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란 내면 정화 작업이다

안개 이연순 (63세)

by 걷고

약 6년 전 걷기 동호회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수더분한 인상에 마음씨 고운 사람으로 모든 회원들과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는 사람이다.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나이를 떠나 모든 사람들과 격의 없이 지내는 사람이다. 서로 일정이 어긋나 한동안 만나지 못했다가 해파랑길을 걸으면서 오랜만에 만났다. 늘 뒤에서 걷는 편이어서 자연스럽게 회원들의 뒷모습을 보고 걷게 된다. 그녀의 걷는 모습에서 생기를 느낄 수가 없었고, 약간 넋이 나간 느낌을 받았다. 알고 보니 외아들이 심한 교통사고를 당해 어쩌면 평생 다리를 못 쓰게 될 수도 있는 긴박하고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 당시 상황이 어떤지 궁금했다. 얘기를 시작하자마자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2018년 2월 7일 교통사고가 났다. 고관절이 부러져서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큰 병원으로 옮겨서 수술을 마쳤지만, 의사 선생님도 걸을 수 있는지 미지수라고만 했다. 그런 상황이 믿을 수가 없었고 답답하기만 했다. 아들은 수술 이후 처음 두 달간은 혼자 설 수도 없었다. 재활치료와 근육 강화 운동을 통해 8개월 만에 걸어서 나왔다. 그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내 몸을 힘들게 하고 싶었다. 아들의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괴롭고 무능하다는 생각만 떠올랐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파랑길을 걷게 되었는지?”


“2018년 3월에 해파랑길 간다는 걷기 동호회 공지를 보게 되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니 크게 힘든 일을 겪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아들이 만약 걷지 못하게 되더라도 평생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었다. 그전에는 가까운 거리도 차로 이동하는 편이었는데, 몸을 혹사시켜서라도 정신을 차리고 싶었다. 하루에 15 – 20km를 1박 2일 걷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루 걷고 나면 다리가 퉁퉁 부었다. 하지만 아프다는 소리조차 내지도 않고 꾹 참으며 걸었다.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아들을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이런 정도의 어려움은 극복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함께 걸었던 길동무들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게 해파랑길을 걸으며 용기를 얻고 정신 차릴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힘든 상황을 겪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만큼 일상생활이 편안했다는 얘기로 들렸다.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자신이 맡은 책임을 완수하고, 어려웠던 상황을 담담하게 견뎌낸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부모와 친정 부모 병간호를 도맡아 했다. 시부모님은 폐암과 신장 암으로, 친정 부모님은 당뇨와 혈압으로 돌아가셨다. 10여 년을 소용돌이 같은 삶을 살았다. 가족과 집 밖에 모르고 살아왔기에 친구들도 모두 떠나가 버렸다. 양가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 갑자기 주위가 너무 조용해졌다. 어디선가 전화벨이 울릴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오기도 했다. 그러던 중 남편의 사업이 무너졌고, 나는 난소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을 하려고 개복했는데, 다행스럽게 암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수술실에서 나오면서 죽고 싶은데 죽지도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시작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예전 회사 상사 제안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되면서 경제적으로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런 일을 겪으며 심한 갱년기 증상이 나타났다. 신랑도 싫고 자식도 싫어졌다. 혼자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었다. 집안에서만 박혀 살다 보니 어딘가 혼자 갈 엄두도 나지 않았고, 갈 데도 없었다. 걷기 여행 검색을 하다가 네이버 카페 ‘걷기 마당’을 알게 되었다. 가입 후 첫걸음 나가기까지 많은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다. 카페에서 버스를 대절해서 지방에 내려가 걷는 일정이 있었는데, 그때 참석한 후에 긍정적으로 변하면서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혼자서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었는데, 그럴 용기가 없는 사람에게 너무나 좋은 기회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런 모임을 몇 년 전에만 알았더라도 삶이 바뀌었을 것이다.”


양가 부모님 병간호로 10여 년의 세월을 보냈고,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져서 취업을 하며 가정을 조금씩 안정시켜가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것이 힘든 일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사람이다. 자신을 한 길만 파는 외골수라고 표현한다. 미장원도 한 곳만 다니고, 직장 생활도 한 곳에서만 하고, 집과 가족밖에 모르고 살아온 사람이다. 불평불만을 표현하는 대신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묵묵히 삶을 수용하는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인복이 많고 많은 사람들이 이끌어 주기에 항상 감사하고 있다고 한다. 집안이 안정되어 살만하게 되니 아들 교통사고로 또 한 번 힘든 시간을 견뎌내야만 했다. 그 과정을 겪어내는데 걷기가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어떤 도움이 되었는가?”


“아들과 남편의 허락을 받고 1박 2일 진행하는 해파랑길을 매월 따라 걸었다. 길을 걸으면 잠시라도 아들 일을 잊어버릴 수 있다. 잡생각이 사라지고 주변 경치가 오롯이 들어온다. 정신이 맑아지고 풀 한 포기도 고맙게 느껴진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걸으며 속으로 울기도 했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동료들의 격려와 말 없는 기도도 많은 힘이 되었다.”


