성화’라고 하였다. 자기 (ego)를 버려야만 자아 (Self)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전반기에 삶을 살기 위한 사회적 동물로서의 역할을 하고 살아왔다면, 후반기에는 자신을 찾기 위해서 그 정체성을 버려야만 되는 것이다.


‘마라도나’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들을 많이 듣고 보았다. 하지만 영화 ‘디에고’를 관람한 후에 과연 어느 누구가 ‘마라도나’에 대해 비난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에고’를 ‘마라도나’로 만들어 놓은 구단, 축구팬, 미디어가 과연 그럴 자격이 있을까? 자신들을 위한 환상을 만들어 놓고, 그 환상이 깨지면 그 책임을 전가시키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히려 더 안쓰럽다. 어쩌면 전가하는 모습 역시 그들의 ‘마라도나’ 일수도 있다. 결국 모두 불쌍하고 안쓰러워 연민의 마음이 올라온다. 우리 모두의 삶도 그 삶의 내용을 알게 되면 비난보다는 이해하게 되고, 그 이해하는 마음은 연민의 마음으로 변화된다.

마지막 장면에 ‘마라도나’가 ‘디에고’로 돌아가 동네에서 공을 차고 있다. 공을 차고 있을 때 ‘디에고’는 모든 시름을 잊어버린다고 하였다. 결국 ‘디에고’는 ‘공(ball)'이다. ‘공’은 그 방향을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또한 ‘공’은 어느 누가 차든, 버리든, 침을 뱉더라도 ‘공’으로서 그대로 존재한다. 비록 ‘마라도나’에서 ‘디에고’가 되는 과정이 유명세로 인해 아주 많이 힘든 여정이었겠지만, 자신을 버리거나 잊어버리지 않고 ‘공(ball)'으로 지금도 공을 차고 있다. 그래서 ’디에고 마라도나‘는 전설이고 영웅이며 영원한 ’ 공‘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최근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젊은 연예인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이 영화를 조금 더 일찍 볼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자신만의 ‘마라도나’로서 살아왔지만 자신만의 ‘디에고’를 찾기 위해 힘든 시간을 견뎌야 하는 모든 분들에게 영화 ‘디에고’를 추천하고 싶다. 이 영화가 주는 힘이 그들에게 견뎌낼 수 있는 에너지를 제공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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