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는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자유인 Don최연돈 (61세)

by 걷고

2017년 산티아고 길에서 그를 만났다. 초행길임에도 그는 마치 현지인처럼 편안해 보였다. 사진을 열심히 찍고 다른 순례자들과 잘 어울리며 즐겁게 걷고 있었다. 피레네 산맥을 오르며 서로 인사를 나눈 후 때로는 같이 걸었고, 때로는 각자 걸었다. 해외 지사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뛰어난 외국어 구사 능력과 친화력은 돋보였다. 10kg의 배낭 외에 약 5kg의 무거운 카메라 거치대를 허리에 차고 산티아고 800km 걷고 있었다. 그는 걸으며 음악을 즐겨 들었다. 그에게 음악과 사진은 떼어낼 수 없는 자신의 일부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매우 긍정적인 사람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주변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 주는 유쾌한 사람이다.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고 산티아고 대성당 주변에서 축하주를 함께 마셨다. 귀국 후에도 좋은 인연을 유지하며 지내고 있는 그를 시내 커피숍에서 만났다. 페이스북을 통해서 숙소가 아닌 텐트 속에서 잠자며 해파랑길을 걷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역시 길을 걸으며 숙소를 찾는데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고, 다시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는 것이 늘 숙제로 남아있었다. 대안으로 텐트 사용을 고려 중에 있어서 캠핑 장비에 관한 얘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필요한 물품, 제품의 무게와 브랜드 등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자연스럽게 걷기 얘기를 하며 산티아고를 가게 된 동기를 물어보았다.


"대기업에서 임원으로 퇴임 후 새로운 스테이지로 넘어가기 위한 상징적인 활동이 필요했다. 지금까지 살아 온 방식과의 단절과 앞으로의 새로운 삶에 대한 연결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또한 아버지께서 그 즈음 돌아가셔서 추모와 추억을 되새기며 걷고 싶었다. 고민 후에 한달 이상 홀로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는데 가장 적합한 곳이 산티아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기업에서 임원으로 퇴임을 하게 되면 계열사나 협력회사에서 1, 2년간 근무할 기회가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에게도 그런 기회가 주어졌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퇴직을 하면 바로 취업을 하려고 애쓰는 분들이 많은데 그에게는 그런 조급함이나 불안감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협력회사에서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바로 취업을 하기에 시간이 너무 아깝고 아쉬웠다. 자신에게 보상 할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또한 삶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다. 회사 대표에게 양해를 구하고 산티아고 다녀 온 후에 취업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산티이고 길을 완주 후 귀국하여 약속대로 9월 11일에 입사했다. 2년간 자문역으로 근무했고, 작년 9월에 삶의 마지막 퇴사를 했다. 퇴사 후에도 다른 회사에서 연락이 왔지만, 이제는 나를 위한 생활에 몰두하고 싶었다. 루틴한 출퇴근 하는 일 보다 자유로운 일을 하고 싶었다. 조금 일찍 퇴사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다."


그는 국내 대기업에 공채로 입사하여 30년 이상 근무하고 임원으로 퇴임했다. 회사 덕분에 가장 역할을 해 낼 수 있어서 회사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퇴임 후 회사에 대한 섭섭함이나, 회사의 인사 동정 등에 관심을 갖고 있는 선배들의 모습이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자유스러운 사고를 지닌 그가 대기업에서 그 오랜 기간 근무했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개인적인 취미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회사 업무에 충실하면서도 주말이나 퇴근 후 시간을 이용해 자신만의 삶을 추구해왔다. 입사 후 사내 사진 동호회에 가입해서 사진을 배웠다. 그는 집에 자가 암실을 꾸며놓고 지금까지 꾸준히 사진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음악은 그에게 어릴 적부터 또 하나의 삶의 일부였다. 그러한 취미의 열정을 감추고 회사 생활을 해왔다. 회사에서는 '올 인'하기를 원하는데 내가 원하는 삶을 유지하며 업무에 집중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가정이 우선이라 생각하고 업무에 집중하니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럼에도 늘 추구하고 있는 자유를 향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특이한 학력의 소유자다. 군 제대 후 의대에 입학했으나 3년만에 자퇴를 했고, 다시 재입학 하여 전기 전공으로 학위를 받았다. 그런 이유로 10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 그 당시에는 나이 제한이 있어서 대기업 서류 전형 통과가 어려웠는데, 운 좋게 통과되어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미래가 보장되고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의대를 포기한 것은 자신만의 삶을 살고 싶다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그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자유를 추구하는 유전자는 대물림 되고 있다. 아들이 ‘음악을 하는 의사’가 되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아들 역시 미국에서 의예과에 입학했으나, 3학년에 그만두고 음악학교에 입학하여 재즈를 전공했다. 지금은 국내 광고회사에서 음악 연출 업무를 맡고 있다. 그와 본격적으로 걷기 관련 얘기를 하고 싶었다.


