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용)
회사 업무가 저녁 6시에 마쳐서 6시 5분에 화정역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시간을 아껴 쓰고 중하게 여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색 바지에 연한 베이지 칼라의 블라우스를 입고, 한쪽 팔에는 예쁜 팔찌와 다른 팔에는 스마트 시계를 찬 모습이 세련된 직장인 모습이다. 걷기 동호회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말이 별로 없었고, 표정이 다소 무거워 보였다. 닉네임을 물으니 ‘진용’이라고 했다. ‘진짜 용기를 내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렇게 정했다고 했다. 걷기 동호회에 나온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용기를 낸 사람이라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오늘 모습은 처음 만났을 때와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 보였다. 자기표현을 잘하고, 표정도 밝으며, 웃음이 많아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남편과 사별했고, 그 이후 힘든 시간을 보내며 걷기에 나오게 되었다는 얘기를 우연한 기회에 듣게 되었다. 남편의 얘기를 물으니 약간 먹먹한 모습으로 차분하게 전해준다.
“남편이 뇌종양으로 3년 투병하다 4년 전 세상을 떠났다. 처음에는 내가 걱정할까 봐 얘기도 안 하고 혼자 병원에 갔었다. 술을 좋아했던 남편이어서 간이 안 좋을까 걱정했었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은 것이다. 뇌종양으로 머리가 마비되어 의사소통도 안 되고, 걸을 수 없어서 간병을 하며 차라리 다른 병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나중에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했는데, 거기서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의 여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분들을 보며 잘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한 남편 간병하느라 아이에게 잘 대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남편 병간호를 하던 중 우연히 TV를 봤는데, 어느 할머니의 걷는 모습이 방영되는 것을 보며 남편과 이별을 한 후에는 나도 저 할머니처럼 걷고 싶다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다.”
“많이 힘들었겠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남편과 이별한 후 1년 정도는 정신없이 지냈다.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도 했고, 좀 더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야간에 간호조무사 학원에 다니며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그간 살아온 삶이 ‘우물 안 개구리’ 같았다. 살림하고, 남편과 아이 돌보고, 남편에게 의지하고, 아들에게 집착하는 삶을 살아왔다. 남편이 병고를 치르는 동안 누구에게도 기대지 말고 홀로 극복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그런 생각은 잘 내린 결정이었다. 힘든 기간 동안 친구들이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언제부터 걸었고, 걷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남편과 사별 후 6개월 정도 지나서부터 걸었던 거 같다. 그 할머니 생각도 났고, 나를 찾고 싶었다. 걷기 동호회를 검색하다가 ‘나를 찾아 길 떠나는 도보여행 (나길도)’을 알게 되었다. 나 자신을 찾고 싶었는데, 그 동호회 이름이 마음에 끌려 가입했다. 주 중에는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는 걷기 동호회에 참석하며 꾸준히 걸었다. 걷기에 익숙하지 않아서 12 – 16km 정도를 걸으면 발바닥이 많이 아팠고 힘들었다. 하지만 생각이 단순화되며 치유되고 에너지가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가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해 3일 걷기에도 다녀왔다. 그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지방의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를 걷는 매월 진행되는 정기 도보를 기다리며 설레기도 했다. 그 설렘으로 한 달을 기다리며 즐겁게 살아왔다. 그때부터 걷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걷기를 선택한 것은 잘한 것 같다.”
“걷기가 잘 내린 결정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그전에는 취미가 없었다. 남편이 수술 후 회복을 위해 집에 있을 때 음악과 영화를 좋아했다. 나도 뭔가 취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걸으며 신체적인 건강을 다지고, 독서를 통해 내면의 건강을 다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을 모르고 살아왔기에, 걸으며 외부 세상과 교류하며 시야를 넓히고 싶었다. 내 안에 호기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보기도 했고, 위안을 받기도 했다. 요즘은 회사 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빡세게 걸으며 해소한다. 걸으면 직장 내의 모든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감내하는 힘이 생기기도 한다. 걸으면서 자신이 많이 채워진 느낌을 받는다. 특히 힘든 언덕을 빨리 올라간 후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일상의 모든 스트레스를 날려준다.”
“닉 네임을 ‘진용’으로 정했는데,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진짜 용기라는 의미다. 남편에게 많이 의지하며 살아왔다. 사별 후 버텨낸 어려운 시간은 홀로서기를 위한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 그런 계기를 통해서, 남편이 곁에 있든 없든 홀로서기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용기가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진짜 용기’는 삶의 좌우명이 되었다. 주저하며 사느냐, 아니면 용기 내어 시도하느냐의 차이다. 용기를 내고 살다 보니 내 안에 잠재해 있었던 강한 힘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한계에 도전하며 한계의 범위를 넓혀나갈 수 있게 되었다. 힘든 만큼 성장하고 성숙한 것이다.”
힘든 일이 있기 전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해졌다.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표현을 자주 하며 남편과 아들에게 의지하며 자신의 삶은 없었다고 한다. 또한 인터뷰하는 중에 ‘성장’, ‘성숙’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성장’의 의미를 물었다.
