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야 살 수 있다

들어가는 글

by 걷고

걸어야 살 수 있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요즘 코로나로 인해 또는 개인적인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그분들은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고통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스스로 통제할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 힘들게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나 역시 그런 시간을 보냈기에 그분들의 고통을 방관만 할 수는 없었다. 그들에게 힘내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고 작은 희망의 불씨는 건네고 싶었다. 걷기를 통해 힘든 시간과 상황을 견디고 극복했던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지금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우리들의 걷는 얘기가 그분들에게 용기를 주고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힘들다고 집 안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지금 당장 문 밖으로 나와서 걸으라고 부탁하고 싶다. 비록 지금 걷는다는 것이 아무런 답을 줄 수 없을지라고 말이다.


걷기의 달인인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정년퇴직과 부인의 죽음으로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서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려는 순간 문 밖으로 나와 집에서부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2,325 km에 달하는 길을 걸었다.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도착한 후 그는 아직 존재의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며 삶을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살아온 경험과 전문성이 있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며,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도 많고, 의미 있는 일을 찾아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된 것이다.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을 잇는 실크로드 12,000 km를 4년에 걸쳐 걸었고, 그 내용을 담은 책이 ‘나는 걷는다’로 발간되어 걷기 열풍을 일으켰다. 또한 ‘쇠이유’라는 청소년 교화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며 활기차게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살기 위해서 또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걸었다. 결과적으로 걷기가 그를 살렸고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 내가 힘들었던 시기에 '나는 걷는다'라는 책은 내게 희망과 걷기 열정을 심어주었다. 2017년에 환갑 기념으로 산티아고 길을 걸은 후 그를 프랑스에서 만났다. 산티아고 출발 전 서울에서 이미 그와 만나기로 사전에 약속을 했고, 프랑스에 간 이유는 오직 그를 만나기 위해서 간 것이다. 그 당시 그는 89세의 연세에도 퇴직자를 위한 아카데미를 준비하며 마치 청년처럼 매우 활동적으로 살고 있었다.


요즘 걷기 열풍이 불고 있다. 지자체마다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고 지금도 조성 중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주변 둘레길을 걷기도 하고, 심지어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기도 한다. 국내 걷기 열풍은 2000년대에 시작되었다. 제주 올레길 일부 개통이 2007년에 시작되었고, 2012년도에 425km에 달하는 모든 길이 열렸다. 2019년도에 42만 명 이상이 제주 올레길을 걸었다. 2011년도에 총 71.8km에 달하는 북한산 둘레길 조성이 완성되었고, 2015년도에 258만 명이 이 길을 걸었다. 2014년 11월 15일에 개통된 157km에 달하는 서울 둘레길은 요즘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인기 있는 코스다. 나는 2020년 6월 14일에 이 길을 완주했다. 인증 번호가 35446으로, 이 번호는 그날까지 완주한 사람들의 숫자를 나타내기도 한다.

월간 ‘산’이 창간 50주년 기념 특집으로 한국 리서치에 의뢰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전체 성인의 62%가 한 달에 한 번 이상 등산이나 트레킹을 한다고 나왔다. 4,200만 성인 인구 중 2,600만 명이 등산하거나 트레킹을 한다. 인구 분포를 살펴보면 60대 이상이 77%로 1위를 차지했고, 40대가 58%로 2위, 30대가 54%로 3위를 차지했다. 한 가지 큰 변화는 월 1회 이상 트래킹 하는 인구가 전체 성인의 51%로 등산 인구가 차지하는 48%를 추월했다는 사실이다. 힘든 등산보다는 비교적 걷기 편하고 운동에도 도움이 되는 트레킹을 선호하고 있다.

이들은 왜 걸을까? 서울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 의하면 62%가 건강을 위해 걷고, 뒤를 이어 자연 감상, 휴식, 친목 도모 순으로 나왔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트레킹을 한다는 것이다. 건강 외에도 걷기 자체가 좋아서 걷는 사람들도 있고, 산과 들을 걸으며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성인 인구의 62%가 월 1회 이상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즐거움이나 취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걷기가 가져다주는 다양한 효과가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과연 걷기는 어떤 효과가 있을까? 미국 오스턴 텍사스 대학 연구팀이 실시한 실험에 의하면 30분만 좀 빠른 걸음으로 걸어도 우울증 완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오레곤 보건과학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꾸준한 걷기 운동을 하면 심장마비의 위험을 37% 정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걸으면서 체내 지방이 연소되어 혈액 순환이 원활해지기 때문이다. 15분 이상 걷게 되면 지방이 분해되어 에너지원으로 쓰인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따르면 12주간 걷기 프로그램을 운영한 결과, 평균 주 2 - 3회 이상 약 12km를 걸었을 때 허리둘레는 평균 1.5cm 감소했다고 밝혔다. 또한 혈액순환이 원활해지고 평균 수축기 혈압이 떨어졌고, 혈당과 동맥경화증의 원인이 되는 중성지방도 감소했다고 밝혔다. 미국 피츠버그 대학교 심리학과의 커크 에릭슨 박사에 따르면 1년 동안 활발한 걷기 운동을 하면 뇌의 해마를 키울 수 있어 노화로 인한 기억 장애 개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규칙적으로 걸으면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정신적인 안정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 햇볕을 쬐면서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로 꾸준히 걸으면 다리와 허리의 근력이 증대되고 뼈의 밀도가 유지되어 골다공증 예방 효과가 있다. 걷기 운동을 꾸준히 하면 근육에 혈액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근섬유 내의 모세혈관이 발달하여 혈액의 흐름이 좋아져 심폐기능 향상에 도움이 된다. 또한 걷기를 통해서 좋은 HDL 콜레스테롤을 증가시킬 수 있다. 걷기는 단순히 신체적 건강에만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고 인지 회복과 심리적 안정에도 효과가 있다. 몸, 마음, 생각이 우리를 만든다. 걷기는 우리를 온전하게 만들어 주는 아주 쉽고 편안한 좋은 운동이다.


