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079]

드레스 코드

by 걷고

드레스 코드 : 퍼플 (purple)


걷기 동호회 카페에 올라온 공지에 '드레스 코드, 보라색' 이 있다. 드레스 코드? 정말 낯선 단어다. 근데 신선하고 활기가 느껴진다. 참석하시는 분들이 모두 드레스 코드에 맞춰 뭔가를 준비해서 나오신다는 얘기는 더욱 신선하다. 드레스 코드에 맞는 반지, 옷, 신발, 스카프 등 한 가지라도 맞춰 나오신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이런 발상과 시도는 참석 여부를 떠나서 생각만으로도 즐겁다.


'드레스 코드'가 두 가지를 연상시켜준다. 최근에 코로나로 외출이 금지된 외국에서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는 유일한 외출 시간에 가장 멋있거나 재미있는 복장으로 나온다는 뉴스가 떠올랐다. 결혼식 드레스, 슈퍼맨 옷, 턱시도 등 자신이 가장 멋있게 보이거나 평상시에 입고 싶은 옷을 입고 쓰레기를 버리러 집 앞 외출을 감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쓰레기 버리러 나오는 그 외출 자체가 활력이고,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고, 주변 이웃과 인사를 나누며 웃을 수 있는 시간이다. 예전에는 쓰레기 버리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서로 쓰레기를 버리겠다고 나섰을 수도 있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자가 격리는 반작용으로 이런 재밌는 상황을 연출하며 함께 지혜롭게 극복해 나가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유니폼이 떠올랐다. 중고 시절 모두 교복을 입었다. 여름에는 하복, 겨울에는 동복을 입어야만 했다. 고교 시절에는 교련복을 입었다. 매 맞지 않기 위해서라도 입어야만 했다. 대학 시절에는 문무대라는 곳에 가서 군사 훈련을 받으며 군복과 군화를 입고 신었다. 입대해서 군복을 입었다. 입대를 안 하거나 군복을 입지 않으면 감옥이나 영창에 가야만 했다. 첫 직장인 호텔에 근무할 때에는 한 여름에도 긴팔 와이셔츠를 입고, 감색이나 고동색 양복만 입어야만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하거나 호텔에서 근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모두 강요된 드레스 코드이고, 유니폼이다. 개성은 사라지고 조직만 살아있는 유니폼이다.


'드레스 코드'를 생각하면서 왜 유니폼이 떠올랐을까? '강요된 드레스 코드'였고, '자발적 드레스 코드'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유니폼이 떠올랐을 것이다. 같은 옷을 입어도 자의에 의해 입는 옷은 '거지 같은 옷'이라도 즐겁게 입을 수 있지만, 강요에 의해 입는 '황제 같은 옷' 도 마치 죄수복처럼 거북스러울 수도 있다. 옷은 그냥 옷일 뿐인데,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 아마도 '삶의 주도권'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강요된 유니폼은 '삶의 주도권'이 자신에게 없고 다른 누군가에게 있다. 틀림없이 자신이 주인임에도 명령을 내리는 누군가가 있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해도 신이 나지 않고 하면 할수록 지치고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더욱 자신을 힘들게 만들 수도 있다. 반면에 작은 일이라도 자신이 결정한 일을 하게 되면 신이 나고 즐겁고, 해도 해도 지치지 않는다. 물론 체력적으로는 지칠 수도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오히려 더 충전이 될 수도 있다.


살다 보면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삶의 주도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그 '하기 싫은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 좋아하는 일도 타인의 강요에 의해서 하게 되면 싫어질 것이다. 그런 면에서 '걷기'와 '드레스 코드: 보라'는 '삶의 주도권'을 회복시켜주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걷기'는 자신의 뇌가 명령을 내려야만 걸을 수 있다. 오직 자신만이 자신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걷기'는 삶 속에서 지친 심신을 회복시켜주면서 자신의 뇌를 건강하고 균형감 있게 만들어 준다. 건강한 '자기 주도권' 형성에 큰 도움을 준다. 게다가 '드레스 코드'를 추가하여 재미와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이런 재미는 자신의 행동을 강화시켜서 더욱 건강한 자신을 회복하고 유지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아내에게 '드레스 코드, 보라'를 얘기했더니 아내가 나보다 더 신이 나서 이것저것을 찾아본다. 결국 찾아낸 것은 보라색 티와 등산용 방석, 그리고 짧은 끈뿐이다.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재미있고 활기찬 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아내에게 땀이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한 머리띠 얘기를 했더니 직접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보라색을 Accent Color로 하면 좋겠다고 얘기했는데, 안타깝게도 없다고 한다. 없어도 상관없다. 이미 우리 부부는 '드레스 코드'를 찾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보상을 받았으니까.


이번 주 화요 저녁 걷기가 기대된다. 어떤 복장이나 물건으로 '드레스 코드'를 맞춰 나올지 참석자들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이 또한 활력이다. 만나기 전 설렘이 있고, 만나며 웃는 즐거움이 있고, 마친 후에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의 여운이 있다. 신선한 아이디어에 감사를 표한다. 각자 자신만의 모습으로 멋진 '드레스 코드'에 맞춰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 보라색의 의미를 검색해봤다. '예전부터 고귀한 색이라 불려 왔다. 직관력, 통찰력, 상상력, 자존심, 그리고 관용과 긍정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우아함과 품위, 화려함을 상징하며 신비스럽고 개성 있는 색이다.' 우리 모두 보라색을 지니고 우아함과 품위 있는 걸음걸이를 활기차고 즐겁게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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