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하게 늙어 가는 법

by 걷고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육성이 담긴 카세트 테이프를 가끔 듣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자란 손자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고 싶어한다. 마침 아들은 영상 제작 관련 업무를 하고 있어서 주제를 선정하여 아버지와 대담하는 영상을 기획하였다. ‘아들이 묻고 아버지가 답하다’라는 가제(假題)로 동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나중에 그 제목이 무엇으로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제목에서 기획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삶을 바르게 살아오신 아버지를 통해 인생에 관한 답을 듣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모습을 담고 싶은 것이 더욱 중요한 이유라고 했다. 며칠 전 우연히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알게 된 코미디언 김병조씨의 이야기이다.


김병조씨의 여러 사연 중 아들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는 아마 나와 아버지 사이에 상상도 할 수 없는 관계에 대한 부러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병조씨가 얼마나 바르게 잘 살아왔는지는 아들이 이런 주제로 동영상을 기획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아들의 제안을 들으며 김병조씨는 파란만장한 삶에 대한 위로와 보상을 충분히 받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부인은 “남편은 천상 선비입니다.”라는 말로 남편을 한 마디로 정의하였다.


김병조씨는 나이 들어가면서 참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25년간 명심보감 등 한학 강의를 하고 있고, 강의 준비와 수행 방편으로 매일 4시간 정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처음 강의 시작할 때에는 비행기로 출퇴근하여 강사료 보다 많은 비용을 사용하면서도 강의가 좋아서 했고, 지금도 새벽 5시에 KTX 기차를 타고 강의하러 가는 날이 늘 설레고 가장 기분 좋은 날이라고 했다. 어떤 일을 하면서 본인이 즐겁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 삶은 행복한 삶이다. 김병조씨는 스스로 “앞으로는 더욱 잘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아름다운 노후를 위한 준비가 이미 되어있고, 지금 그런 삶을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욱 행복한 노후를 살아갈 자신이 있다는 말씀이다.


우리는 다사다난한 일을 겪으며 한 평생 살아간다. 수많은 역경을 겪으며 사람들은 성장하고 변해간다. 그런 많은 과정을 겪은 후 살고 있는 인생 후반기의 모습을 통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참다운 승자’라고 얘기하는 것 같다. 물론 삶에 승자와 패자는 없지만, 그래도 잘 살아왔는지의 여부는 자신, 가족, 주위의 평가에 의해 어느 정도 판가름 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아내는 나를 어떤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고, 딸은 어떤 아빠로 기억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노후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인생 2막에 대한 고민과 준비를 꽤 오랫동안 해왔고, 지금 상담심리사로 활동하고 있다. 사람들이 나를 ‘마음 따뜻한 상담심리사’로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작년부터 상담 진행에 대한 심리적 부담은 조금 줄었고, 가끔은 상담을 통해 변화된 내담자를 보며 보람도 느끼고 있다. 전문성을 지닌 올바른 상담사로 성장하기 위해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 그간 살아 온 경험과 수행해 온 명상, 독서, 걷기를 통한 사람들과의 교류 등 생활의 모든 것이 상담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과 도움을 주고 있다.


10대부터 죽을 때까지 몸의 변화와 몸에 관한 상황을 사실적으로 서술한 다니엘 페나크의 책 ‘몸의 일기’를 예전에 읽었다. 그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걷고의 걷기 일기’를 2019년 11월 20일부터 쓰기 시작했다. 걸었던 코스, 사진, 거리, 누적 거리, 걸으며 느낀 내용과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지금까지 총 29편의 일기를 썼고, 걸었던 누적 거리는 488km이다. 다니엘 페나크처럼 나도 이 일기를 죽을 때까지, 아니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걷고 기록하고 싶다. 이 일은 평생 프로젝트로 진행할 생각이다.


요즘은 책을 읽어도 금방 기억에서 사라져버린다. 중요한 문구도 기억이 안 나고, 무슨 내용인지 어렴풋이 기억만 날 뿐이다. 얼마 전부터 책을 읽으며 중요한 문구를 독서카드에 옮겨 쓰고 있다. 글을 쓰는데 필요하기도 하고, 중요한 문구나 구절을 기억하고 싶어서이다. 어느 날 문득 나 자신만을 위한 카드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한 카드가 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딸이 살면서 가끔은 이 글들을 읽으며 위로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사위가 이 글을 읽으며 삶의 중요한 순간이나 좌절의 순간에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손주들이 이 글을 보고 읽으며 할아버지가 전하는 메시지를 듣고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설사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글 모음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독서 카드를 아끼려는 생각에 빼곡하게 작은 글씨로 써왔는데, 앞으로는 읽기 쉽게 글자도 좀 더 정자체로 크게 쓰고, 여유로운 여백도 주고, 내용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정리하려 한다.


매주 한 편 정도 단상(斷想)을 쓰고 있고, 걷기 일기는 2회 정도 쓰고 있다. 지금까지 써온 글과 앞으로 쓰게 될 글 중 우리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내용들을 추려서 칠순 기념으로 책을 발간하고 싶다. 아빠와 할아버지로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 담은 책을 만들어 선물하고 싶고, 기념으로 한 권 간직하고 싶다.


나는 이렇게 상담심리사로 활동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걷고, 명상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건강하고 편안하게 늙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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