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049]
한양 도성 순성(巡城) 길
일시: 2020년 4월 13일 (옥수역 – 한강변 - 마포역 10km)
2020년 4월 15일 (한양 성곽 순례길 20km
누적거리: 758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코로나 여파가 어느 정도 가라앉고 있어서인지 선거 공휴일인 4월 15일 한양 성곽 순례길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특히 인왕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사람들이 기다리며 올라갈 정도였다. 모두 사전 투표를 마쳤거나 아니면 새벽 일찍 투표를 마치고 휴일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일 것이다. 그간 코로나로 인해 외출을 자제하며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켜왔는데, 최근에 신규 확진자 수가 50명 이하로 떨어지면서 사람들의 마음도 느슨해진 느낌도 든다. 한편으로는 좋은 일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벌써 긴장을 풀면 안 될 것 같다는 걱정이 내심 되기도 한다. 한양 성곽 순례길의 마지막 코스인 남산에는 벚꽃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다행스러운 점은 사람들 대부분이 마스크를 쓰고 걷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 코로나가 종식된다 하더라도, 앞으로 마스크는 일상 속 필수품이 될 수도 있다.
순성 놀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 보았다.
“순성(巡城)이란 서울 성곽을 따라 걸으며 도성 안팎 경치를 감상하는 것을 말한다. 당시에 순성은 아주 재미있는 놀이에 속했다. 조선의 유본예(1777-1842)는 <한강 지락>에서 봄과 가을에 한양 사람들이 짝을 지어 성곽 둘레를 한 바퀴 돌면서 성 안팎의 경치를 구경한다고 썼다. 이를 통해 순성이 예부터 이어져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곽을 따랄 걷는 길은 단순한 트레킹이 아니다. 서울 성곽을 따라 걷는 것은 오랜 옛날부터 유구히 흘러온 시간의 퇴적층을 밟는다는 의미가 있다.”(순성의 즐거움, 효형출판, 이도형, 2010, 네이버 검색)
옛날 선조들이 성을 한 바퀴 도는 역사를 지닌 그 길을 따라 걸었다. 걸으며 한 가지 의구심이 생긴다. 선조들은 어떻게, 그리고 왜 이 길을 걸었을까? 길을 많이 정비해 놓은 요즘에도 그 길을 하루에 걷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오전 9시에 출발해서 오후 4시 반경 마쳤다. 총 7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휴대전화에 설치된 ‘걷기 앱’에 나온 거리는 약 21km. 잠시 휴식하며 빠른 속도로 점심을 먹었고, 휴식 시간도 아주 짧게 물이나 간식 먹을 수 있는 시간 정도 외에는 없었다. 모두 등산화에 걷기 편한 복장을 하고 걷기 운동을 꾸준히 해 온 정예 멤버들이 걷는데도 하루 종일 걸린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어떤 모습으로 이 길을 걸었을까? 모두 축지법을 쓰며 날아다니듯이 걸었을까? 한복을 입고, 삿갓을 쓰고, 짚신을 신고서. 산길도 지금보다 많이 험했을 이 길을 어떻게 걸었을까? 길동무 중 한 명이 아마 중간중간 한 잔씩 마시며 여유롭게 걸었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 말에는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렇게 걸어서는 하루에 순성 놀이를 마치기가 쉽지 않다. 아마 도중하차를 했다면 놀고, 마시고, 걸으며 소풍처럼 다녀올 수 있었을 것이다. 물은 계곡물을 마실 수 있었으니 갈증은 문제 되지 않았겠지만, 배고픔은 어떻게 달랬을까? 주먹밥을 뒷짐에 지고 왔을까? 아니면 종들이 음식물을 미리 들고 올라와서 적당한 자리에 차려놓으면, 양반 자제들이 천천히 올라와서 한잔 마시며 쉬고 걸었을까? 그 당시의 순성 놀이가 궁금하다. 어떤 방식으로든 놀이인지 노동인지 모를 순성을 하더라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바쁘게 정신없이 걷지 않는 한 하루에 마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검색한 바에 의하면 장원 급제를 위한 기원을 담아 순성 놀이를 했다고도 한다. 그분들에게 순성 놀이는 단순한 소풍이나 놀이가 아닌 간절한 염원을 담은 기도였을 것이다. 불자들이 정성을 다해 탑돌이를 하듯이, 순성을 하며 마음속으로 간절한 기도를 했을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공부한 것을 암송하거나, 장원 급제를 기원하거나, 장원 급제 후 성안에 들어가서 정부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몰아내리라는 각오를 다지기도 했을 것이다. 국민들의 힘든 고통을 뼈저리게 느끼며, 국민들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관리가 되겠다고 마음을 다졌을 것이다.
안팎을 걷는다는 의미는 ‘안’에도 서있지 않고, ‘밖’ 에도 서있지 않은 경계에 선 다소 위험한 상황이다. 잠시 정신을 팔면 안팎 어디든지 떨어져 다칠 수도 있다. 경계에 서있을 때에는 확고한 자신의 방향을 결정해야만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장원 급제를 해서 성안으로 들어가 청운의 꿈을 실현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위치에 맞는 삶을 성 밖에서 살아가거나. 그런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에게 솔직하고, 냉철한 성찰을 하고, 주위 사람들의 말을 잘 들을 수 있는 열린 귀가 있어야 하고, 상황을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밝은 눈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자신을 알기가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이기심’ 때문이다.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모든 결정과 주변 사람들을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어리석음으로 인해 자신과 타인, 상황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갖기 어렵게 된다.
묘하게도 순성 놀이를 하는 오늘이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모든 의원들이 자신의 이기심을 내려놓고 국민들을 위한 의정 활동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지금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린 코로나로부터 빨리 벗어나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기를 기원한다. 답답함을 조금만 더 참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좀 더 잘 지켜서 우리 모두 행복한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순성 놀이 같은 건강한 놀이를 통해 각자 자체 면역력을 키워나가길 바란다. 가끔은 홀로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내어 고독을 즐겨보길 바란다. 홀로 살아가는 힘을 통해서 심리적 면역을 키워나가길 바란다. 이번 순성 놀이를 걸으며 또 마치며 느낀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