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사(投射)와 우암(愚巖)
일시: 2019년 12월 20일
코스: 집 - 불광천 - 월드컵경기장 - 희망의 숲길 – 불광천 – 집
날씨: 영상 1도, 날씨 쌀쌀하고 맑음
거리: 8km
누적거리: 119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오늘은 아무 일정도 없이 집에서 지내고 있다. 덕분에 손녀와 시간을 많이 보냈다. 그 시간이 피곤하기도 하지만, 아이 덕분에 많이 웃을 수 있고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와 아내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은 아이에 맞춰져 있다. 아이가 말을 못 하니 미리 알아차려서 불편함을 없애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이는 울면서 자신의 의견을 다시 한번 강하게 주장한다. 아이가 우리에게 맞춰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이에게 맞춰줘야 평화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다. 아이와 낮잠을 자고, 아내가 장에 다녀온 후에 홀로 가벼운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요즘 나의 화두는 ‘원만한 대인 관계’이다.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맞춰주기를 원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불편함을 쏟아내기도 한다. 심한 경우에는 싸우거나 관계 단절을 하기도 한다. 나 자신이 먼저 마음을 열고 상대방에게 맞추고 다가가면 되는데, 생각보다 이를 실행하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다. 생각과 감정과 판단이 있어서 그렇다. 자신을 드러내고 우위에 서려고 하고,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세우기도 하고, 타인을 비난하거나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자신의 위치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에도 끊임없이 이런 요구를 하며 자신과 타인을 힘들게 만든다.
오늘 길을 걸으며 대인관계가 불편한 이유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주된 이유는 대우받고 싶어 하는 교만한 마음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그럴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존중받고 싶어 하고 나의 뜻에 따르기를 바라고 있었다. 타인을 존중하거나 우대하지 못하면서 스스로 그런 대접받기를 원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가 나와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이 인간관계 황금률이라고 한다. 오늘 걸으며 나의 이런 이율배반적인 태도와 교만한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자기 자신의 성격이나 자신이 갖고 있는 좋은 않은 충동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다고 원인을 돌리는 것을 투사라고 한다. 내가 그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하거나 표현하는 것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지위나 환경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대접받고,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관철시키며. 다른 사람들을 마치 아랫사람 대하듯 하는 경우에 심한 불편함을 느끼고 미워하고 화를 많이 난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런 점은 모두 내가 원하고 있는 기대나 충동이다. 결국 상대방의 언행을 통해 내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부분이 드러나고, 그런 이유로 상대방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런 투사로부터 벗어나 사람들과의 불편한 관계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우암(愚巖)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어리석은 바위. 어리석은 사람은 생각과 판단을 하지 않기에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타인이 무시해도 스스로 어리석다고 생각하기에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받아들이면 저항하려는 감정이 사라진다. 또한 스스로 알고 있다고 말할만한 것이 거의 없다. 그러니 어리석은 사람이다. 바위는 남이 밟고 올라서고, 침을 뱉고, 돌을 던져도 아무 반응하지 않고 그냥 묵묵히 받아낸다. 그렇게 한다고 바위가 돌이나 자갈, 모래가 되지 않는다. 바위는 그대로 바위이다. 그런 바위이기에 어떤 사람들은 그 바위 위에 앉아 쉬거나 넋두리를 늘어놓기도 한다. 그런 어리석은 바위인 ‘우암(愚巖)’이 되고 싶다. 또한 우암(愚巖)은 다른 바위와 비교하지도 않고, 시비를 따지지도 않으며, 어리석음과 현명함을 견주지도 않는다. 그냥 자신의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걷기 동호회에서 나의 닉네임은 ‘걷고’이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지은 것이다. 또한‘법천(法泉)과 혜명(慧命)’이라는 법명도 갖고 있다. 원하는 사람이 되고자, 또 그런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스스로 하나의 이름을 지었다, 우암(愚巖). 나는 어리석은 바위이다. 바위에는 어리석음과 현명함이 없음에도 ‘어리석음’을 붙인 것을 보니 확실히 ‘어리석은’ 존재는 맞다. 마음에 드는 이름을 스스로 지었으니, 이름에 맞는 사람으로 거듭나도록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