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발은 비록 지구의 작은 구석 밖에는 차지하지 못하지만, 그 두 발이 디디지 못하는 모든 공간을 통해서 인간은 거대한 땅을 걸을 수 있다. 또한 걷기는 근심 걱정의 무게로 너무 무거워 삶을 방해하는 생각들의 가지치기인 셈이다. (느리게 걷는 즐거움 )
영어 학원을 운영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학원 마치는 시간에 근처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걷기를 생활화하고 있는 사람답게 등산복 반바지와 반팔 티셔츠, 운동화, 가볍고 실용적인 등산 배낭을 메고 나왔다. 오늘따라 평상시보다 많이 웃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전에 건강 검진을 다녀왔는데 늘 하던 조직 검사를 하지 않고 와서 기분이 좋다고 한다. 항상 신경성 위염으로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기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학원 사정도 코로나로 인해 별로 좋지는 않지만 오랜 경험과 그간 쌓아놓은 신뢰를 바탕으로 잘 버티고 있다고 밝게 웃으며 얘기한다. 그녀는 초, 중학생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을 운영하며, 30년 이상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초등학교 때 학원에 등록해서 중학교까지 계속해서 배우는 학생들도 많이 있고, 심지어 어떤 학생들은 7, 8 년 이상 학업 지도를 받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가르친 학생들 성적이 향상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끼고 있는 그녀를 보며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별로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30대 후반부터 운전을 시작한 그녀는 운동량이 부족해서 수영과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학원을 오픈하면서 운동을 거의 하지 못하게 되었다. 체중은 늘고, 신경을 많이 쓰느라 눈의 실핏줄이 터지고, 한번 감기 걸리면 두 달 이상 심한 기침으로 고생을 하기도 했다. 내과, 안과 등 여러 병원을 순례하며 늘 약을 달고 살고 있는 자신을 보며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라는 회의가 들었다. 40대 후반에 건강이 바닥을 친 느낌이 들어서 북한산 둘레길이 막 조성된 초기에 지인과 함께 그 길을 완주했다. 걷고 나니 걷기가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운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계절 감각을 느낄 수도 있고, 걷고 나면 기분이 좋아졌다. 걷고 싶지만 길을 잘 몰라 함께 걸을 수 있는 걷기 동호회를 검색해서 ‘걷기 마당’을 찾게 되었다. 2011년 10월에 가입했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고 눈팅만 하고 있었다. 11월 13일 양구 두타연 팸 투어 참석을 계기로 걷기 동호회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첫 참석한 날부터 뒤풀이 참석도 했고, 그 주에 5회 참석을 하면서 바로 정식 회원이 되었다. 그녀는 동호회 매니저로 1년간 봉사를 하기도 했고, 지금도 길 안내자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그녀가 걷기 동호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별칭은 ‘생키미’다. 언니가 교회에 다녔는데, 그 당시 교회에 ‘생명 지킴이’ 운동 같은 캠페인 활동 등이 많았다. 그 이름이 좋아서 사용하게 되었고, 블로그 활동을 2, 3년간 열심히 할 때도 그 이름을 사용했다. 블로그를 시작할 때도 매일 새벽 2, 3시까지 할 정도로 한 가지에 꽂히면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수영을 배울 때에는 오직 수영 생각만 했고, 매일 아침 수영 동작 연습을 하기도 했다. 그녀는 뭐든 시작하면 그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서 원하는 성과를 만들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집중과 몰입하는 특성을 지닌 그녀는 어떤 일도 허투루 하지 않는 사람이다.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수년간 믿고 맡길 수 있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영어 교육만 30년 이상 하고 있다고 자신을 겸손하게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한 가지에 몰입하는 사람들은 그 일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바쁘고 보람되고, 일 속에서 충만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런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든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며 성취감을 느끼게 되고, 그 성취감은 다른 일을 시도하는데 자신감으로 작용한다. 자신이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 기대와 신념을 뜻하는 자기 효능감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그녀를 보면 자기 효능감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 효능감이 높은 사람은 도전적인 과제가 주어졌을 때 쉽게 포기하지 않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특성이 있다. 또한 사회생활하는 데 있어서 주변의 눈치를 별로 보지 않으며 자신만의 신념과 결정을 믿고 노력하여 원하는 것을 이루어내는 경향도 있다.
