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란 업장을 소멸하는 방편이다

이상일

by 걷고

걷기란 업장을 소멸하는 방편이다


숲 속에서 한 인간이 마치 뱀이 허물을 벗어버리듯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버린다. 바로 그 순간, 그는 얼마 동안을 살았든지 간에 상관없이 여전히 어린아이로 남아 있다. 숲 속에는 영원한 젊음이 존재한다. (....) 그곳에서 나는 그 어떤 일도, 불행도, 불운도 내게 일어날 수 없다고 느낀다. 풀도 없고 나무도 없는 땅 위에 선 채 유쾌한 대기 속에 얼굴을 담그고 무한한 공간 속에 솟아 있으면 우리의 쩨쩨한 에고이즘 따위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나는 투명한 눈동자가 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모든 것을 다 본다. (랠프 윌도 에머슨)


인터뷰 주인공인 상일형을 그와 인연 있는 장례문화원에서 만났다. 만나자고 한 장소도 참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분의 대통령과 법정 스님의 장례를 진행했던 대장원 송귀 유재철이 운영하는 사무실이다. 다담실에서 조용히 앉아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었고, 따뜻한 황차와 과일도 준비해 주셨다. 그 사무실을 운영하는 분과의 인연이 상당히 깊어 보였다. 그 사무실에 들어서면서 ‘왜 걷는가?’라는 주제와 ‘죽음’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우리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은 탄생을 전제로 시작되는 일련의 과정이다.


대학 시절 영어회화 서클에서 만나 지금까지 40년 넘게 그와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 학창 시절부터 그는 남달랐다. 자신의 표현에 거리낌이 없었고, 육두문자를 많이 사용했으며, 세상 무서운 것 없이 자신감에 가득 차 있던 선배였다. 그 당시 선후배 관계는 상당히 엄격했음에도 그는 그런 관습에 얽매이기 거부하고 저항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얼굴, 표정, 몸짓으로 표현하는 광대의 끼를 타고난 사람이었고, 남들 앞에 나서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한양대학교 전기 공학과를 졸업 후 현대그룹에서 만 10년 근무하며 미국 지사와 해외 공사 현장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 이후 사업을 시작하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모친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고, 부친은 해병대 중령 출신으로 지금은 두 분 모두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부친의 강인한 성품이 그를 강하게 키운 면도 있지만, 동시에 부친의 강한 카리스마로 인해 억눌려 살아왔던 점도 있었을 것이다. 그가 선후배들에게 강한 모습으로 보이려고 애쓴 것은 어쩌면 부친과의 권위 불화로 인한 보상심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부친과의 힘든 상황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모친의 따뜻한 사랑 덕분이었다. 그는 장남으로서 또 모친의 사랑에 보답하는 심정으로 모친의 마지막 순간까지 곁에서 홀로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드렸다.


부친께서 그의 뛰어난 친화력을 알아보시고 사업을 권하셔서 시작하게 되었다. 그가 사업가 기질이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는 자선 사업가가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영어를 잘하고 미국에 주재했던 경험이 있어서 식품을 미국으로 수출하는 무역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자신이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거나 사회적으로 유명 인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오로지 선후배들에게 자신이 사장이고 돈을 멋지게 쓰고 폼 잡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자신이 한 약속을 강박적으로 철저히 지키는 그는 다른 사람들도 자신에게 한 약속을 완벽하게 이행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약속에 대한 믿음은 사업을 하면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미국에서 납품 의뢰가 들어오면 현금으로 식품을 구입해서 외상으로 수출하는, 사업가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해왔다. 결국 문제가 발생했다. 수입업자가 그와의 약속을 어겼던 것이다.


“어느 날 세 컨테이너 분량의 00 냉면을 수입하겠다는 의뢰를 받았다. 그 냉면은 그 당시에도 다른 냉면보다 단가가 비쌌고 현금으로 구입해야만 했다. 수입 업체는 납품받은 후 그 돈을 갚지 않은 채 회사를 부도 처리했다. 그 주문 전에 이미 누적된 외상매출도 제법 많았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냉면 외상 수출로 인해 적자는 아주 심각한 상태로 커져버렸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자 아버지께 말씀드렸고, 용인 땅 3만 평을 팔아서 은행 대출을 모두 갚았다.”


