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4회 차를 다녀왔다. 추운 겨울에 시작을 하였는데, 이번 길은 초봄을 맞이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포근한 날씨였고, 길가에는 많은 꽃들이 서둘러 자신의 모습을 부끄럽게 드러내고 있다. 진달래, 동백, 개나리, 수선화, 목련과 그 외의 모든 만물이 웅크렸다가 기지개를 켜며 활기를 띄우고 있다. 아직 활짝 피지 않은 그들이 더욱 예뻐 보이는 것은 아마도 좀 더 오랜 기간 그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 아닐까 한다. 활짝 피었다는 것은 이미 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아직도 좀 더 자라고 좀 더 예쁘게 활짝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같다. 꽃과 만물은 자연의 이치를 따라 피고 지고 하는데, 우리들이 그 시간을 좀 더 연장시키려고 욕심을 내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을 포함하여 만물은 태어나는 순간 죽어가고 있다. 단지 우리가 그 사실을 잊거나 모르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요즘은 가끔 죽음을 생각한다. 아마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육십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왔기에,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한 부모님의 죽음과 가까운 분들의 죽음을 보며, 자연스럽게 나의 차례를 생각하게 된다. 죽음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죽음을 맞이하면서 후회나 미련이 없기를 바라고,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여 그분에 대한 미안함이 없기를 바라고 있다. 이미 저지른 실수는 돌이킬 수 없기에 참회를 통해서, 그리고 앞으로의 관계에서는 자신의 언행을 잘 살펴봄으로써 후회와 미안함을 최소화하고 싶다.
요즘 집을 며칠간 비우게 되는 경우,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든다. 가끔 약속이 있어서 늦을 때 아내가 심심하니 빨리 들어오면 좋겠다는 전화를 한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기쁘고 고마운 일이고, 그런 전화가 오히려 고맙다. 나도 혼자 집에 있는 경우 심심함을 느끼기도 하기에, 아내의 그런 마음을 잘 이해할 수가 있다. 홀로 TV를 봐도 재미가 없고, 책을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괜히 심심하고 가끔은 심술이 나기도 한다. 30년 이상 살아온 부부가 느끼는 마음일 것이다. 둘이 만나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어가고 있기에 한쪽이 없으면 괜한 허전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가끔 집을 비우게 되는 경우에는 아내의 눈치를 살피기도 하고, 그런 일을 가능한 만들지 않으려 한다.
가끔 아내가 먼저 죽게 되면 어떤 생각이 들까? 그리고 내가 죽게 되면 아내는 어떤 생각을 할까?라는 질문을 마음속으로 해본다. 어떤 경우이든, 서로에 대한 미안한 일, 실수한 일, 가슴 아프게 한 일 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며, 그로 인해 많은 고통 속에서 지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그것이 상대방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아프게 했다면, 두고두고 자신을 괴롭힐 것이다. 후회 없이 살고 미안함 없이 살기 위해서는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아끼며, 서로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 가끔 다투고 나서 마음이 편하지 않은 이유는 누구의 잘못인가 보다는 결과적으로 상처를 주어서 미안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소한 말, 행동, 표현 등도 상대방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가 있다. 표현하는 사람이 느끼는 강도와 받아들이는 사람이 느끼는 강도에는 많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그런 언쟁과 다툼의 원인이 시간이 지나면 결코 중요하지 않는 아주 사소하고 쓸데없는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로 인해 남은 결과는 미안함과 후회 밖에는 없다. 이는 나의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므로,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
이번 길에서 길동무들과 걸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 자신의 모습을 좀 더 명확하게 볼 수도 있었다. 결코 나는 마음이 너그럽거나 따뜻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자기중심의 사고와 행동을 많이 하고 사람을 차별 없이 동등하게 대하지 못하는 나의 못난 모습을 보았다. 상대방의 불편한 모습을 보았을 때, 조금이라도 먼저 나서서 도움의 손길을 줄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도 못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른 사람들끼리 이틀간 힘든 걷기 여행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맞이하는 상황에 대한 생각이 다르고, 감정이 다르기에, 설사 표현을 하지는 않더라도 다소간의 불편함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편의보다는 타인을 위한 마음을 내는 분들을 보며 많이 배우고 있다. 시간이 지난 후 어느 순간 길동무들에게 친절하거나 따뜻하게 대해 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두고두고 후회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내가 편안하기 위해서라도 주변에 있는 분들에게 후회되는 언행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길을 통해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좀 더 미리 살펴주고, 서로를 보호하고 아껴주는 아름다운 동행이 되어 가고 있고, 동시에 자신의 성정과 성숙을 위한 귀한 기회를 만나고 있다.
해파랑길을 부산에서 출발하여 울산 구간을 마쳤다. 다음부터는 포항으로 접어든다. 그 기간 동안 동장군은 봄처녀로 변했고, 차갑고 매서운 바람은 훈풍으로 바뀌었고, 우리의 마음도 걸었던 기간만큼 단단해지고 성장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길을 걸으며 우리는 점점 더 여유롭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성숙한 사람으로 변화를 하고 있다. 해파랑이 끝날 시점에 나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변화가 있기를 바라고 노력하고, 그런 변화된 나 자신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