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060]

평화 누리길을 걸으며

by 걷고

일시: 2020년 5월 10일 (평화 누리길 1코스 김포 염하강 철책길 14km)

누적거리: 921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평화 누리길은 김포시, 고양시, 파주시, 연천군 4개 지역을 12개 코스로 이루어진 총 189km에 달하는 길이다. 그 길의 첫 번째 관문인 염하강철책길을 다녀왔다. 염하강 철책길은 14km로 조성된 걷기 좋은 길이다. 숲 속 길도 있고, 주민들을 위한 포장도로도 있고, 철책 바로 옆 소로를 따라 걷는 길도 있다. 바다 건너편에 강화도가 보인다. 강화도를 철책을 통해 바라보니 느낌이 이상하다.


길 중간중간에 계단을 폐타이어로 만들어 놓았다. 아마 부대용 트럭이 폐기된 후에 타이어를 이용해서 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 같다. 트럭이 운행 가능할 때에는 전쟁을 위한 트럭이 되지만, 운행 유효 기간이 끝나면 평화의 타이어가 된다. 철책을 가운데 두고, 오른쪽에는 주민들의 터전인 논과 밭들이 있다. 주변에 많은 꽃들도 철책과는 상관없이 피다 지고를 반복한다. 사람들의 전쟁이나 위기와 상관없이 자연은 자연대로 삶을 살아간다. 이 길에서 보는 철책 건너편은 강화도이지만, 연천 부근으로 가면서 철책 건너편에 이북이 보일 것이다. 한쪽은 남한, 다른 한쪽은 북한이 철책을 경계선으로 하여 서로 대치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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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평화누리길’이다. 평화를 한껏 누리며 걷자는 희망의 길이다. 길 입구에는 ‘Walk for Peace’라는 큰 글자가 반짝이는 금속 글자로 만들어져 시선을 끈다. 문구와 금속 글자는 뭔가 괴리감이 있다. 글은 평화를 얘기하는데, 금속 글자는 자꾸 무기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 부근에 다양한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아마 모두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를 상징하고 있을 것이다. 평화의 이면에는 전쟁이 있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두 단어는 함께 존재한다. 다른 하나가 없다는 그 외의 다른 하나도 의미를 상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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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대부분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포장된 길이 많다. 농사짓기 위해 농기구를 운반하기도 할 것이고, 승용차를 이용하는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었을 것이다. 숲길로 접어들면서 평화 누리길의 진면목을 만나게 된다. 좁은 소로의 한 편은 철책으로 이어져있고, 다른 한편은 이름 모를 야생화로 가득하다. 철책과 꽃, 이 역시 서로 상대적으로 느껴진다. ‘전쟁과 사랑’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숲 속 길을 걸으며 진한 땅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어제 내린 비로 자연의 냄새가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


철책 건너편은 갯벌로 가득하다. 물이 들어오고 노을을 맞이할 수 있다면 그 자리에 앉아 넋을 놓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져들 것 같다. 철책이 없다면 훨씬 시야가 편했을 것이다. 철책의 촘촘한 마름모꼴 모양이 그물을 연상케 한다. 그물은 물고기를 건져 올리는 수단이다. 물고기에게 그물은 죽음의 덫이다. 철책 역시 사람들에게 죽음의 덫이다. 철책을 허락 없이 넘어오면 공격을 받게 된다. 넘어서는 안될 선이 바로 철책이다. 한쪽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철책을 치고, 다른 쪽에서는 침범이나 살기 위해 철책을 넘어온다.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지점이 철책이다. 독일의 벽이 허물어지듯, 언젠가는 이 철책이 허물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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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외길로 일단 들어서게 되면 길을 잃을 걱정이 없어서 좋다. 길 표식도 잘 되어 있고, 중간중간 휴식 공간과 화장실도 잘 준비되어 있다. 다만 평지와 포장길이 많아서 발의 피로감을 많이 느끼게 된다. 한 여름에 걷기에는 다소 무리라는 생각도 든다. 햇빛을 가릴만한 곳이 그다지 많지 않다.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아주 추천할 만한 곳이다. 사실 나는 별로 개의치 않는 편이다. 산티아고 길에서 이런 길을 많이 걸었다. 다소 지루하고 햇빛이 강하게 내려 쬐는 이런 길이 홀로 걷기에는 아주 좋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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