"언제부터 걷기를 좋아했는지?"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에 산에 미쳐서 지냈다. 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살고 있는 산장지기가 너무 부러워서 산장지기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결혼 후 산을 끊을 수 밖에 없었고, 언젠가 산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늘 마음 속에 품고 살았다. 그 시발점이 산티아고였다. 그간 굶주렸던 자연 속 야생의 삶을 한껏 누리고 싶었다. 산티아고에서 만장의 사진을 찍었던 이유도 동경했던 야생의 삶에 대한 갈증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자연 속에서 자유로운 야생의 삶을 사는 것이 바로 내가 꿈꾸는 삶이다."


그는 지금 초등학교 산악회장을 맡아서 사람들과 함께 산을 오르고, 때로는 혼자 길을 걷기도 한다. 혼자 걷는 이유는? 또 걸으면 어떤 좋은 점이 있는가?


" 일주일 이상 계속해서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누군가와 함께 걸으면 상대방에게 맞춰 걸어야 하고, 걷는 속도, 코스나 걷는 거리, 숙소, 쉬는 타이밍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진을 찍기 위해 중간에 멈춰서거나 때로는 뒤로 돌아갈 때도 있어서 동행이 있다면 괜한 번거로움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래서 홀로 걷는 게 편하고 자유롭다.


사람들이 왜 걷는가? 또 무엇을 배웠는가? 라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딱히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Just Walking!! 그 자체 밖에 다른 이유가 없다. 굳이 얘기한다면 '끌림'이라고 할 수 있다. 걷고 싶은 욕망이 강해서 걷는다. 그런 끌림이 옳았고, 쾌감과 재미라는 선물을 준다. 젊었을 때부터 '자유인 Don'이라는 별칭을 사용했다. 걸으면 자유가 충족이 된다. 또한 걷기를 통해 삶의 진리를 체득을 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은 무상하다는 진리와 삶은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은 생기고, 스러지고, 없어지는 과정의 반복이다. 그런 진리를 체득하면서 과정에 충실하고 결과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요즘도 그는 시간이 나고 기회가 되는대로 꾸준히 걷고 있다. 앞으로의 걷기 계획은?


"산티아고 다녀 온 후 제주 올레길과 서울 둘레기를 완주했다. 지리산 둘레길은 80% 정도 걸었고, 해파랑길도 70% 정도 걸었다. 앞으로 계속 걸어서 완주할 생각이다. 그 외에도 걷고 싶은 길이 많다. 동해안길인 해파랑길, 남해안의 남파랑길, 서해안길, 그리고 DMZ를 걷는 평화누리길을 연결한 코리아 둘레길 4,500km가 지금 조성 중에 있는데 그 길을 모두 걷고 싶다. 하지만 빨리 걷고 마치기에는 그 길이 너무 아깝다. 맛있는 사탕을 아껴서 빨아 먹듯이 이 길을 아껴가며 걷고 싶다."


그는 길을 걸은만큼 걸을 길이 줄어든다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길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 역시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끝나는 것이 아쉽고 아까워 천천히 걸었던 기억이 있다. 그에게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나만의 삶을 추구하고 자신이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싶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삶을 풍요롭게 살기 위한 연습을 꾸준히 해왔다. 할 일이 너무 많다. 보고 싶은 책들이 쌓여있다. 다듬고 정리할 사진이 너무 많다. 아직도 듣지 못한 음악 CD가 수두룩하다. 걷고 싶은 길이 나를 설레게 한다. 이런 일을 곶감 빼먹듯이 야금야금 하며 살고 싶다. 이 일만으로도 충분히 바쁘고 할 일이 너무 많다. "


그는 자신을 Lucky Man이라고 한다. 대기업에 다니면서 경제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아왔다. 가장으로 열심히 생활하며 동시에 자신만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추구해왔다. 평상시 그런 태도를 유지하며 살아왔기에 퇴임 후에도 불안감이나 무료함 없이 자신이 추구해왔던 풍요로운 삶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걷기란 무엇인가?"


"인생을 느낄 수 있고, 추구하고 있는 자유를 실현하는 좋은 방법이다. 걸으며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 자연과 교감하며 자유를 느낄 수 있다. 삶의 일부인 사진과 음악과 걷기의 삼위일체를 동시에 이룰 수 있다."


그는 닉네임처럼 '자유인 Don'이 되어가고 있다. 사회적으로 또 가정적으로 의무와 책임을 다하기 위해 써왔던 가면을 벗어 던지고 '자유인 Don'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걷고 있다. 그는 이미 ‘자유인 Don’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추구하며 살았기에 퇴임 후에도 방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풍요로운 인생 2막으로 연결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유인 Don’의 멋진 인생 2막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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