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008]

선물 같은 하루

by 걷고

일시: 2019년 12월 5일

코스: 강문해변 – 안목해변

날씨: 영상 3도, 날씨 맑음

거리: 7km

누적거리: 85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친구 장인께서 돌아가셔서 급하게 강릉으로 내려갔다. 우리 나이 또래의 친구들은 부모님의 죽음을 보며 우리의 죽음을 준비하기도 한다. 세월의 흐름에 역행할 수 없듯이, 죽음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른 과정으로 거스를 수가 없다. 한 번의 죽음이 있기에 우리의 삶은 그만큼 간절하게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가능하면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껴 쓰려고 노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남은 시간이 살아온 시간보다 짧기에 시간의 소중함을 점점 더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우리의 삶은 시간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 시간은 모든 존재의 무상함을 가르쳐준다. 우리 몸도 변하고, 주변 환경도 변하고, 모든 물질들도 변한다. 존재하다 사라진다. 무상(無常)이다. 늘 같은 상태로 존재하는 것은 없고, 모든 것들은 매 순간 생멸하고 변화한다. 무상은 체념이나 비관적인 단어가 아닌 적극적인 희망의 단어이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내일이 오늘과 다를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다. 비록 오늘 힘들고 괴로워도 내일은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긍정의 메시지다. 바로 시간이 지닌 힘이다. 세월 앞에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또한 시간은 우리에게 무한정으로 주어지지 않기에 더욱 유용하게 사용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주기도 한다. 어리석게도 그 사실을 아는데 반 백 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그나마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우리의 건강도 그렇다. 한 친구가 최근 약 1년간 연락이 없었다. 다른 친구를 통해서 건강이 조금 좋지 않다는 얘기를 귀동냥으로 들었다. 내심 걱정이 되었지만 섣불리 전화하기가 조심스러웠다. 몸이 불편할 때는 심지어 안부 전화도 귀찮을 수도 있다. 또 전화를 했는데, 만약 상황이 심각하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좋지 않은 소식을 들을까 걱정이 되어 연락을 하지 못했던 점도 있었다.


몇몇 친구들과 단톡 방이 개설되어 문상을 위해 강릉으로 내려간다는 얘기를 전했다. 기차를 타고 내려가는데 연락이끊겼던 친구가 강릉역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전화해서 어리둥절했다. 알고 보니 건강 회복 후 공기 좋은 강릉으로 이사 온 지 겨우 한 달이 지났다고 한다. 폐에 조금 이상이 있었는데, 지금은 완치 된 상태이고 굳이 서울에 있을 필요도 없어서 이사했다고 한다. 다행이고 반가웠다. 같이 문상을 한 후에 그 친구 집에 잠시 들러 차 한잔 마셨다. 친구 집은 해안가에 인접하고 있어서 5분 이내에 해안가의 해송 숲을 걸을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었다. 15층에 사는 친구집은 바닷가가 바로 눈 앞에 있는 것처럼 탁 트인 시야와 시원한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멋진 리조트에 놀러 온 느낌이 들었다. 친구는 부인과 함께 해송 숲길을 매일 한두 시간씩 걷는다고 한다. 나이 들어 부부가 함께 길을 걸으며 일상의 소소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아름답고 보기 좋은 모습이다. 품격 있는 가구와 여유로운 공간이 단순한고 여유로운 집주인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부인께서 따뜻한 마음으로 준비한 다과도 심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을 만큼 적당했다. 그런 적당함이 주는 편안함도 좋았다.


집을 나와 친구와 함께 강문해변에서 안목해변까지 걸었다. 시원한 바닷바람과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하고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연금 및 경제 활동 관련된 일, 친구들 얘기, 신문에 나온 여러 얘기들을 두서없이 나눴다. 장례식에 참석하러 내려왔다가 보고 싶은 친구를 만난 행운을 얻었다. 안목해변 끝에 자리 잡은 횟집에 들어가 오랜만에 만취했다. 식당을 나와 커피숍에 들려 차 한잔 하고 헤어졌다. 지금도 술기운이 남아있는 느낌이 들지만, 그 기운은 아마 친구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 여운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마음일 수 있다.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던, 하지만 늘 마음속에 은근히 걱정하고 안부가 궁금했던 친구를 만난 어제는 ‘선물 같은 하루’였다. 이제 강릉에 내려갈 이유가 생겼다. 아침에 일찍 내려가 서너 시간 걷고 술 한잔 하고 올라오면 아주 충만한 하루가 될 것이다. 친구여, 건강할 수 있을 때까지는 건강하자. 그래서 자주 만나 걷고 술 한잔 나누며 지내자. 고맙고 반갑다, 친구여.

1575611991257.jpg


작가의 이전글[걷고의 걷기 일기 0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