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과 언어 습관
코스: 20200618 합정역 – 선유도 공원 – 당산역 6km
20200619 집 – 문화 비축기지 – 메타세쿼이아 길 – 한강변 – 월드컵공원 – 집 12km
20200620 서울 둘레길 3회 차 리딩 (화랑대역 - 망우공원 – 용마산 – 아차산역 13km)
누적거리: 1,188km
평균 속도: 3.9 km/h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서울 둘레길 3회 차 길 안내를 진행했다. 그 코스 중 시작하는 지점인 화랑대역에서 양원역까지 가는 길이 조금 불명확해서 사전에 그 길을 다시 한번 답사를 했다. 막상 걸어보니 헷갈릴 일이 없는 쉬운 길이었다. 아마 처음으로 서울 둘레길을 걸으며 길 찾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어렵게 느꼈던 것 같다. 그간 서울 둘레길 완주를 하며 길 찾는 나름대로의 방법을 체득하게 된 것 같다. 재 답사로 인해 어제 3회 차 길 안내는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용마산에서 길을 잘못 들어서 결국 아차산으로 가지 못하고, 용마산 둘레길을 지나 아차산역에서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참가하신 모든 분들께 많이 미안했다. 잘 모르는 산길이고 조금 위험한 길이라서 헤매며 당황했었고, 그 당황함을 무마시키기 위해 표정 관리를 하기도 했다. 모든 참석자분들이 당황하지 않고 잘 따라오셨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새로운 길을 걸어서 좋았다는 말씀을 해 주시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아마 용마산 정상 부근의 체육 시설이 있는 곳에서 길을 잘못 들어선 것 같다. 다음에 다시 한번 이 길을 걸으며 길을 익힐 생각이다. 앞으로 서울 둘레길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걷게 될 것이다. 이런 실수를 통해 길을 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된다.
어제 일을 돌아보았다. 우선 재 답사를 할 때 잘 모르는 구간뿐 아니라 전 구간을 모두 걷지 못한 것이 이런 실수를 만들었다. 이왕 재 답사를 하려고 나왔는데, 전 구간을 다시 한번 걸으면 좋았을걸, 다른 구간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을 했던 것이 문제였다. 길은 자주 변한다. 공사나 사고로 인해 같은 길도 우회길을 만들어 당황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 앞으로는 길 안내 바로 전 주에 다시 한번 그 코스 전 구간을 재 답사하여 이런 실수를 하지 않을 생각이다.
힘들어하시는 분들도 있어서 걷는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졌다. 지금은 한 여름이라 괜찮지만, 낮이 짧아지면 출발 시간을 좀 더 앞당길 필요가 있다. 산속에 어둠이 일찍 찾아오고 만약 이번처럼 길을 헤매게 될 경우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다. 길 안내를 맡은 사람으로 길에 대한 집중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속도만 조금 조정하면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한 집중이 필요하다. 리딩 하는 사람으로서는 길을 안전하게 코스대로 잘 찾고 안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자신이 맡은 역할에 충실하게 하는 것이 살아가는 지혜다. 너무 오지랖 넓게 이것저것 신경 쓰다가 정작 자신의 역할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이 부분을 명심하여 앞으로 남은 서울 둘레길 안내를 무난하게 마칠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마음과 다른 말을 하고는 뒤돌아서며 바로 후회하는 경우가 최근에 많이 있다.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하고 있고, 생각하지 않고 불쑥 말을 내뱉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주로 ‘셀프 디스’하는 말투와 상대방의 말을 쓸데없이 혼자 해석해서 듣고 말을 하는 나쁜 습관이다. 웃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셀프 디스’ 표현을 하는데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하는 것 같다. 같은 표현도 상대방이 잘 알아듣고 기분 좋게 들을 수 있는 다양한 표현이 있다. 또한 상대방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쓸데없이 판단과 해석을 내리기도 한다.
이런 나쁜 습관을 알기에 말하기 전에 생각을 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런 시도를 하면서 어떤 경우에는 할 말이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남들과 즐겁게 어울리는 자리에서 말할 타이밍을 놓치거나 굳이 이런 말을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을 안 하게 되기도 한다. 가끔은 어떤 자리에서건 아무 얘기나 편안하게 하고 즐겁게 대화하는 사람이 부러울 때도 있기도 하다. 그런 재주가 없는 사람이니 어쩌면 차라리 조용히 다른 사람들의 말에 경청하며 공감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