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크란 양은배 (70세)
잠실역에서 그를 만났다.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활기찬 발걸음으로 웃으며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청바지에 티를 입고 등산화를 신고 나타났다. 하얀 모자에는 산티아고 배지가 정중앙에 달려있다. 그 배지 하나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에게 걷기는 생활이다. 요즘도 매일 아침 7시에서 9시까지 한강변을 두 시간에 걸쳐 약 10km 정도 걷고, 매월 40만 보 300km 정도 걷고 있다.
별칭인 ‘슈크란’의 의미는 아랍어로 ‘Thank you’를 뜻한다. 토목 기술자로 중동, 미국, 인도 등 해외 현장에서 10년 정도 근무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중동 현장에서 ‘슈크란’이라는 말을 듣고 매사에 감사하고, 만나는 사람들이 고맙게 느껴져 이 별칭이 마음에 들어서 사용하고 있다. 토질 기초 기술사로 해외 플랜트 공장 건설, 호텔을 병원으로 변경하는 공사 현장을 진행했다. 국내에 귀국해서 중부 고속도로, 판교 구리 고속도로, 분당 택지 조성 공사 등 공사 현장 소장으로 바쁘게 살아왔다. 국내 대기업 건설 회사에서 오랜 기간 근무했으며, 최종적으로 미국 TEC 임원으로 퇴임했다. 퇴임 후에도 지금까지 TEC USA 선임 고문으로 위촉되어 사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장 소장으로 진행했던 국내외 공사 실적을 얘기하며 얼굴에는 자긍심과 미소가 활짝 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그만큼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 사람이다. 자신을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겸손하게 표현한다. 하지만, 세상이 운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남 모를 노력을 해왔고, 건설회사 취업 후에도 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노력을 해왔다. 과정 없는 결과는 없다. 끊임없는 노력의 과정을 통해 지금의 그가 되었을 것이다.
“걷기를 시작한 계기가 있었는지?”
“수자원 공사에서 수주받아 용담 댐 현장 소장을 맡아 도수 터널 24KM 공사 현장을 책임지고 있었다. 발주처에서 현장 소장이 터널 공사 현장을 점검한 기록을 매일 보내라고 해서 공사 중인 터널 속을 걸었다. 누수로 인해 바닥에 물이 흥건히 고여있는 깜깜한 터널 안을 헤드랜턴과 랜턴용 배터리를 등에 짊어지고 매일 걸었다. 나중에는 주 1회 8시간씩 터널 안을 걷기도 했다. 그때 걷기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산티아고를 언제 다녀왔는지?”
“용담 댐 공사를 마친 후 본사로 들어와 본부장을 하며 시간이 조금 나서 길에 대해 알아보다 산티아고를 알게 되었다. 2009년에는 사전 준비 없이 출발하여 사리야부터 100km만 걸었다. 2011년도에 생쟝에서 출발하는 프랑스 루트 800km를 완주했다. 2013년도에는 아내의 환갑을 기념하여 피니스테레와 묵시아까지 920km를 함께 걸었다. 그 후에는 친구들과 2015년에는 프랑스 르삐 길과 생장, 포르투갈을 잇는 1,260km에 달하는 길을 걸었고, 2017년도에 프랑스 길을 다시 걸었다.”
“산티아고를 여러 번 걷는 이유가 있는지?”
“그 길을 걸으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불편함도 감수하면 추억이 된다. 현장 소장으로 근무할 때 서투른 영어와 해외 발주처로부터 받는 불합리한 요구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했다. ‘갑’과 ‘을’의 관계가 주는 스트레스로 인해 힘들었다. 하지만 산티아고 길 위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게 된 것이다. 오직 두발로 길을 걷는 사람들이 아무런 조건 없이 아픔과 고통을 공유하는 모습에 반했다. 누군가가 앉아있으면 다가가서 도와줄 것이 없는지 물어보는 그런 문화에 반했고, 그것이 진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길을 걸으면 마음이 편하다.
