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한 지 38년이 지났다. 79년 9월 입대하여 82년 2월 제대했다. 군대에서 사회 격동기인 10 26 사건, 12 12 사태, 5. 18 광주 민주화 운동 등 사회의 심한 격동기를 보냈다. 세상과 단절된 상태로 젊은 시절을 군생활로 보냈다. 몸이 약한 사람이 보병 부대에서 생활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불교와 행군 덕분에 잘 버텼던 거 같다. 일반 병으로 입대했지만, 운 좋게 중대 불교 군종 사병 역할을 하며 보냈고, 100km, 200km 행군을 하면서도 발에 물집 한 점 생기지 않고 걸었다. 걸을 때에는 선임이나 상관의 눈치를 볼 일이 없어서 편안하게 걸었던 거 같다.
며칠 전 서재를 정리하다 우연히 군대에서 썼던 일기, 수양록을 발견했다. 그 당시 부대에서 모든 사병들에게 일기를 ‘수양록’이라 부르며 강제로 쓰게 했다. 쓰기 싫어도 점호 시 기합 받지 않으려면 써야만 했다. 어떤 날은 쓰고 싶은 얘기를 정성 들여 쓰기도 했고, 어떤 날은 억지로 쓴 것 같다. 또 심지어는 후배 병사들에게 시켜서 쓴 일기도 있다. 못된 선임이었나 보다. 심지어 한 번은 후배 사병을 구타한 후에 심한 후회로 괴로워했던 내용도 있다. 너무 창피했다. 그 병사들에게 진심으로 사죄를 하며 용서를 구한다.
일기 맨 앞장에는 ‘수양록’이라고 쓰고 그 밑에 불교의 ‘卍’ 자 표시를 위아래로 적은 후, 그 안에 ‘사홍서원 (四弘誓願)’을 한자로 적어 놓았다. 사홍서원은 불자의 네 가지 큰 서원이다.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서원, 모든 번뇌를 끊어내겠다는 서원, 모든 불법을 공부하겠다는 서원, 불도를 이루겠다는 서원이다. 그 밑에 영어로 ‘60R 3BN 9CO’라고 써 놓았다. ‘60 연대, 3대대, 9중대’의 영문 표기다. 그리고 ‘상병 이휘재, 병장 이휘재’라고 썼고, 맨 아래에 상진 합장 (常進 合掌)이라고 써놓았다. 부대에서 처음 받은 법명(法名)이 상진이다. 1981년 9월 23일부터 시작해서 1982년 2월 15일까지 쓴 기록이다. 상병과 병장 시절에 쓴 일기로 제대 10일 전까지 썼다.
첫날 쓴 일기의 제목은 ‘막평 타인 부긍자기 (莫評他人 不矜自己)’다. 그 제목으로 미루어보아 못된 성격에 남에 대한 비난을 많이 했고, 열등감에 가득하여 못난 자기를 어지간히 자랑하려고 애썼던 거 같다. 그 당시 일개 소대원 30명 정도 중 대학 재학 중에 온 사람이 한 두 명에 불과했다. 일기에 한문을 많이 쓰고 가끔은 영어로 일기를 쓴 것으로 보아 어지간히 자신이 남과 다르다고 억지로 투쟁하듯 생활했던 거 같다. 열등감이 그런 식으로 표현됐던 거 같다. 지금 보니 너무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일기의 한쪽 구석에는 불교 공부한 내용을 정리해 놓았다. 상병 말이나 병장 시절이었고 군종 사병 역할을 했던 시기라 불교 책을 읽고 공부할 시간이 있었던 거 같다. 군종 사병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대대 군종병이 성철 스님의 상좌인 원규 스님이다. 지금도 선승으로 수행을 처절하게 하고 계신다고 들었다. 그분께서 제대하신 후에 책을 꾸준히 보내주셨고, 가끔은 편지도 보내주시며 정진을 격려해 주셨다. 어느 날부터 성철스님께서 외부와의 서신 일체를 금한다고 하셔서 그다음부터 편지를 받지는 못했다. 제대 후 스님을 두 번 만나 인사를 드렸다.
수양록을 매일 조금씩 읽고 있다. 그 당시 고민이나 지금 고민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40년이 지났음에도 별로 변한 게 없다. 사람은 참 변하기 어려운 거 같다. 뭔가 계획하고 용두사미 격으로 작심삼일이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려워하고 신체적으로 힘든 일을 견디기 어려워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견디는 힘’이 아주 부족했다. 반복된 실수를 하고, 반복해서 후회하고 있다. 행동과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서 파랑새를 꿈꾸고 있다. 오늘 같이 살면서 내일이 다르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참 어리석은 일이다. 이 부분은 지금 조금 변한 거 같다. 어떤 결정을 내리면 꾸준히 하는 편이다. 정신적, 신체적 불편함을 감수할 힘도 조금 생겼다. 작은 변화지만 큰 변화이다. 이런 변화가 삶에 활력을 주고 있다.
마지막에 쓴 일기는 제대를 10일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제대 후 생활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다. 마지막 훈련을 즐겁게 받았던 거 같다. 훈련을 받으면서도 앞으로 살 길에 대한 걱정을 했나 보다. 훈련을 하며 내린 결론이 “그저 열심히 살자, 하나의 바른 인간이 되어서 열심히 뛰면서 생활하리라’다. 이 부분은 지금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저 주어진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것, 그 외에 살의 정답은 없는 거 같다.
일기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영문 ‘반야심경’을 베껴 써 놓았고, 한쪽 구석에 잘 모르는 단어 풀이를 해놓았다. 영문 경전을 읽는 것이 가끔은 경전 해석될 글을 보거나, 한문 경전을 읽는 것보다 이해가 쉬울 경우가 있다. 그 당시에 관심을 갖고 불교 공부를 열심히 했던 거 같다. 지금 돌이켜보니 겉으로만 공부한 느낌이다. 물론 하지 않은 것보다는 낫지만, 머리로 하는 불교 공부는 삶 속에 체화되지 않는 한 별 의미가 없다. 40년이 지나도 별로 변한 것이 없으니 그간의 공부는 모두 헛수고이다. 하지만 웃으며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변화이다.
일기 중 영어회화 서클 후배가 같은 사단에 입대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후배를 면회했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막 입대한 후배의 걱정과 긴장이 느껴졌는지 격려하는 글을 써 놓았다. 그 내용을 보니 내가 그 후배의 친화력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 후배는 지금도 모든 사람들을 아우르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은 변하지 않나 보다. 그 후배와 같은 서클 선배 두 분에게 그 일기를 캡처해서 보내주었다. 20대 시절로 돌아간 느낌으로 서로 기쁘게 카톡 하며 지금도 만나고 있는 인연에 감사하고 있다. 귀한 인연, 질긴 인연이다. 이 인연이 변하지 않길 바란다. 사람이 거의 변하지 않으니 변할 일이 없을 것이다. 40년 전 일기가 지금은 나의 역사가 되었다.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의 역사가 될 것이다. 20년 후의 나의 모습은 어떨까? 지금 블로그나 브런치 등 SNS에 올리고 있는 글들이 나의 역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