그는 못 받은 돈을 회수하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강구하려고 노력했다. 국제 전문 변호사와도 상담을 했지만 설사 승소를 하더라도 돈을 회수하는 과정이 아주 길고 험난하다는 말을 듣고 피눈물을 무릅쓰며 소송을 포기했다.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서 그 수입업자를 죽여 버리려고 방법을 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을 죽인다 해도 돈을 회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울분을 삭이며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방황하고 있던 시점에 우연히 정신세계사에서 운영하는 ‘마인드 컨트롤 (Mind-Control)’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마인드 컨트롤을 공부하며 마음을 조금씩 안정시켜 나갔고, 그 이후 불교 공부도 시작하게 되었다. 정신적인 고통이 그를 마음공부라는 새로운 세계로 안내했고, 그 속에서 조금씩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며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다른 일로 또다시 경제적 타격을 받으며 신체적, 심리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30년 이상 알고 지낸 후배 회사에 투자하고 근무하면서 현금 수억 원을 날렸다. 사람들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사기를 당하고, 재산도 날리고, 부모님 땅도 날리게 되었다. 그들이 자신이 한 약속조차 지키지 않는 것이 가장 힘들고 화가 났다. 그 일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부모님께서 돌아가셨다. 재산 정리 과정에서 동생과 유산 문제로 갈등이 있었고, 부모님 모시고 살았던 집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지금은 노원구의 작은 아파트에서 월세로 살고 있다. 억울하고 분노는 치솟고 삶은 막막했다. 스트레스가 심해지며 눈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그 당시 그가 보관했던 사진과 갖고 있던 물건들을 없애고, 지인들과의 인연을 정리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다른 선배 K와 함께 자주 어울리며 지냈다. 그는 죽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심지어는 죽을 생각을 자주 했으며 방법을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안락사를 인정하고 있는 나라와 방법, 비용을 자세히 알아보고 있다는 얘기를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죽을 때까지 방 한 칸과 음식을 제공한다는 사찰이 있다며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노원구로 이사를 가면서 생활을 단순화하기 시작했다. 만나는 사람들도 줄였고, 외부 모임도 줄였고, 스스로 자가 격리를 하며 더욱 검소하게 지내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 홀로 등산을 다니거나 서울 둘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가끔은 우리가 길동무가 되어 같이 걷고 술 한 잔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는 왜 걷기 시작했을까?


“몸의 얘기를 무시하고 돌보지 않아 몸이 망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트레스, 분노, 억울함을 술로 달래보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몸은 점점 더 망가져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 몸이 나를 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 안에서 홀로 대화하는 일도 많아졌다. 대화 상대가 없음에도 홀로 얘기하고, 머리는 늘 복잡했다. 명상은 15분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또한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는 모습을 지켜보며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고, 움직임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알게 되었다. 몸에 이상이 생기거나 큰 병이 생길 경우 돌봐 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아 주변에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나의 체력에 가장 잘 맞고, 쉽게 할 수 있고, 돈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 운동이 걷기였다. 지하철 경로 우대 승차권이 있어서 대중교통 비용도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노원구에 살고 있어서 근처 산과 둘레길 접근이 쉽다. 그때부터 서울 둘레길을 홀로 걷기 시작했다.”


가끔은 개천가를 걷고 있는 모습이나, 산에 핀 꽃과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을 찍어서 우리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그런 소식에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약속을 철저히 지키고, 어떤 일이든 일단 시작을 하면 중도 포기하지 않고 규칙적으로 꾸준히 하는 것이 그의 큰 장점이다. 걷기를 심신 건강관리의 가장 적합한 방편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는 지금도 자신의 체력에 맞춰 꾸준히 서울 둘레길을 걷고 있다.


등산모임에서 한 친구가 하산 시 넘어져 발목이 부러진 것을 목격한 후부터는 그는 더욱더 발걸음에 집중하며 걷고 있다. 발걸음에 집중하고 걸으면 생각을 감각으로 변환시킬 수 있다. 또한 생각이 과거나 미래에 머물지 않고, 지금-여기에 머물게 되면서 쓸데없는 생각에 끌려 다니지 않게 된다. 걸으며 지금-여기에서 느끼고 있는 감각에 집중하고, 잡념이 일어나는 것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알아차리는 순간 감각으로 되돌아가면 잡념은 저절로 끊어진다. 이것이 바로 걷기 명상이다. 우리는 평상시 너무 많은 생각 속에 묻혀 살고 있다. 생각하는 습관으로 인해 감각에 집중하는 찰나에도 생각은 침투해 들어오려고 한다. 그런 잡념에서 해방되기 위해 그는 요즘 ‘지금-여기, 아미타불, 우주 동체’를 발걸음에 맞춰 마음속으로 염불 하며 걷는다. 다른 생각이 들어오면 빨리 알아차리고 다시 염불에 집중하며 걷는다. 그는 걸으며 지난 일에 대한 참회도 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견디기도 하면서 꾸준히 염불 수행을 하고 있다.


