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090]

인생이 형무소다

by 걷고

코스: 20200717 WMC 1차 모임 (수수책방 – 한강변 – 월드컵 공원 8km)

20200719 안산자락길 (독립문역 – 무악재하늘다리 – 안산자락길 – 독립문역 9km)

누적거리: 1,362km

평균 속도: 4km/h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함께 근무했던 친구들과 오랜만에 함께 걸었다. 원래 코스는 수서역에서 양재 시민의 숲까지 걷는 서울 둘레길을 가기로 했는데, 장맛비 소식이 있어서 잘 알고 있는 안전한 코스인 안산 자락길로 코스를 변경했다. 한 친구가 지방에 갈 일이 있어서 네 명이 만나 함께 걸었다. 집에서 나올 때 엄청나게 쏟아졌던 비가 독립문역에서 만나 무악재 하늘다리 방향으로 걸어가는데 서서히 잦아들었다. 빗속 걷기를 기대해서 그치는 비가 조금 아쉬웠지만 오랜만에 친구들과 걷는 재미로 아쉬움을 달랬다.


각자 몸 관리를 잘해서 그런지 유쾌한 대화를 하면서도 전혀 힘들어하지도 않고 잘 걷는다. 속도를 맞추며 같이 걸을 수 있는 친구들과의 걷기는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비가 그치며 우산은 짐이 되었다. 고마웠던 우산은 어느 순간 필요 없어지면서 짐으로 전락한다. 평생 가족 부양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던 분들이 퇴직 후 어느 순간 가족 내에서 존재감을 잃어버리고 가족들 눈치를 보고 짐이 되고 있다고 한다. 우산을 보며 그분들이 떠올랐다. 평생 일만 해 온 분들을 우산에 비교하니 송구스럽다. 부디 서로 아끼고 존중하고 감사하는 가족이 되길 마음 모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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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자락길을 걷는 도중 모악정에서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눠 먹었다. 수박을 휴대용 아이스박스에 준비해 온 친구가 있었다. 무거운 수박을 메고 힘들게 올라온 친구에게 모두 감사함을 표했다. 맛있는 김밥을 준비해 온 친구, 달걀을 보기 좋게 썰어내는 친구, 먹기 좋게 썰어 온 과일을 내어 놓은 친구, 커피를 직접 내려서 보온병에 준비해온 친구. 서로 아무런 사전 준비에 대한 얘기가 없었음에도 어느 한 가지 겹치는 준비물이 없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안산 자락길을 걷고 서대문 형무소 방향으로 내려왔다. 한 친구가 “인생이 형무소다.”라는 얘기를 뜬금없이 꺼냈다. 무슨 이유로 그런 얘기를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 말이 확 가슴에 와 닿는다. 형무소에서는 개인의 많은 자유가 구속을 받는다. 심지어 먹고, 자고, 쉬고, 운동하는 것 자체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철저히 통제된 하에서 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우리의 삶이 형무소라는 것은 어쩌면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굴레를 뜻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느낌을 받은 것 같다.


영천 시장을 지나 근처 음식점에 들어가 꼬막무침과 감자 전, 빨간색 뚜껑 소주와 막걸리를 주문했다. 음식과 반찬이 정갈하게 나오고, 리필도 친절하게 해 주시는 식당이다. 술이 한 잔씩 들어가며 각자 사는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부모님, 형제들, 아이들과의 관계, 자신의 위치와 앞으로의 비전 등을 들으며 사는 모습이 거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삶이라는 형무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고 있다. 마치 거미줄에 걸려 허둥거리는 벌레처럼 관계망 속을 벗어나지 못하고 형무소 안에서 발버둥 치며 살고 있다. 이것이 우리네 삶이다.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이다.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성장하고 성숙하며 살아가고 있다.


형무소 같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빅터 프랭클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3년 동안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수감되었던 심리학자다. 고된 노동과 배고픔, 혹독한 추위 속에서 삶을 포기하거나 악랄해지는 사람들에게 격려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을 발간하며 의미 치료를 창시하기도 했다. 그는 어떤 사람이나 환경도 인간의 존엄성과 내면의 자유를 빼앗을 수는 없고, 삶의 의미를 찾고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은 어떤 어려운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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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우리의 삶이 형무소같이 벗어날 수 없는 관계망 속에 갇혀 있더라고, 또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 가려져 있다고 해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 삶의 의미를 찾아낸다면 형무소 안이 가장 자유로운 곳이 될 수 있다. 두려움을 떨치고 안갯속을 걸으면 안개는 뒤로 물러나며 오히려 길을 열어준다. 이 상태가 되면 형무소 문은 저절로 열리고, 안개는 밝은 광명으로 변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겸손과 수용의 중요한 가르침을 덤으로 선물해 준다.


다음 만남에 대한 많은 얘기들이 오고 갔다. 하지만 정확하게 어떻게 하자는 결론은 나지도 않았는지, 아니면 기억이 나지 않는지 잘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다음에 반드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디 다음 만날 때까지 모두 건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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