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중 회의에 다녀왔다. 기억도 나지 않는 사촌과 조카들이 모여 서로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어릴 적 일찍 고향을 떠나서 얼굴도 기억 못 하고, 공유할 수 있는 어떤 추억도 없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자손들이 반갑게 인사하고 알고 지내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지만, 내게는 어색하고 낯선 자리다. 또한 이런 모임이 아니면 따로 만날 일이 거의 없다. 내 기억에 어릴 적 고향에 내려가면 친척들이 함께 모여 살아서 모두가 가족이었다. 세월이 흘러 뿔뿔이 흩어졌다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친척은 친척이지만, 남남 같은 느낌으로 만난다. 밖에서 보면 서로 알아볼 수도 없기에 어쩌면 이미 남남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문중 사무실에 ‘만지동근 (萬枝同根)’이라고 쓰인 현판이 걸려있다. 만 개의 가지가 뻗어있지만, 그 뿌리는 하나라는 것이다. 모든 형제, 친척들이 이 원리를 잘 이해해서 아끼고 화목하게 살라는 의미로 이 글을 써서 걸어 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회의 내내 ‘만지동근’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어떤 것도 듣거나 보지 못해서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마음이 그다지 편하지만은 않았다. 비록 혈연으로는 연결되어 있지만, 마음속에서는 어떠한 동질감도 느낄 수가 없었다. 틀림없는 한 조상의 자식들이지만, 이미 우리는 남남이 되어있다.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세상이 가끔 무섭다고 생각이 들 때가 믿지 못할 뉴스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을 죽이기도 하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기도 한다. 자식이 부모를, 또는 부모가 자식을 폭행하기도 한다.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자식은 부모를 버린다. 사이좋은 형제들도 있지만, 이웃사촌보다 못한 형제들도 있다. 반면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가족이나 친척보다 더 가깝게 지내며 가족처럼 어울리기도 한다.
가족은 무엇이고 어떤 존재일까? 가족의 어려움으로 인해 더 아파하고, 즐거움을 더 기쁘게 느끼는 사람이다. 짐을 대신 기쁘게 짊어질 수 있는 사람이다. 가족의 고통을 대신 받고 행복해하며 마음속으로 행복을 기원하는 사람이다. 일상적인 이해타산이 존재하지 않는 관계다. ‘너’와 ‘나’의 경계가 저절로 사라지는 관계다. ‘만지동근’이기에 가족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고, 가족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된다. 또한 가족의 고통을 나의 행복으로 채워줄 수도 있는 관계다.
이런 의미로 생각할 때 내게 가족의 범위는 너무 좁다. 아내, 딸, 사위, 손녀가 전부다. 가족의 범위를 조금 더 넓힐 수는 없을까? 아직은 내게는 너무 힘든 일이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만큼 이기적이다. 언제가 되어야 이런 이기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만지동근’의 마음으로 대할 수는 없을까? 오늘도 집안일로 가까운 누군가에게 화를 냈다. 조금 더 이해할 수는 없었을까?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만지동근’을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하기 위한 연습이 필요한 시점이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며 뒷맛이 씁쓸한 이유는 오늘 만난 사람들이나 회의 주제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좁은 이기심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만지동근, 가끔 되새기며 이기심을 조금이라도 떨쳐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