”
“산티아고에서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용담 댐 현장 소장을 맡으며 터널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다. 그 당시 국내 전문 서적이 거의 없어서 외국 서적을 보며 공부했다. 터널 공사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독일의 석학이 쓴 책으로 공부했다.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우연히 독일인을 만나서 같이 걷고 식사를 하기도 했다. 식대가 30유로 나오면 그는 자신이 ‘거지’라며 10유로만 냈고, 나머지는 내가 냈다. 하지만 푸근한 느낌이 들어서 싫지 않았고 정말로 돈이 없는 사람인 줄 알고 기꺼이 지불했다. 산티아고 도착 후 연락처를 주고받는데, 그가 그 유명한 석학의 명함을 전해주었다. 설마 그 ‘거지’가 그 석학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어디서 주웠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냥 길에서 주웠다고 웃으면 얘기했다. 바로 그 ‘거지’가 그 석학이었다. 산티아고 다녀온 후에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만남을 이어갔다. 부부 동반으로 설악산을 다녀왔고 이후에 초대받아서 독일을 다녀오기도 했다. 독일 뒤셀도르프에 말을 4마리나 소유한 엄청난 부자가 그간 ‘거지’ 행세를 한 것이다.”
이 얘기를 들으며 문수보살이 어느 스님에게 자신을 만났다는 얘기를 하지 말라고 하자, 그 스님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쫓아냈다던 설화가 기억났다. 귀인을 눈 앞에 두고 알아보지 못한 스님의 무지보다 ‘거지’를 먹여 살린 그의 보살심이 더 돋보인다. 그는 평생 국내외 공사 현장에서 왕성한 활동을 해왔고, 특히 터널 분야의 국내 몇 명 되지 않는 전문가다. 외국 자료를 통해 독학을 하던 그가 자신이 공부했던 책의 저자를 만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만남은 예견된 것일 수도 있다. 길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사람이 실은 자신에게 길을 만드는 방법을 간접적으로 가르쳐준 귀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독일에서 만나 터널에 관한 많은 얘기를 나눴다고 한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스승과 길이 되는 터널에 대한 얘기를 하는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저절로 미소가 나온다.
“부인과 함께 산티아고 여행하며 있었던 에피소드는?”
“체리와 샌드라 사건이 있었다. 아내가 체리가 먹고 싶다며 가판대에서 2kg이나 구입해서 1kg 정도 먹고 남은 체리를 내 배낭 속에 불쑥 넣었다. 화장품 짐도 내 배낭 속에 넣고, 먹고 남은 음식까지 넣으니 화가 나서 옥신각신하며 떨어져서 길을 걸었다. 길을 가다가 한국인 대학생들을 만나 체리를 몰래 줬는데 아내가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화를 냈다. 그날 밤 오세브로의 알베르게에서 머물렀다. 그곳의 알베르게는 시설이 열악한 상태로 침대 사이 칸막이가 없어서 옆 사람과 닿을 수 있는 구조였다. 우리 부부는 일찍 도착하여 1층 침대에 머물게 되었다. 아내와 몇 번 만나서 즐겁게 얘기를 나눴던 안나라는 외국인 여성이 도착해서 2층 침대를 사용하게 되었다. 2층 침대 바로 옆자리에는 산도적처럼 생긴 덩치 큰 털보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안나를 위해 내게 침대를 바꿔달라는 아내의 요구로 내가 2층 침대에서 자게 되었다. 아침에 눈 떠보니 털보는 사라졌고, 금발의 예쁜 외국인 여성인 샌드라가 나를 보며 ‘Guten Morgen’하며 밝게 인사를 했다. 아내는 그 모습이 보기 싫었는지 내 침대를 발로 툭툭 차며 화를 냈다. 그리고 3일 후 뽈뽀(문어) 전문 식당에서 다시 샌드라를 만나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같이 식사를 한 후 식대를 내가 지불하자 아내는 또 화를 냈다. 이 두 사건으로 둘이 크게 싸웠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크게 싸운 후에 오히려 둘의 관계는 더욱 단단해진 느낌이 들고 신뢰가 쌓인 느낌이 들었다. 늘 아내에게 비울 줄 알아야 한다고 얘기했고, 아내도 비우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화장품이나 샴푸도 버리고 비누 하나로 해결하기도 했다. 그 후에 페루 마추픽추에 다녀왔다. 인상을 찌푸린 사람들을 본 적이 없고 모두 웃고 있는데, 그에 비해 우리는 너무 가진 게 많은데 비해 웃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굳이 좋은 집, 좋은 차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얘기하며 비울 필요가 있다고 얘기하는 것을 보니 많이 변한 것 같다. 지금 아내는 산티아고 다녀온 후에 친구들 사이에 유명 인사가 되어 즐겁게 지내고 있다. 나와 서울 둘레길을 두 번이나 같이 완주하며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걷기를 통해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히포크라테스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약은 걷는 것’이라고 했다.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좋은 약보다 좋은 음식이 더 좋고, 음식보다 더 좋은 것이 체계적인 걷기’라고 했다. 걷기 전에는 몸무게가 80kg 정도였는데, 걷기 시작한 후 15년간 70kg대를 유지하고 있다. 걷기 덕분에 체중이 저절로 안정되게 유지되고 있다. 또한 젊었을 때는 무조건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삶을 살아왔는데, 그 ‘빨리빨리’가 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은 천천히 걸으며 충전하는 느낌을 받는다.”
