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벌교 구간 테마 걷기
일시: 2020년 5월 16 - 17일 (윤제림 – 주월산 – 보성소리 득음길 – 활성산 보부상길 18km)
누적거리: 956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1박 2일 걷기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테마 걷기를 다녀왔다. 참석자 대부분이 이미 오랜 기간 함께 다닌 분들이라 각자 역할 분담이 잘 되어 있다. 서로 할 일을 알아서 처리하고 배려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참석자들의 면역 증진을 위해 약을 준비해 오신 약사님. 렌터카 예약과 운전을 맡아하시는 분. 장소 예약, 회비 정산 및 음식 주문을 하시는 회계전문가. 아침 식사를 위해 김치와 누룽지를 준비해 오신 분. 무엇보다 길 안내를 위해 길을 검색하고 안내하는 리더. 다른 참석자들은 리더의 결정에 잘 따르고 그 외의 필요한 일들을 각자 알아서 처리한다. 마치 잘 훈련된 특수부대 군인을 연상케 한다.
여행의 백미 중 하나는 음식이다. 첫날 도착 후 찾은 식당이 낙지 비빔밥과 도다리 매운탕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 낙지를 잘게 썰어서 참기름과 야채와 함께 비벼 먹는 밥은 건강과 맛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음식이다. 우렁 강된장과 낫도 그리고 야채를 비벼먹는 비빔밥 역시 잊을 수 없는 건강식이다. 아침 식사로 준비해 온 누룽지를 먹고, 전문가 솜씨고 내려 주신 드립 커피를 마시는 것도 멋진 추억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이 ‘길’이다. 소설가 조정래 등산길과 문화거리를 걸으며 한 위대한 소설가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다. 그 마을과 산 전체에 마치 조정래의 손길이 묻어있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오랜 전에 읽었던 소설의 기억이 사라져 버려 문화거리의 감흥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오기 전에 만약 태백산맥을 다시 한번 읽었다면 그 길을 걷는 느낌이 많이 달랐을 것이다.
‘부용산 오리길’은 비록 그 거리가 오리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아주 기억에 남는 거리다. 마치 원시림을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다시 가고픈 거리다. 그 길을 지나 민족 음악가 채동선 생가를 걸으며 볼 수 있다. ‘개천절’, ‘한글날’, ‘3.1절 노래’, ‘진도아리랑’, 도라지 타령’ 등을 작곡한 분이다. 그 생가 대문은 음표와 대표 곡명을 디자인하여 만들었다. 그 대문이 인상에 많이 남는다.
차를 타고 이동하여 보성 열화정에 들렸다. 옛날 지역 선비 집합 장소이며 의병 열사를 배출 한 곳으로 국가 민속문화제 제162호인 곳이다. 연못과 대문, 정자가 잘 어우러진 곳으로 마음이 차분해진다. 마치 신선들이 노는 곳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득량역은 나름 문화거리로 조성하려 노력한 것이 보이기는 하지만 뭔가 유치해서 별로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다만 득량역의 역사와 기차 삯, 득량이라는 지명의 의미는 한 번쯤 돌아볼 만하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보성 차 밭이다. 넓은 산에 줄을 이어 조성된 차 밭은 온통 녹색의 향연으로 눈이 시원하고 기분이 좋아지고 힐링을 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차 밭에서 바라본 저 아래 마을의 풍경도 정겹다. 녹차 밭 사이를 걸으며 사진을 찍고 떠들고 웃는 추억도 오랜 기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차 밭 중간중간에 포토존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아 분위기를 한껏 부풀리기도 한다. 그 차 밭은 멀리서, 가까이서, 걸어서, 차를 타고 지나며 봐도 그냥 저절로 환호성이 난다. 보성 하면 ‘차’가 기억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또한 보성의 유명한 것이 ‘소리’다. ‘보성 소리 득음길’을 걸었다. 길 입구에는 판소리 성지가 있고, 득음 문이 있으며, 길을 따라 올라가면 폭포 아래 득음정이 있다. 득음정 바로 아래에 원하는 판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음향설비가 준비되어 있다. 폭포 아래에서 득음하기 위해 분투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숙소는 윤제림 내 위치한 곳이다. 한 평생 산과 나무에 바친 윤제 정상환의 손길로 만들어졌고, 부친의 뒤를 이어 아들에 의해 경영 숲의 모델로 만들어진 주월산 일대 소통의 숲이다. 아침 식사 후 주월산 패러 그라이딩 장에 차로 올랐다. 정상까지 차로 갈 수 있도록 도로 정비가 잘 되어 있다. 557M의 주월산은 소통의 숲을 내려보며 지키고 있다. 주월산 능선에는 풍광을 즐기며 산책에 좋은 숲길이 있다. 특히 하늘 계단 편백 숲길은 잊지 못할 길이다. 속세를 떠나 선계에 들어온 느낌이 든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길이 바로 ‘활성산성 편백 숲 보부상 길’이다. 보부상들은 이 길을 목숨 걸고 넘었을 것이다. 맹수와 도적떼의 위험을 무릅쓰고 가족을 위해 이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 길을 우리는 배낭을 메고 힐링을 위해 걷고 있다. 보부상길이 보부상들에게는 삶의 길이지만, 우리에게는 힐링의 길이다. 보부상들에게 마을은 힐링의 공간이지만, 우리에게는 삶의 공간이다. 단지 장소만 바뀌었을 뿐이다.
많은 길을 걷고, 많은 문화 거리를 걸었고, 역사를 걸었다. 남파랑길이 모두 정비가 된 후에 이곳들이 한 길로 연결이 된다면 꿈에 그리던 기억에 남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