“주체적으로 살아 본 적이 없는 것 같고, 남을 많이 의식하며 살아왔다. 이제 자신을 찾고 싶다. 자신을 알게 되면 타인과 비교하거나 시기, 질투 같은 것을 하지 않고, 주어진 삶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가진 것 안에서 즐기고 누리면서 사는 삶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아래나 위를 보지 않고, 자신을 수용하고 인정하게 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마음의 풍요를 누리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성장하고 싶다. 내 밑면의 모습을 알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세상 구경을 더 많이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걷기는 그런 호기심을 채워줄 수 있는 좋은 방편이다. 또한 지금까지는 남편과 아이를 위해 살아왔다면, 앞으로는 나를 위해 살고 싶다. 나 자신과 감정에 충실하게 살고 싶다.”
삶의 수용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고통의 주원인은 타인과 비교하거나 삶의 초점이 과거나 미래에 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편의 병간호와 사별 후 홀로서기를 하면서 지냈던 7년이라는 긴 세월을 통해서 많은 성장과 성숙을 거듭해 왔을 것이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장단점을 모두 수용하게 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생겼을 것이다. 그런 시각의 변화는 같은 세상을 다르게 인식하게 만들어 준다. 인식의 변화는 설사 자신의 주변 상황이 변하지 않더라도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지금의 감정에 충실하게 살고 싶다는 의미는 삶의 초점을 현재에 맞추고 싶다는 중요한 얘기라는 생각이 든다. 삶의 과정에서 체득한 통찰의 힘은 대단히 크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닥쳐도 지금 얻은 통찰의 힘으로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든다. 걷기를 통해서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알고 싶었다.
“활력과 용기가 생겨서 살아가는데 힘이 되었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걷기를 통해서 세상 구경을 많이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이 채워진다면 삶을 잘 극복하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배움과 탐구의 욕구가 강해진 것도 큰 변화이다. 모든 것이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고, 특히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싶어 졌다. 자신에게 충실하게 살면서 타인 시선에서 벗어나게 되니 자유롭게 되었다. 늘 누군가가 옆에 있어야만 할 것 같았는데, 이제는 혼자 걷는 것도 좋고, 무리 속에서 홀로 걷는 즐거움도 크다. 주변 사람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말 하고, 감정을 표현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한 것이 가장 큰 변화다.”
"그런 변화로 지금의 삶은 어떤가?"
“많이 편안해졌다. 자기를 사랑하게 되었고, 자존감도 높아졌다. 그렇게 되면서 주변 사람들이 내게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비록 부족하고 내세울 것도 없지만,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과거에는 내성적이고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 사랑받은 사람만이 사랑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이제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니, 나도 사랑을 줄 수 있게 된 것 같다. 힘든 사람들을 보면 걷기를 추천한다. 내가 극복한 경험도 얘기해 주면서 함께 걷자고 얘기도 하고, 동호회를 추천해 주기도 한다.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을 걸으며 극복하길 바라는 마음에 걷기를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다.”
“그간 다녔던 길 중에 인상 깊었던 곳은 어딘가?”
“우리나라 대표 청정지역인 청송, 영양, 봉화, 영월 4개군이 연결된 외씨버선 길 도 좋았고, 남해도 인상에 많이 남는다. 무엇보다 해남 미황사 템플 스테이 하면서 걸었던 달마산 달마고도 길이 한국의 산티아고 길이라고 해서 더 정감이 가고 좋았다. 산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6시간 정도 걷는 한적한 길이다. 정상에 있는 도솔암에서 바라본 바닷가 모습과 풍광은 잊을 수 없다. 미황사에서 해남까지 걷는 길도 혼자 가려고 했는데, 템플 스테이 오신 어느 신자가 혼자 가는 것이 걱정이 된다면 동행해 주셨던 고마운 기억도 떠오른다. 그 길을 걸으며 배낭을 베개 삼아 누워서 하늘에 떠도는 구름도 보고, 신발을 벗고 걷기도 하며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걷기란 무엇인가?”
“걷기란 삶의 활력소다. 삶의 에너지원이다. 걸으면 치유가 되고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내면의 힘이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걸으면 활력이 생기고 마음과 얼굴이 밝아진다. 걸음을 찾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뿌듯하고 행복하다.”
인터뷰를 마치고 저녁 식사를 겸해 소주 한잔하며 얘기를 이어갔다. 남편만 애도하고 사는 것이 과연 남편이 원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고민을 얘기하며, 애도의 시간을 잘 보냈다고 한다. 애도는 일정 기간을 필요로 한다. 빨리 서둘러 덮으려 하거나, 평생 애도만 하며 살아가는 것 모두 현실을 충실하게 살아가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현재에 초점을 맞춰 살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찾아가는 그녀를 보며 수행자가 그려진다. 수행은 지금-여기에 충실하게 살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큰 용기와 정진을 필요로 한다. 그녀와 인터뷰를 마치며 닉네임인 “진짜 용기’가 더 이상 ‘되고 싶은’이 아닌 ‘이미 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걷기를 통해 사별의 아픔을 이겨내고, 홀로서기를 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과 노력을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