“걷기를 통해서 배운 것이 있다면?”
“마음을 비우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삶에서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빨리빨리’에서 벗어나 여유를 갖고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양보를 배우게 되면서 겸손을 배울 수 있었다. 비우면 양보를 할 수 있게 되고, 양보하는 마음은 겸손한 마음이다. 산티아고 길도 순례자의 길이다. 걸으며 저절로 마음 수양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걷기를 통해 건강한 삶을 살고 싶은 소박한 마음이다. 걷다가 생을 마감할 수 있다면 좋겠다. 돈 없이 건강 유지를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걷기다. 꾸준히 아내와 함께 또는 따로 걸으며 건강하게 살고 싶다. 그간 사회생활하고 자식 키우며 살아왔는데, 두 아들 모두 장성해서 내가 신경 쓸 일이 없다. 할 일을 모두 마친 느낌이다. 건강한 삶 외에 더 이상 바랄 것은 없다.”
그는 사람들을 만나면 늘 산티아고 길을 추천한다. 그가 체득한 것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느끼고, 일상 속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그는 그렇게 아는 것을 공유하고 나눌 줄 아는 사람이다. 말투도 차분하고 조금 느리지만, 확신에 찬 그의 말에서 신뢰를 느낄 수 있다. 남의 말에 마음을 열고 경청할 줄 아는 열린 사람이다. 40년 이상 사회생활을 열심히 해왔고, 자식들이 모두 성장했으니 가정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할 일을 모두 마친 사람이다.
‘걷기 학교’를 준비하고 있어서 그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는 국내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들을 위한 걷기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국내에 좋은 길들이 많이 있는데, 외국인들이 편하게 접근하고 걸을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고 했다. 또한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을 위한 걷기 프로그램도 좋겠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좋은 조언이다. 앞으로 ‘걷기 학교’ 프로그램 기획 및 운영 시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걷기란 무엇인가?”
“내 삶의 충전 배터리다. 동서양의 의학을 대표하는 분들이 걷기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 꾸준한 걷기를 통해 삶을 충전할 수 있다. 걷지 않으면 근육이 소모된다. 건강한 걸음을 하면 체지방이 줄어들고 근육량이 증가한다. 이것 자체가 바로 충전이다.”
석촌 호수 주변 커피숍에서 얘기를 마치고 나오니 사람들이 호수 주변을 많이 걷고 있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걸으며 건강과 면역을 챙기려는 분들의 모습이 오늘따라 반갑게 느껴진다. 석촌호수 주변을 함께 걸으며 등산화에 대한 질문을 했다. 그가 신고 있는 2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외국계 등산화 브랜드를 추천해주었다. 자신이 직접 사용해 보고 추천하는 것이니 믿을 만한 정보다. 그가 식사를 대접한다며 그의 단골 식당으로 안내를 했다. 추어탕을 맛있게 먹고 잠실역 지하상가로 들어갔다. 날씨가 좋지 않을 때 걷는 코스라고 한다. 왕복 2.4km 정도로 비가 많이 오거나 많이 추운 날 지하상가를 걷는다고 한다. 그는 일상 속에서 걷기를 생활화하며 건강을 지켜나가고 활기찬 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활기찬 삶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