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란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지니 (52세)

by 걷고

전에 인터뷰했던 방수영님의 소개로 그녀를 만났다. 산티아고를 다녀왔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길동무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처음 만난 사람이지만 전혀 낯설지 않고 편안함과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연한 갈색의 개량 한복 상의에 바지, 그리고 아쿠아 샌들을 맨발에 신고 나왔다. 어깨에는 베이지색 천으로 만들어진 헐렁한 백을 메고 있었다. 안경 쓴 모습이 지적이면서도 부드러워 열린 마음을 지닌 유연한 지성인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모습이 여유롭고 편안해 보였다. 그날은 오후에 비 예보가 있는 날이었다. 아쿠아 샌들은 계곡물에 발 담그고 놀기 위한 신발이 아닌, 비를 즐기며 걷는 사람들이 신는 신발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샌들을 보며 그녀는 오늘 기꺼이 비를 맞고 걷기 위한 모든 준비를 하고 나온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를 맞기로 결정하면 비가 반갑다. 비를 피하려고 하면 비와 불편한 관계가 된다.


“산티아고 다녀온 후에 좋은 일이 많이 생겼다. 그 길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어느 날 문득 아침에 일어나 주방으로 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내 인생이 끝나면 어쩌지?’라고 불현듯 절박감이 들었다. 일어나자마자 마치 기계처럼 반응하는 모습을 보며 어떤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결혼 후 학업과 직장도 그만두고 아내, 아이 엄마로 살아오며 평상시 좋아했던 영어 공부를 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고, 영어 과외나 출강 등을 하며 지냈다. 20대 후반부터 20년 이상 그런 삶을 살아왔다.”


어느 날 아침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갑자기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어쩌면 늘 자신을 찾고자 하는 염원을 지니고 살아오지는 않았을까? 어떤 계기로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지난 50년의 삶은 주변의 기대와 사회의 이상적인 모델에 맞춰 살려고 스트레스를 받고 지내온 세월이었다. 결혼하고 아내로 또 애 엄마로 해야만 하는 역할과 책임에 눌려 살았던 것 같다. ‘내가 나 자신이 되지 못한 삶’을 살아왔다. 심지어는 먹는 것도 내가 원하는 음식보다 가족들이 원하는 것을 사고 먹었다. 좋은 엄마, 바람직한 아내가 되기 위해 살아온 삶이었다. 그러다 문득 ‘내기 죽는다면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아마 오랜 기간 마음속에서 이런 작업을 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감정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소진되었고, 나 자신은 없고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절박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결혼 전에는 나름대로 내가 끌고 가는 삶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 후 대학원도 수료만 했고, 전업주부로서 또 초보 엄마로서 역할에 충실하게 살아왔다. 아이들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나의 책임이었다. 나의 삶은 방해받고 있었고, 반면에 남편은 자기의 길을 가고 있다. 뭔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적인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삶은 사라지고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책임만 있는 삶이었다. 결혼 후 늘 뭔가가 채워지지 않고 있다는 갈증이 있었다.”


길은 국내에도 좋은 길이 많이 있다. 홀로 걷기에 편안하고 안전한 길이 얼마든지 있는데, 그 먼 산티아고를 간 이유가 궁금했다. 하필 왜 산티아고였을까?


“여행 TV 프로그램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기는 편이다. ‘산티아고 길’을 아마 방송에서 들었거나 누군가에게 들었던 기억이 무의식 속에 남아있다가 때가 되어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 같다. 귓속에서 누군가가 ‘산티아고, 산티아고’를 반복하며 얘기하고 있었다. 내면의 목소리나 신이 내게 주신 Calling(소명) 또는 Mission(미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 여행은 거추장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언제 어디서 아는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고, 하고 싶은 대로 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내 마음대로 누리며 꼴리는 대로 살고 싶었다. 50년간 살아온 한국에서의 ‘지니’가 아닌 원래의 ‘나’가 되고 싶었다. 책임감과 사회의 기준에 맞춰 살기 위해 애쓰는 ‘나’가 아닌, 또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닌 온전한 ‘나’로 살고 싶었다. 나를 알기 위해 불확실한 세상에 나 자신을 던져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런 이유로 ‘산티아고’를 선택하게 되었다.


