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걷는가?

서문

by 걷고

코로나로 인해 외부 모임들이 모두 취소된 덕분에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을 정부로부터, 사회로부터, 가정으로부터 받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 죄책감이나 불편함 없이 편히 쉬고 있다. 읽고 싶었던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걷기 모임에 참석하기도 하고, 명상도 하고, 휴식도 취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며칠 전 아내와 저녁 식사 겸 막걸리 한잔 마시며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아내의 지지와 이해가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그보다는 계획과 일상에 대해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아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올해는 운 좋게 서울 심리지원 서남센터에서 1년간 초빙 상담사로 주 2, 3회 상담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지만, 내년에도 계속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더 사회에 설 자리가 없어진다. 당연한 이치이다. 젊은 세대가 사회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고, 우리는 한 발 뒤로 물러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 일을 하면서 즐겁고 행복하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사설 상담센터에서 근무할 기회는 거의 없다. 오히려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회단체에서 경제적,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을 위한 상담봉사 활동을 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연락이 오는 내담자에게 최선을 다해 ‘마음 따뜻한 상담심리사’로 인식될 수 있다면 좋겠다. 상담심리사 이휘재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싶다.


심리상담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내담자를 만날 일이 없어진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비교적 꾸준히 해 온 일들이 있다. 명상, 걷기, 글쓰기, 심신 힐링 강의나 집단 프로그램 진행 등이다. 나이 들어서 할 일 없이 죽음만을 기다리며 살기는 싫다. 또한 돈을 벌기 위한 일만을 하고 싶지도 않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의미를 찾을 수 있고, 그 일을 하는 동안 마음이 설레고, 즐거운 일을 하며 살고 싶다. 그중 글쓰기는 나이 듦과는 상관없이 사람들과 소통하며 평생 할 수 있는 행복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글쓰기에 관한 동영상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좋은 얘기들이 많이 있는데 꾸준히 글을 쓰는 거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는 거 같다.


작년 11월 중순부터 ‘걷고의 걷기 일기’를 써서 SNS에 올리고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걸은 길과 거리, 걸으며 느낀 점, 만난 사람, 사진 등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다. 지금까지는 그냥 두서없이 편안하게 일기를 써왔는데, 글을 쓰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니 좀 더 다듬어서 정리된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평생 할 작업이니만큼 부담 없이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편안하게 꾸준히 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감을 찾아내야 한다. 일상사가 모두 글감이 되기는 하겠지만, 나만의 차별화된 글감은 무엇일까? 어떤 글을 쓰면 좋을까? 독자들이 좋아할 수 있으며 동시에 나 자신과 교집합이 될 수 있는 글감이 되면 좋을 것 같았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얘기가 좋은 글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걷는가?’라는 주제로 평범한 사람들이 왜 걷는지 그 이유를 듣고 싶고, 알고 싶다. 어쩌면 그분들이 먼저 어느 누구도 귀 기울여 듣지 않는 자신들이 걷는 이유를 간절히 얘기하고 싶어 할 수도 있다. 독자들에게는 이 글을 읽으며 위로도 받고, 심신의 건강을 위해 걷기를 생활화하는데 도움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동호회 모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걷기 동호회도 많이 활성화되고 있고, 나 역시 걷기 동호회인 네이버 카페 ‘걷기 마당’에서 8년 넘게 활동하고 있다. 길동무들과 길을 걸으며 가끔은 속 깊은 얘기나 걷는 이유 등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를 하기도 한다. 대부분 40대 이상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살아온 세월만큼 각자 여러 사연들을 갖고 있다. 고혈압을 극복하기 위해 걷기 시작한 사람, 이혼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큰 수술 이후 건강 회복을 위해, 집안에 불행한 일이 있어서 슬픔을 달래기 위해, 건강한 노후를 맞이하기 위해 등등. 평범한 사람들의 이런 얘기를 책으로 담아내고 싶다.


‘나는 왜 걷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졌다. 힘든 상황에서 달리 해결책을 찾을 수 없어서 걷기와 달리기를 시작했다. 연골 파열로 양쪽 무릎 수술 한 이후에 달리기나 등산도 불편하게 되어 걷기 동호회를 찾게 되었다. 걸으면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걷기가 지금은 생활이 되었다.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는 편이다. 걷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어떤 날씨에도 그다지 개의치 않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요즘 왜 걸을까? 우선 걷지 않으면 몸이 찌뿌둥하다. 반면에 걸으면 에너지가 충전되며 활기가 생긴다. 걸으면서 상담으로 인한 힘든 심리적 부담을 덜어낼 수도 있다. 사람들과 불편한 일이 생겼을 때 대응하지 않고 한 시간 이상 걸으면 마음의 그림자는 대부분 사라져 버린다. 노화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걷기를 통해 치매 예방을 할 수도 있다. 죽을 때까지 타인에게 몸을 의탁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무엇보다 걸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몸도 건강해지고. 자연과 벗하며 사계를 느낄 수 있어서 좋고, 잠도 잘 오고, 식사도 맛있고, 길동무를 만나 즐거운 대화를 할 수 있으니 외롭지 않다. 이렇게 좋은 점이 많은데 굳이 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오히려 ‘왜 걷지 않느냐?’고 묻고 싶다.


올해 100세를 맞이하신 김형석 선생님은 요즘도 매일 수영을 하신다고 들었다. 그 연세에 한 달에 약 20회 이상의 강의를 하시고 글도 쓰신다고 한다.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알 수는 없지만, 죽기 전까지 김형석 선생님처럼 활동하고 소통하며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 그 일이 내게는 걷기, 상담, 글쓰기 등을 통한 사람들과의 소통과 봉사이다. 선생님께서 수영을 하시듯, 나는 걷는다. 내가 걷는 이유이다.


주위 사람들과 상의를 한 후, 출판에 관한 방향을 잡고 서서히 준비하려 한다. 어떤 내용으로 쓸 것인지, 한 사람의 분량은 어느 정도로 해야 할지, 몇 명의 글을 실을 것인지, 사진을 포함하는 것이 좋은지? 어떤 사람들을 취재하여 글을 써야 할지 등 많은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발간 예정은 지금부터 1년 후로 생각하고 있다. 이 책 준비를 위해 걷기에 대한 열정을 다시 살릴 필요와 명분이 생겼다. 다양한 길을 좀 더 많이 걸으며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얘기도 듣고, 길에 대한 또 걷기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학도 정립하고 싶다.

20170427_161649.jpg 피레네 산맥을 넘으며 201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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