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병원에 다녀왔다. 두 달 간격으로 혈압약을 처방받기 위해 병원에 간다. 병원 가는 길에 초등학교가 있다. 선생님 한 분이 마스크를 쓰고 교문에서 마스크를 쓰고 등교하는 어린 학생에게 인사를 한다. 딸처럼 보이는 사람이 노인이 탄 휠체어를 밀고 오는데 두 분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 그 뒤에 아버지가 초등학생 손을 잡고 걸어오는데 마스크를 쓰고 있다. 서로 대화하기 싫어하는 사람들로 보였다. 병원에 들어가니 마스크를 쓴 간호사가 이름과 생일을 적으라고 종이를 내민다. 나 역시 마스크를 쓰고 아무 말 없이 기록한다. 의사를 만나는 자리에서도 둘 다 마스크를 쓰고 혈압이 얼마라는 말만 하고, 듣고 나왔다.
마치 딴 세상에 온 느낌이다. 우리가 기계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사하는 선생님 대신 로봇이 인사를 하면 안 될까? 휠체어를 로봇이 밀면 안 될까? 초등학생 등교를 로봇이 시켜주면 안 될까? 혈압 체크를 로봇이 하면 안 될까? 약 조제를 로봇이 해서 집으로 배달시키면 안 될까? 모두 가능한 일이다. 집에 돌아와 TV를 틀었다. 집안일을 하는 로봇이 등장한다. 빨래하고, 식탁 닦고, 커피 타다 주고, 심지어는 애완견과 놀아주기도 한다. 아직 시험 운영 중인 로봇이라고 하는데, 곧 시판될 수 있을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얼굴 표정을 볼 수 없다. 예전의 마스크는 자신의 모습을 가리기 위한 방편으로 도둑들이나 쓰는 것이었다. 이제는 쓰지 않으면 사람 대우를 받지 못하고 심지어는 대중교통도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심리 상담도 화상 상담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대면 접촉이 사라지면서 소통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공감 능력이 저하될 가능성도 높다. 소통과 공감이 되지 않고 역할이나 기능만 수행한다면 로봇이 인간보다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직원 채용 면접도 A.I 가 하고 있다.
집에 돌아오며 또 TV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사람은 무슨 일을 하지? 그 많은 시간을 무엇을 하며 보내지?” 집안일, 업무, 의료 행위 등 모든 일들을 로봇이 한다면 우리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기계의 노예가 되는 것은 아닐까? 진화론적으로 생각한다면, 몸이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드니 자동적으로 퇴화되어, 나중에는 뇌만 남아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 뇌도 스스로 생각하는 뇌가 아니라 로봇이 내리는 명령만 따르지 않을까? 몸과 뇌가 스스로 역할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세상에서 나는 병원을 한 시간 이상 걸어서 다녀왔다. 시대에 뒤떨어진 행동이다. 로봇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거나, 집안에서 화상 진료를 받고, 배달되는 약을 먹으면 될 것을. 이런저런 상념 속에서 아주 옛날에 들었던 얘기가 생각난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그렇다, 나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예전의 삶을 살고 싶다. 현대 속에서 비 적응자로 살더라도 몸으로 움직이며 직접 체험하고 느끼면 살고 싶다. 사람들과 SNS를 통해 소통하지 않고, 직접 만나 얼굴 보고 얘기하고, 전화 통화를 하고, 웃고 싸우고 울며 살고 싶다. 필요한 SNS 활동은 기본적으로 하겠지만, 그 세계 속에 빠져 살고 싶지는 않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좋은 방법은 자연 속을 걷는 것이다. 조금 미련해 보여도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시내에 나갈 때에도 한두 정거장 먼저 내려 걸을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하면 걷고 싶다. 걸으며 사람들 모습도 보고, 꽃과 나무와 하늘을 보며 살고 싶다.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소통하고 공감하며 살고 싶다.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자연의 고마움과 자연이 베푸는 혜택을 감사히 받고 싶다. 그만큼 자연을 사랑하고 지키며 살고 싶다. 언제 마스크를 벗어던질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자연 속을 걸을 때만이라도 마스크 없이 걷고 싶다. 지금도 혼자 걸을 때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객기를 부리는 반항이 아니고, 나답게 살기 위한 방편이다. 사람이 그립고 보고 싶다. 코로나는 오히려 사람 간 관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좋은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