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007]

침묵 걷기

by 걷고

일시: 2019년 12월 4일 1930 - 2130

코스: 독립문역 – 안산자락길 – 숲속 무대 – 안산방죽 – 홍제천 – 홍제역

날씨: 영상 5도, 날씨 맑음

거리: 10km

누적거리: 78km

기록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오늘은 아침부터 몸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고 자꾸 짜증이 올라온다. 특별한 일이 없는데 이상한 일이다. 오전에 상담 두 케이스가 있었는데, 조금 일찍 출발해서 일부러 30분 정도 걸어서 센터에 도착하여 상담을 진행했다. 다행스럽게 걸으며 마음이 조금 안정되어 상담 진행을 원만히 마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왔는데, 아내가 피곤해 보였다. 요즘 손녀가 우리와 같이 지내면서 가끔 아내의 피곤한 모습을 보게 되고, 그런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갑자기 딸과 사위에 대한 화가 올라왔다. 손녀는 다행스럽게 잠을 자고 있었다. 아내에게 쉬라고 얘기하면서 혹시나 갑자기 깰 것에 대비하기 위해 옆에 누워있다가 나도 모르게 잠에 들었다. 다행스럽게 중간에 손녀는 깨지 않았다.


저녁 식사를 간단하게 한 후에 걷기 모임에 나갔다. 오늘은 길 안내를 하는 날이다. 오전에는 날씨가 추웠으나, 저녁이 되면서 오히려 날이 푸근해졌다. 14명이 참석했다. 오늘 걸은 길은 내가 좋아하는 코스이다. 독립문역에서 출발하여 안산자락길에 접어들었다. 이 길은 대부분 나무 데크로 조성되어 있어서 일 년 내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편안한 길이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비를 맞으며 걸어도 좋고, 겨울에 눈이 와도 대부분 햇빛으로 빨리 녹아 길이 위험하지 않다. 그래서 어떤 날씨, 계절에 걸어도 좋은 길이다.


숲 속 무대로 들어가는 진입로에서 ‘침묵 걷기’를 시작했다. 가끔 길을 걸으며 조용히 걸을 수 있는 코스가 있으면 참석자 분들에게 ‘침묵 걷기’를 제안한다. 내가 진행하는 수요 걷기는 공지에 <침묵 + 수다 걷기>로 올렸기에 참석자들이 이미 이해하고 있다. 비록 약 15분 정도의 짧은 침묵의 시간이지만 모두 적극적으로 침묵에 동참하며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하루 종일 많은 얘기를 하고, 듣고, 많은 소음에 노출되어 있다. 밤에 조용한 안산자락길을 침묵 속에 걷는 것은 우리의 지친 심신을 회복시켜 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대부분 길동무들과 수다를 떨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도 하지만, 가끔 침묵 속에 걸으며 스스로 하루를 돌아보고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좋은 일이다.


저녁에 길을 걸으며, 또 귀가 길에 오늘 왜 마음이 불편했는지 스스로 돌아보게 되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여러 가지 마무리할 일들이 있다. 그 일이 주는 부담감이 있다. 또 아내가 손녀로 인해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가끔 딸과 사위에 대한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런 일들이 겹쳐서 짜증이 올라온 것 같다. 다행스러운 것은 요즘 짜증이나 화가 날 경우에 그런 감정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의 모습이 투사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외부에서 그 원인을 찾지 않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찾으려는 연습을 하고 있다.


오늘도 아마 아내는 나의 짜증 난 모습을 미리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화를 내지 않고 걷기에 나갈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걷기에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고 길을 안내하며 마음속 구름이 저절로 사라졌다. 걷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집안은 어지럽고 시끄럽고 난쟁이다. 할 일이 있기에 신경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며 불편했던 감정이 저절로 사라진다. 걷고 걷기 일기를 쓰는 일은 그 자체로도 좋은 일이지만, 불필요한 감정 소모나 표출을 줄일 수 있고, 올라왔던 감정을 가라앉히는데도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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