걷기 시작한 초기에는 꾸준히 활동해 온 사람들의 걷는 속도를 따라 걷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늘 뒤처져서 걷게 되고 많이 쳐지면 뛰어서 쫓아가기도 했다.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걸었다. 몸에 무리가 와서 몸살을 앓기도 했지만, 다음 날 저녁이 되면 다시 멀쩡해져서 열심히 참석했다. 평일 저녁 두세 시간 걷기도 쉽지 않았고, 주말에 네 시간 이상 걷는 것은 더 힘들었다. 초반에 마치 중독된 느낌이 들 정도로 미친 듯이 걷다가 허리부터 다리까지 통증이 너무 심해서 두 달간 꼼짝 못 하고 학원만 겨우 나갔던 적도 있었다. 그 이후로 8, 9 개월 정도 참석하지 못했고, 조금씩 회복되면서 다시 참석하기 시작했다. 완전히 회복되는데 1년 정도 걸린 것 같다. 그런 고통을 겪어내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걷는 덕분에 변화가 찾아왔다. 요즘 그녀는 함께 걷는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오르막 길에서도 계속해서 얘기하고 말을 걸을 정도로 체력이 좋아져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가장 큰 변화는 병원을 거의 가지 않게 된 것이다. 감기 걸려도 병원에 간 적이 없고 자연스럽게 낫게 되었다.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늘 불안하기도 했는데, 그 불안감이 사라졌다. 걷기가 면역력 증진에 최고라고 생각한다. 8년 전부터 간헐적 단식을 해오고 있다. 학원 운영과 수업으로 식사 시간이 불규칙해서 30대부터 신경성 위염을 달고 살았다. 하지만 꾸준한 걷기와 간헐적 단식을 시작하면서 많이 회복되었다. 주말에 걷지 않고 집안에만 있으면 체한다. 그래서 무조건 나와서 걸어야 한다."
그녀가 미친 듯이, 마치 중독된 듯 걷는 이유를 인터뷰하며 들을 수 있었다. 어릴 적 아버지 사업이 힘들었던 시기에 어머니께서 뜨개질을 열심히 하고 계셨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데 실을 사 오셔서 뜨개질하시는 행동이 그 당시에는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 들어서야 어머니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힘든 일이 왜 없었겠는가? 어머니께서 뜨개질 하시 듯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또 그 괴로움을 잊기 위해 그녀는 미친 듯이 걸었다. 자다가도 생각이 날 정도로 고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수년간 괴로움 속을 헤매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살기 위해서라도 다른 수단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뭔가를 하지 않으면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시기에 다행스럽게 걷기를 만난 것이다. 걸으면서 서서히 괴로움을 기쁨으로 채워나갔다. 세월이 흘러 자연스럽게 옅어지고 변한 것도 있지만, 걷기를 통해 고통을 기쁨으로 전환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몇 년 전부터는 웬만한 일에는 마음의 요동도 없게 되었다고 한다. 걷기에 몰두하고 걷는 것이 습관이 되면서 생긴 매우 긍정적인 변화다.
“사람을 배웠다. 늘 좁은 바운더리(boundary)에서 살아왔다. 어린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만나면서 크게 힘들 일이 없었고, 동료 선생님들과도 부딪칠 일도 거의 없었다. 원칙을 만들고 준수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원을 운영하면서 특별한 마찰 없이 잘 지내왔다. 활동 반경을 벗어나니 한 가지 상황에 대해 다양한 의견과 생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백인백색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면서 겸손을 배울 수 있었다. 나의 생각과 마음이 변하듯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내가 얘기했던 얘기가 의도와 다르게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하거나 동조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그 의견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도 있게 되었다. 단지 서로 보는 관점과 입장이 다를 뿐이다. 마치 발 크기에 따라 신발 크기가 다르고, 기호에 따라 좋아하는 신발 모양이나 브랜드가 다르듯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대립하지 않고 지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걷기를 통해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나가면서 내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나 생각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환경에서 자란 그녀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으로 자신만의 원칙을 지키며 살아왔다. 그런 그녀의 신념은 영어를 가르치는 데 큰 장점으로 부각되었을 것이다. '걷기 마당'이라는 외부 활동을 통해 자신과 다른 환경에서 성장해온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고, 감정, 행동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런 다양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 오랜 기간 만들고 지켜온 관점의 수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사고의 틀을 변화시키는 과정은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런 인고의 과정을 통해서 사람과 상황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이 생기게 되었다.