“어느 길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


“포항 바닷길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해변의 자갈밭을 보며 내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더라. 모가 난 부분이 잘려 나가고 둥근 모습으로 변한 자갈들이 마치 나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조류로 인해 자갈들이 이리저리 쏠리고 서로 부딪치며 소리 내고 마찰로 인해 둥글게 변해버린 모습을 보며 내 인생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포항 바닷길이 가장 인상에 많이 남는다.”


“스스로 인복이 많다고 얘기를 했는데?”


“길 안내를 위해 봉사를 해 주시는 분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에게 길 안내를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모습을 보며 감사함을 배웠다. 해파랑길도 길 안내를 해 주시는 분이 있어서 따라갈 수 있었고, 길동무들의 격려가 있어서 걸을 수 있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런 봉사를 하는 분들을 보며 나 자신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걷기 동호회에 참석할 때, 누군가가 옆에서 친절하게 동호회에 관한 설명을 해 주었던 그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도 처음 나오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더 신경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한 회원들 고민도 들어주고 해결해 주려고 조금씩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개인 맞춤형 달력을 만들어서 선물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어떤 달력인가?”


“해파랑길을 1년 넘게 매월 1박 2일 걸었던 덕분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어려운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런 기회를 만들어 준 길 안내자와 길동무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카페에 올라온 사진들을 정리해서 각자의 얼굴이 인쇄된 국내 유일의 달력을 만들어 열 명의 길동무들에게 선물했다. 처음에는 사진을 카페에서 골랐는데, 너무나 힘들어서 개인들에게 자신의 사진을 보내라고 부탁을 하기도 했다.”


“길을 걸으며 배운 점이 있다면?”


“지금까지 집, 회사, 식구만 알고 살아왔는데, 걸으며 시야가 넓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해파랑길을 걷는 것은 오직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모든 책무로부터 벗어나 홀가분하게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걷는 것이다. 자연 경치를 즐기며, 사람들과 얘기를 하고, 다양한 지역 음식을 먹으며 삶이 풍부해지고 넓어진 것 같다. 또한 길을 걸으며 여유로움을 배우게 되었다. 몸은 힘들어도 생각은 편안하고 정신은 맑아지고 복잡한 생각은 사라진다.


예전에는 갈 곳도 없었고, 혼자 여행할 용기도 없었다. 하지만 언제든지 어딘가 함께 갈 수 있는 모임이 있다는 사실이 주는 여유로움이 있다. 모든 세상일, 집안일을 잊어버리고 힐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 길을 걷는 것이다. 특히나 해파랑길을 걸으며 바다가 너무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바다 내음도 싫었는데, 지금은 그 냄새가 좋아질 정도로 바다를 좋아하게 되었다. 바다 앞에 당당하게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삶 속에 용기와 희망을 갖게 되었다.”


“별칭을 안개로 정했는데, 어떤 의미인지?”


“원래 꽃을 너무 좋아한다. 안개꽃도 좋아하는데, 그 별칭은 다른 사람이 사용하고 있어서 ‘안개’로 정했다. 집에 분재를 할 정도로 꽃을 좋아하고 다양한 꽃을 키우고 있다.”


“걷기 시작한 후 가정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남편이 1박 2일 허락을 해준 것도 큰 변화다. 아들도 병상에서 다녀오라고 해서 고마웠다. 그런 고마움에 화답하기 위해서 남편과 아들에게 좀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함께 있는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잘 대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특히 남편에게 신경을 많이 쓰고 있고, 남편이 싫어하는 것은 하지 않는 편이다.”


지금 아들은 직장 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한다. 뛰는 것은 조금 무리지만 일상생활에 전혀 무리가 없다고 한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걷기란 무엇인가?”


“걷기란 내면 정화 작업이다. 걷기를 하면 복잡한 생각을 씻어버리게 된다. 1박 2일 길을 다녀오면 그 효과가 적어도 1주일은 간다. 그런 이유로 계속해서 참석하게 된다. 지금은 가만히 누워있으면 자꾸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길이 나를 부르고 있다.”


그녀는 힘든 시간을 걸으며 잘 견뎌냈다. 그리고 감사함을 배웠고, 그 감사함을 가족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길을 걸으며 내면 정화 작업을 통해 복잡한 마음을 투명하고 맑게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런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인터뷰 끝날 시간쯤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아들이 집에 와서 식사를 한다는 전화를 받고 음식 준비를 위해 서둘러 떠나는 뒷모습에서 활기와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해파랑길을 모두 마친 그녀는 매월 남파랑 길을 따라 걷고 있다. 남파랑 길 다음에는 서해안 길과 평화누리 길을 걸을 생각을 하고 있다. 언젠가는 코리아 둘레길을 모두 걷는 날이 올 것이다. 길이 그녀를 부르고, 그녀는 반갑게 그 부름에 화답하며 걷고 있다. 그녀의 활기찬 걷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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