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친구가 자신이 쓰던 귀한 카메라를 주며 사진 공부를 권했다. 무거운 카메라와 렌즈가 들어있는 가방을 메고 나오는데 고마움과 부담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 친구는 사진 전문가로 가끔 내가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을 보며 격려를 해주는 친구다. 자신이 걸으며 찍은 사진을 보내주기도 한다. 같은 풍경을 보고 찍어도 사진은 다르게 나온다. 아마 그런 이유 때문에 내게 사진 공부를 권했을 것이다. 계속 길을 걷고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고 이왕 찍는 사진 제대로 배워서 찍으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 마음이 고마웠다. 그러면서 동시에 뭔가 부담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어깨에 메고 돌아오는데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산티아고 가기 전 소형 캠코더를 선물해 주신 선배님이 생각났다. 동영상으로 자료를 정리해서 올리면 좋을 것 같다며 기능 좋은 여러 부품을 준비해 주셨다. 그 제품들이 집에 도착했는데 어떤 부품을 어디에 조립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찍고 보관해야 하는지, 혼란스럽고 정신이 없었다. 원래 기계치인 사람이 그런 복잡한 기계를 보니 걱정부터 앞선다. 떠나기 전 결국 그 캠코더를 포기하기로 했다. 걷기 위해 산티아고를 가는데, 캠코더 작동법으로 헤매고 있을 자신을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기록이 남지 않더라도 오히려 걷는데 치중하고 싶었다.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고, 요즘도 가끔 그 사진들을 들여다보며 추억을 되새기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그 기계를 들고 가지 않은 것은 탁월한 결정이었다. 산티아고 다녀온 후에 선배님에게 이실직고했고, 결국 그 캠코더는 그런 기계를 잘 사용하고 마라톤에 빠져있는 후배와 함께 잘 뛰고 있다.
며칠간 카메라를 집에 잘 모셔두었다. 몇 번 꺼내서 렌즈를 바꿔 끼우기도 했고, 배낭을 둘러맨 채로 카메라를 목에 메기도 했다. 배낭을 멘 상태에서 카메라를 목에 메고 스틱을 들고 걷는 모습을 상상만 해봤다. 그 카메라와 함께 걸을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 익숙하지 않은 카메라 사용법을 배우는 것도 내게는 큰일이고 어려운 일이다. 며칠간 다시 고민했다. 그 친구의 고마움 마음을 알기에 카메라 공부를 해 볼까도 잠시 생각했다. 그러기에는 이미 늦은 거 같다. 휴대전화 카메라가 점점 진화한다고 하니 휴대전화로 사진 찍고 걷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선배가 선물해 준 캠코더를 들고 가지 않았던 경험도 이번 결정에 도움이 되었다. 카메라에 치여서 걷기를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며칠 후 전화해서 돌려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막걸리 한잔 마시며 기분 좋게 돌려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번에 확실하게 배운 것 중 하나는 아무리 좋은 물건도 내게 맞지 않거나 불필요하다면 굳이 갖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카메라를 돌려주고 나니 몸과 마음이 무척 홀가분해졌고, 기분도 좋아졌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닐 필요 없이 홀가분하고 가벼운 차림으로 걷기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사진은 휴대전화로 찍으면 된다. 내 사진 수준이 그 정도라는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다.
이번 카메라 사건은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권력은 일단 쥐면 놓기 싫다고 한다. 권력의 맛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력은 쥘 수 있는 사람이 쥐어야만 권력을 다룰 수 있다. 사람이 권력에 치이면 권력의 하인이 될 수밖에 없다. 금전적 부를 누리는 것도 같은 이치가 해당된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 중에 잘 살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돈이 사람을 망쳐놓은 것이다. 돈을 제대로 벌고 쓸 줄 아는 사람이 부를 누릴 자격이 있다. 큰돈은 어린아이를 망칠 수도 있다. 명예 역시 같은 이치가 적용된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 좋은 명예를 누리게 되면 그 명예가 사람을 망치게 된다. 머슴에게 완장을 주니 하루아침에 사람이 변하는 ‘완장’이라는 예전 영화가 기억난다.
모든 물건, 부귀, 명예, 권력에는 그 크기와 무게에 맞는 주인이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주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주인 자격이 없다고 모든 사람들은 잘 알고 있는데, 자신만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맹인 시각을 지닌 사람들이다. 남들에게 모두 보이는 사실이 유독 자신에게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물건, 부귀, 명예, 권력의 하수인이 되면서도 자신이 주인이라고 착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불쌍하고 안쓰러운 속 빈 강정 같은 사람들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지금 나의 삶의 모습은 딱 나의 크기에 맞다. 나의 크기에 맞는 지금 생활에 만족하는 법을 배울 시기가 온 것이다. 법정 스님 말씀이 생각난다. “물건을 구입 전 그 물건이 자신의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지 생각해 본 후에 구입하는 것이 단순한 삶을 사는 방법이다.” 이번 카메라를 통해서 단순하게 사는 법을 조금 알게 된 느낌이 든다. 아차!! 이 역시 경계해야 할 교만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