원래 무슨 일을 하든 미리 준비를 철저히 하는 편이었는데, 산티아고 여행은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떠났다. 세부 계획 없이 신발만 걷기 편한 것으로 준비하고 항공권을 구입한 후 출발했다. 불확실한 것이 주는 불안감도 있지만, 그에 따른 만족감도 있다. 또한 늘 살아왔던 방식으로 사전 준비를 위해 애쓰고 싶지 않았다.”


그녀와 인터뷰를 하면서 내내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그녀가 찾는 ‘원래의 나’는 불교에서 얘기하는 진아, 참 자아, 본성, 불성, 본래면목과 같은 의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에서 참선 공부를 하는 수좌들이 평생 목숨 걸고 하는 화두 공부는 결국 나를 찾기 위한 싸움이다. 그녀에게 ‘나’를 찾는 이유를 물었다. 또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여러 가면을 쓰고 살고 있다. 역할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회적인 기준 또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따르는 것이 ‘나’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동시에 그 기준에 맞추지 못할 때 자책감과 실망을 느꼈고, 상황이 나를 좌지우지하는 것을 보며 과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영어는 원래 좋아했다. 그래서 그런지 알고 싶고, 신기하고. 궁금하고. 더 공부하고 싶었다. 어느 순간 영어는 나의 것이 되었고, 그런 생각이 발전해 영어를 좋아하는 것이 ‘나’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영어는 나 자신 속에 스며들어 ‘나’가 되었다.


신이 나를 창조했다면 그 목적이 있을 것이다. 왜 나를 창조하셨을까? 그 용도가 궁금했다. 그 목적을 찾고 확인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고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의 존재를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볼 수도 없어서 증명이 불가능하다. 그런 상황에서 오직 ‘모르는 나’ 만이 오롯이 남아있다. 내가 알고 있는 진실은 ‘모르는 현재’라는 것 밖에 없다. 그 ‘모르는 현재’에 살고 있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나의 중심을 잡고 싶었다. 늘 변하는 여러 욕망은 있었지만, 그 변화 속의 ‘나’는 없었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나는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지금도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고 있다. ‘모르는 나’를 자각하며 ‘나’를 찾고 있는 과정이다.”


아내로, 아이 엄마로 살아오던 사람이 갑자기 홀로 해외여행을 오랜 기간 나간다는 것이 가족들에게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나 남편은 그런 그녀의 행동과 결정을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둘째 아이가 수능 시험을 본 후 발표 전에 떠나겠다는 그녀의 모습을 남편은 시위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하지만, 일어나자마자 주방으로 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지켜본 그날의 경험은 너무나 강렬했기에 그녀의 여행은 ‘허가’가 아닌 ‘신고’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는 걸으며 무슨 생각을 하며 걸었을까?


“오로지 걷기에만 집중하며 나만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느끼고, 집중하고 자각하며 걸었다. 그러면서 ‘이게 나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내가 되어감’을 느낄 수 있었다. 걸으면서 몸은 피곤했지만,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휴대전화 배터리의 표식이 늘어나듯이. 내가 중심이 되어 살고 있다는 자유가 주는 기쁨은 온몸을 자신감과 웃음으로 가득 차게 만들어 주었다. 충만감에 젖어 ‘나를 살 거야’를 외치며 걸었다. 자신감이 커진 만큼 나의 목소리도 커졌다. 타인의 시선은 이미 이 순위로 멀어졌고, 나 자신이 일 순위, 아니 영 순위가 되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뭐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답을 찾으며 걸었다. 자신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면 평온해진다. 방향을 잃어버릴 때에도 그 과정이 결코 힘들거나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평온함 속에서 과정을 바라보며 방향을 찾게 된다. 만약 그 방향이 잘못된 선택이라면 다시 리셋하면 된다."


“걸으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지?”