그에게 걷기는 수행이다. 그런 걷기 수행 결과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건강이 좋아졌고 마음도 편안해지면서 요즘은 눈에서 피가 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몸의 얘기에 귀 기울여 듣고, 몸이 시키는 대로 하니 몸이 점점 더 편안해졌다. 과거의 부정적인 생각에서 해방되면서 꽃과 자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마음의 여유도 생기면서 사고도 유연해졌다. 상황을 통제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 지켜보거나 그 순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많이 원만해졌다. 약속을 변경하거나 지키지 않을 때에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고 배려하며 편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부드러워져서 세상과 친해진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수용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그는 요즘 세상사가 심심하다고 한다.


무든 일이든 반드시 해야만 된다는 생각이 많이 없어졌다. 최근에는 돼지고기로 장조림을 만들었다. 그냥 하고 싶어서 했고, 할 수 있는 자신이 신기했다. 음식 만들고, 먹고, 설거지하는 과정 등 그 순간에 할 일을 그냥 하며 지내고 있다. 좋거나 싫거나 하는 생각 없이 하고 싶은 일이나 할 일을 한다. 불가(佛家)에는 ‘여여(如如)’라는 표현이 있다. 이 두 글자가 지금 그의 모습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단어일 것이다. 미황사 ‘참 사람의 향기’ 참선 수행 프로그램에 동참한 후에 받은 법명이 ‘정도(靜道)’다. 삶을 수용하고 매 순간 주어진 일을 하며 조용하게 길을 가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는 그렇게 사는 맛이 심심하다고 한다. 걷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걷기 명상을 수행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그가 사는 세상은 예전과 같은 세상이지만, 이미 그에게는 다른 세상이 되어있었다. 걸으면서 가장 인상에 남았던 길이 어딘지, 또한 앞으로 어떤 길을 걷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제주 올레길 걸을 때 가파도에 갔었다. 푸른 하늘, 푸른 바다에 펼쳐진 청보리 밭이 인상에 강하게 남는다. 그 길을 걸으며 모든 개인적, 가정적, 사회적 중력으로부터 해방되어 보리밭 위를 유영하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모든 책임과 의무, 과거와 미래, 불안과 분노로부터 벗어나 훨훨 가볍게 날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며 행복했다. 그래서 그 길이 가장 인상 깊다. 지금까지 서울 둘레길을 여덟 번 걸었다. 미국과 캐나다 국경까지 연결된 PCT (Pacific Crest Trail)는 거리가 4,300km에 달한다. 그 거리만큼 서울 둘레길을 걷고 싶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매일 20-30km를 걷는다는 것은 체력적으로 무리다. 서울 둘레길로 그 거리만큼 걸으며 마음속으로 PCT를 걸었다는 성취감을 느껴보고 싶다. 서울 둘레길을 28회 걸으면 된다. 3, 4년 정도 걸릴 것 같다.”


자신의 건강 상태와 주변 환경에 맞춰 적응하며 편안하고 여유롭게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는 무리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수용하며 심신의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불교는 중도(中道)를 중시한다. 중도(中道)는 양변(兩邊)을 여읜 것으로 양 극단에 빠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심심하다고 표현한 것이 바로 ‘중도의 삶’을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걷기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걷기란 업장(業障)을 소멸하는 방편이다. 업(業)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니 이미 만들어진 업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더 이상 업을 쌓지 않고 살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살아서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삶을 살고 싶고, 죽으면 ‘Dust in the Air’가 되고 싶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은 양 극단으로부터 벗어난 ‘중도’의 표현이다. 모든 고통은 한쪽으로 치우친 집착으로부터 시작되고, 집착의 원인은 무명(無明)이다. 무명을 밝히는 지혜의 등불은 선정 수행을 통해 저절로 그 빛이 드러난다. 그가 찾은 가장 적합한 선정 수행이 바로 ‘걷기’다. 집에서도 매일 정좌 명상 수행을 하고 있다고 하니 시간이 지나면서 수행은 점점 더 깊어질 것이다. 수행을 통해 ‘무상(無常)’과 ‘무아(無我)’를 바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바로 보는 순간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가 진술한 ‘Dust in the Air’의 의미가 아닐까?


한 평생 살면서 힘든 시간이 없다면 모든 종교와 철학은 존재의 이유가 없다. 다양한 종교와 철학, 샤머니즘은 우리를 삶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주기 위해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것이다. 그 역시 힘든 시간을 극복하기 위해 마음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마인드 컨트롤도 공부했고, 몇 년 전부터 불교 공부를 하는 모임에 매주 참석하고 있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그는 요즘 편안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장례문화원에서 인터뷰를 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자신의 장례를 이미 장례문화원에 의뢰 해 놓았다. 살아서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매일 살아간다는 것은 매일 그만큼 죽어간다는 의미다. 그는 매 순간 살면서 죽고, 다시 태어나서 죽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걷기 명상, 정좌 명상, 생활 속 명상을 꾸준히 수행해서 언젠가는 깨달음을 얻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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