그녀는 계절을 다른 사람들보다 오랜 기간 느낄 수 있고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온전히 느끼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걷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계절의 변화를 느낄 새도 없거나 아주 짧게 스쳐 지나가듯 느끼기만 했었다. 이른 봄 남부 지방을 다녀오면 좀 더 오랜 기간 봄을 만끽 수 있다. 봄은 남부 지역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비를 맞으며 걷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요즘은 우산을 쓰거나 우비를 입고 걸으며 빗소리를 듣고, 흙냄새를 맡고 걷는 재미를 느낄 수 있어서 비 오는 날 걷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비가 그친 후에 펼쳐지는 몽환적이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비에 대한 거부감마저 사라졌다. 서울 외에도 지방을 걷거나 일본 걷기 여행을 다녀오면서 생활 반경이 넓어진 느낌도 든다는 그녀는 활기차게 걷고 주말에 길 안내도 하고 있다. 요즘은 가끔 홀로 산행하는 즐거움을 느끼며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서울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그녀는 서울에 이렇게 좋은 길과 아름다운 자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놀라기도 했다. 걷기를 통해서 ‘서울의 재발견’을 한 것이다.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차를 타고 이동할 때와 직접 발로 서울 구석구석을 걷고 체험할 때 느끼는 도심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서울에는 걷기 좋은 아름다운 길이 너무 많다. 그녀는 그중에서 특히 수성동 계곡, 백사실, 윤동주 문학거리, 구름다리, 팔각정, 숙정문, 성대 후문으로 이어지는 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약 5시간 정도 걸리는 이 길은 서울 속에서 강원도 산길을 걷는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아름답고 멋진 트레킹 코스다. 안내자를 따라 이 길을 걸은 후 너무 좋아서 혼자 걷기고 했고, 나중에는 동호회에서 이 코스로 길 안내를 하기도 했다.
걷기를 통해서 사람들의 다양성을 수용하고 자신의 틀을 부수며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의 미래는 활기차고 풍요로울 것이다. 향후 7, 8년 정도 학원 운영을 더 한 이후에 그간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지금까지 주말에만 시간이 가능해서 1박 2일간 지방 다녀오는 것 외에는 장기간 여행이나 트레킹을 할 기회가 없었던 그녀는 해외 트레킹도 꿈꾸고 있다. 학원을 그만두더라도 경제적 수입을 떠나 뭔가 할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장기 도보를 하며 인생 후반 계획을 수립할 생각을 갖고 있다. 그전까지는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고 한다. 걸으며 천천히 인생 2막을 준비하려 그녀에게 걷기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궁금하다.
“걷기란 생활이다. 걷기는 죽을 때까지 나와 떼어놓을 수 없는 일이다. 걷기를 하면서 나 자신이 완전히 바뀌었다. 예전에는 외출이라고 해야 쇼핑이나 커피숍이 거의 전부였는데, 이제는 집이나 실내에만 갇혀 있을 수가 없다. 걷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주말에 집에 있으면 체하기 때문에 무조건 걸으러 나가야만 한다. 심지어 친구들을 만나도 길 안내를 하며 함께 걷자고 해서 이제는 친구들도 함께 걷게 되었다.”
걷기를 통해 많은 변화를 경험한 그녀는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할 것이다. 한 가지에 몰입하는 그녀는 걷기에 몰입한 후 스스로 자신을 변화시키고 업그레이드시켜나가고 있다. 8년 전 처음 걷기 동호회에서 만났을 때 까칠하게 느껴졌던 그녀에게 말을 걸기가 조심스러웠다. 시간이 지나며 사람들과 웃고 편안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요즘에는 부드러움과 여유로움도 느낄 수 있다. 인터뷰 마친 후 맥주 한 잔 마시며 역시‘생키미’는 ‘생키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생명을 지키는 ‘생키미’라는 별칭답게 걷기를 통해 자신과 주변 사람을 사랑하고 지키며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다. 그녀의 생명 지킴이 활동과 멋진 인생 2막을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