“걸으면서 모든 존재들과 하나가 되어 교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 자연, 나무, 꽃 등 모든 존재들과 ‘나’ 사이에 경계가 없어진 느낌이다. 통하고 하나가 되는 느낌이 마치 마술 같다. 어느 날 수녀원에서 수녀님들이 순례자들에게 걷는 이유를 물으며 각자 소개하는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우리 모두에게 노래를 한 곡씩 부르라고 하는데, 내가 머뭇거리자 천상의 목소리로 ‘아리랑’을 불러주셨다. 그런 성스러운 자리에서 노래를 들으니 저절로 한없이 눈물이 흘렸다. 기쁨, 참회, 지나온 과거와의 이별, 마음속 깊이 자리한 기쁨 등이 자연스럽게 눈물로 표현된 카타르시스였던 것 같다. 그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10년 이상 활동하는 영어 동아리 밴드에 걸으며 찍은 사진과 글을 올렸다. 밴드 친구들이 오히려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내가 걷고 있는 길과 위치를 찾아서 보내 주기도 했다. 그들은 과천에서 내가 보낸 사진과 글을 통해 나와 함께 걷고 있었다. 그들의 응원과 관심이 걷는데 큰 힘이 되기도 했다. 오직 걷기에만 집중하고 싶어서 책 발간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녀온 후 밴드 친구들의 응원에 용기를 내어 결국 여행기인 책, ‘길 위의 안식년’을 발간했다.”


“산티아고 다녀온 후 어떤 변화가 있는지?”


“가기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우선 영어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었다. 일, 엄마, 아내의 책임에서 자유로워졌다. 내성적인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사람들을 만나면 설렌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했고, 느끼고 배운 것을 함께 나누고 싶어 졌다. 여행은 어딘가를 가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여행이다. 그 사람의 삶의 여정을 들으며 같이 여행을 하기도 한다.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경험했고 알고 있는 것을 나누며 살고 있다.


2017년도 만 쉰 살이 되던 해에 산티아고를 다녀왔고, 2018년도 ‘길 위의 안식년’ 책 발간 후 인문학 독서 모임인 ‘가장자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중심이 아닌 가장자리다. ‘문학의 밤’ 같은 행사도 열었고, ‘서촌 나들이’ 같은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으며, 여성 비전 센터에서 진로 독서 강사로서 활동하고 있다. 나누면 삶이 훨씬 더 충만해진다. 그 외에도 홀로 꾸준히 걷는다. 제주 올레길을 시간 날 때마다 나눠서 걷고 있고, 1/4 정도 남아있다. 2018년에는 섬에서 일주일간 ‘자체 고립’을 하며 지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도전 정신’이 생긴 것이다.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는 도전, 과정을 즐기는 도전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나만의 삶’을 살고 있다. 책 발간이 큰 도약판이 되었다. 자신을 ‘문화 살롱 가이드’라고 칭하고 있다.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문화 콘텐츠를 기획, 운영하고 안내하는 가이드. 다녀온 후 ‘1인 1 책 운동’도 펼치며 바쁘지만 즐겁게 살고 있다.”


“걷기란 무엇인가?”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나는 나를 걷는다.”


그녀의 답변은 분명하고 단순했다. 그녀와 인터뷰를 하면서 그녀가 마치 수행자처럼 느껴졌다.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 화두를 참구 하는 수좌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하고, 길을 걷는 내내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하며 자각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어쩌면 그녀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찾았고, 그 답을 나누고 알려주기 위해 다양한 도전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녀와의 인터뷰를 마치며 불화 (佛畵)인 ‘심우도 (尋牛圖)’ 또는 ‘십우도 (十牛圖)’가 떠올랐다. 열 장으로 이루어진 심우도의 마지막 그림은 깨달음을 얻은 후 속세로 돌아와 중생을 제도한다는 입전수수(入廛垂手) 단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삶이 바로 이 입전수수 단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 살롱 가이드로서 길을 잃은 많은 사람들에게 안내자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며, 그녀의 멋진 삶을 응원한다.

사진_최진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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