걷기 동호회에서 활동한 지 만 8년이 지났다. 처음 동호회에 나올 때에는 말수도 적고 표정도 어두웠던 분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밝은 표정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많이 지켜볼 수 있었다. 신장 이식 수술 후 열심히 걷고 꾸준히 훈련해서 철인 3종 경기에 참가했던 사람도 만났다. 위암 수술을 받은 후 건강 회복과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 위해 국내외 트레킹 코스를 걷고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분도 보았다. 생사의 기로에 놓인 자식을 지켜보며 그 힘든 시간을 견디기 위해 걷는 분도 만났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걷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업 실패 후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 걷는 사람도 보았고, 퇴직 후 지친 심신의 회복과 인생 2막 준비를 위해 걷는 사람도 있었다. 꾸준히 걷는 사람들은 대부분 단순히 걷기가 좋아서 나온 것이 아니고 개인마다 아픈 사연과 이유가 있다. 이 책은 우리들의 걷는 얘기다.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걷고 있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며 걷는 이유와 걸으며 변한 모습을 듣고 정리한 책이다.


면담자를 찾는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단순히 많이 걸은 사람이나 잘 모르는 사람을 취재하기보다는 함께 걸었던 사람들의 진솔한 얘기를 담고 싶었다. 걷기 동호회 회원들이나 지인들 중에 꾸준히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책 발간 기획 의도를 밝히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자신의 아픈 과거가 노출되는 것이 불편해서 인터뷰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사람도 있었다. 면담자를 찾기 위한 공고를 SNS에 올리기도 했는데, 모두 성사되지 못했다. 금년 3월부터 지금까지 총 열다섯 명을 만나 인터뷰했다. 글로 정리한 후 혹시나 잘못된 내용이 있을 수 있어서 확인을 위해 면답자에게 보내 두세 번 정도의 수정 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인터뷰에 참여했던 어떤 분들의 내용은 초고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가족이나 자신이 아직 공개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해서 올리지 못한 글도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이 책이 발간되었다. 바쁜 일정 중에서도 시간을 내서 자신의 얘기를 진솔하게 얘기하고, 초안을 꼼꼼하게 검토해 주고, 그리고 무엇보다 인터뷰에 기꺼이 응해준 모든 분들에게 지면을 통해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


나는 왜 걸을까? 우선 걷지 않으면 몸이 찌뿌듯하다. 반면에 걸으면 에너지가 충전되며 몸에 활기가 생긴다. 걸으면서 심리적 부담을 덜어낼 수도 있다. 사람들과 불편한 일이 생겼을 때 대응하지 않고 한 시간 이상 걸으면 마음의 그림자는 대부분 사라져 버린다. 노화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걷기를 통해 치매 예방을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걸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몸도 건강해지고, 자연과 벗하며 사계를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잠도 잘 오고, 음식도 맛있고, 길동무를 만나 즐거운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외롭지 않고 즐겁다. 이렇게 좋은 점이 많은데 굳이 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오히려 ‘왜 걷지 않느냐?’고 묻고 싶다.

프랑스 사회학자 다비드 르 브르통은 “정신적인 시련은 걷기라는 육체적 시련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라고 했다. 이 말은 취재를 했던 사람들의 경험과 일치하고 있다. 그들은 걷기를 통해 시련을 극복하며 살아나갈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그런 자신감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 더욱 활기찬 삶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몸과 마음의 건강이 행복의 열쇠다.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걷기를 권하고 싶다. 티베트어로 사람을 뜻하는 의미가 ‘걷는 자’라고 한다.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 또 사람이 되기 위해 걸어야 한다. 걸으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행복한 삶을 원하는가?,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책을 덮고 문 밖으로 나가서 걸어라. 걸으면 길 속에서 원하는 길을 찾을 수 있다. 비록 걷는다는 것이 지금 당장 답을 줄 수는 없더라도 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걷고의 걷기 일기 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