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
코스: 20200817 – 20200818 35km
누적거리: 1,640
평균속도: 4.5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어제는 아라뱃길을 22km 걸었다. 오랜만에 걷는 느낌이 들 정도로 걸었다. 걸으며 드는 생각은 참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약 4시간 이상 햇빛을 가릴 수 있는 공간조차 없는 길을 걸으면서도 지루하거나 힘들거나 빨리 끝났으면 하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오히려 배가 고프다는 생각만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발이 아프고 물집도 잡히고 지쳤다고들 하지만, 다행스럽게 나는 자그마한 물집 하나 잡히지도 않았고 더 걷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지금까지 군대 생활 포함하여 걸으며 물집이 생겨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 단지 길 끝나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오늘은 상담 마치고 집에 오니 손녀가 와있었다. 딸애 집에 온수가 나오지 않아 며칠간 우리 집에 머물기로 했다. 손녀와 이런저런 놀이를 하며 놀았다. 찰흙으로 모양을 만들고, 작은 공을 만들어 던지기도 하고, 모기에 물린 곳을 후우 하고 불어주기도 했다. 참 사랑스럽다. 손녀를 보는 순간 모든 시름이 저절로 사라져 버린다. 애 엄마가 새 옷을 입히려 하자 마음에 들지 않는지 운다. 내가 안아주자 조금 후에 울음을 그치며 바로 웃고 논다.
손녀를 보며 성인과 아이들의 공통점과 다른 점을 발견했다. 공통점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발생하면 모두 짜증을 내면서 불편함을 호소하고 표현한다. 다른 점은 아이들은 그 상황 자체에 대해 불편함을 표현하고, 그 상황이 지나면 바로 아무 일도 없듯이 생활한다. 반면에 성인은 그 상황으로부터 시작되어 과거의 기억까지 끌어모아 불편한 감정을 증폭시키고, 그 상황이 끝나도 계속해서 곱씹으며 사람들과 상황 탓을 하고 쉽사리 감정을 가라앉히지 못한다.
한 가지 상황이 그 상황 자체만으로 끝나느냐, 아니면 상황과 관련된 사람이나 그 당시의 감정까지 소환시켜 감정을 증폭시키고 감정 유지 시간을 늘리느냐에 따라 행복 지수가 달라진다. 손녀를 보며 손녀보다 오랜 기간 살아온 자신의 모습을 보니 창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라는 말이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과거의 많은 일들이 저장되어 있다. 저장된 기억들을 유용하게 활용하면 삶에 도움이 되지만, 부정적으로 저장된 기억들이 삶에 지장을 초래한다. 일반적으로 부정적이 기억이 긍정적인 기억보다 세 배나 많다고 한다.
상황을 그 자체로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도 아이들처럼 늘 해맑게 울고 웃을 수 있다. 자신의 경험에 충실하게 반응하며 자신을 속이거나 과장하지 않을 수 있다. 경험을 충분히 자유롭게 표현하며 부정적인 내용을 쌓아두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상황을 그 상황 자체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반응할 수 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과 기억으로 조작하거나 가공하지 않을 수 있다. 여실 지견 (如實知見)은 이런 의미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자신의 편견과 사견을 버려야만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바로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정견 (正見)이다.
정견을 갖추기 위한 가장 좋은 방편 중 하나가 바로 명상이다. 명상을 하며 떠오르는 여러 잡념들을 따라가지 않음으로써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꾸준한 명상이 이런 정견의 힘을 키워줄 수 있다.
며칠간 마음이 어지러웠다. 며칠간 수행하지 않은 잡초들이 마음 밭에 가득했던 것이다. 오늘 메타세쿼이아 길을 걷는데, 주변의 풀들이 내 키를 넘게 자라났다. 불과 얼마 전에도 풀의 높이는 내 무릎 정도였다. 훌쩍 자란 풀들이 나를 가리고 있다. 내가 사라진 것이다. 비록 그 길 속을 걷고 있지만 내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잡초가 나를 매몰시킨 것이다. 수행을 하지 않으면 주변 상황들이 나를 매몰시킨다. 하루 마음 밭을 가꾸지 않으면 그만큼 잡초들이 자라 내 존재를 사라지게 만든다. 점점 매 순간 수행의 중요성을 알아가고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반복되는 이런 과정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래서 중생인가 보다. 나 자신을 포함한 중생들을 생각하니 그저 안타깝고 불쌍하다는 생각만 든다. 모든 중생들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