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081]
수수 책방과 선심초심(禪心初心)
코스: 20200624 (월드컵경기장역 – 문화비축기지 – 메타세콰이어길 – 한강 7km)
누적거리: 1,215km
평균 속도: 4.6 km/h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오랜만이 촉촉이 내리는 비가 무더위를 식혀주고 있습니다. 비가 차분히 내리는 저녁에 우산을 쓰고 걷는 재미가 아주 좋습니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귀를 간지럽히고 있습니다. 나무 아래를 지날 때 바람이 불면 후드득하며 큰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 소리도 반갑습니다. 물이 조금 고인 웅덩이를 뛰어넘으며 어릴 적 뛰어놀던 추억이 되살아 나기도 합니다. 가로등이 켜지면 주황색 불빛이 약간 쌀쌀한 날을 푸근하게 감싸 주기도 합니다. 언젠가부터 비 오는 날이 좋아졌고, 기다리고 있기도 합니다. 오늘도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괜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으면서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설렘이 찾아옵니다. 약속도 없고, 오지도 않을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이 설렘을 가져다줍니다. 이런 가벼운 떨림이 오늘을 기분 좋게 만들어 줍니다.
얼마 전에 친구와 길을 걷다 우연히 한 책방에 들렸습니다. ‘수수 책방’입니다. 이름이 시선을 끌어서, 또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 들어갔습니다. 합정역 7번 출구에서 당산 철교를 따라가다가 절두산 성지 조금 못 미쳐 지그재그형 계단 바로 아래 왼쪽에 있는 작은 책방입니다. 이 길은 제가 자주 걷던 길입니다. 처음 만난 푸근한 책방 지기께서 친절하게 차를 대접해 주셔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지만 귀한 인연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작은 공간이지만 숨 쉴 수 있도록 여유롭게 서가와 의자를 배치를 해 놓은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책을 구경해도 되고, 자신의 책을 갖고 와서 앉아서 책을 읽어도 된답니다. 이 책방 지기는 아마 장사 수완이 없는 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찾아오고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니 인덕이 많은 분인가 봅니다.
서가를 보니 심리학 책들이 있고, 걷기 관련 서적, 마음공부와 심신 힐링 서적 등이 많이 있습니다. 제 취향에 맞는 책들만 모아 놓은 것 같습니다. 책방 지기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최근에 상담 심리 공부를 하셨고, 사람들의 영성 성장과 마음 치유에 관심이 많으시다고 합니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씨의 저서 ‘나는 걷는다’가 서가에 있어서 그 저자를 만났다는 얘기와 함께 제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책을 기증받아 누구든지 편하게 읽을 수 다. 어르신들의 자서전 쓰기 강좌가 진행 중에 있고, 화가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앞으로는 작은 음악회도 기획하고 있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시겠다고 합니다.
어제 그 책방에 책 몇 권 들고 다시 방문했습니다. 혹시 알바가 필요하다면 저를 채용해 달라는 생각에 제 이력서도 한 부 준비해 갔습니다. 말씀 나누는 도중에 명상 프로그램을 진행하시고 싶다고 해서 제가 진행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걷기 프로그램에 대한 계획도 설명해 드렸습니다. 알바 구하러 갔다가 명상과 걷기 프로그램 진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책방을 다녀온 뒤에 혼자 이 책방에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날 했습니다. 이상하게 제가 주인이 아님에도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얘기를 책방 지기와 나누며 함께 웃기도 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보니 저와 책방, 책방 지기와는 귀한 인연이 맞습니다.
산티아고 다녀온 저의 자전적 에세이 ‘새로운 나로 태어나는 길, 산티아고’를 한 권 전달해 드렸습니다. 무슨 글을 쓸까 고민하다가 ‘아름다운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선심초심(禪心初心). 저자 걷고 이휘재’라는 글을 악필로 써서 전달해 드렸습니다. ‘선심초심’은 일본의 선을 세계에 전한 스즈키 순류 선사의 책 제목으로 유명합니다. 반야심경을 처음 독경할 때의 마음이 바로 초심이고, 매일 독경을 하면서도 처음 독경할 때의 경건한 마음과 경의 내용을 평생 되새기며 정진을 해나가는 것이 바로 선심입니다. 마음공부하는 사람들은 초심을 잃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부디 ‘수수 책방’이 초심을 잘 유지해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함께 나누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약속드렸던 명상과 걷기 프로그램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여 다음 주 중에 보내드릴 생각입니다. 언제 시작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저 역시 함께 나누고자 하는 초심을 잘 지켜나가겠습니다. 귀한 인연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