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냥 걸어요

나오는 글

by 걷고

우리 그냥 걸어요

이 책을 준비하면서 열다섯 명을 만났다. 세 명은 아직 자신의 이야기가 책으로 발간되는 것에 대해 자신이나 가족들이 준비가 안 되었다고 하며 포함시키지 않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상처와 고민거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상처가 더 이상 자신을 아프게 하지 않고 남들에게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극복되어야만 얘기를 꺼내 놓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이 책에 실리지는 않았지만, 인터뷰에 응했던 분들이 과거의 아픈 상처와 지금 안고 있는 고민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좀 더 편안해지길 바랄 뿐이다.


면담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느꼈던 것 중 하나는 두 시간에서 네 시간 정도의 짧은 인터뷰 시간 안에 걷기 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살아온 인생 얘기를 모두 쏟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뷰를 시작하면 처음에는 약간의 어색함이 흐른다. 하지만 걷기 시작한 계기를 얘기하면서 대화가 활기를 띠게 되고, 자신이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시작하며 점점 더 자신의 얘기에 빠져든다. 그리고 인터뷰가 끝나가면서 오히려 자신의 삶을 한번 돌아볼 수 있어서 고맙다는 얘기를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들었던 느낌은 어느 누구도 그분들이 살아온 힘들었던 삶의 여정에 관심을 갖고 경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짧은 시간만이라도 자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자신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삭막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고통을 겪어 본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기가 어렵다. 비록 큰 도움은 될지 못하더라도 마음속으로라도 기도를 하거나,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며 함께 걷자고 손을 내밀기도 한다. 이 책에 나온 사람들은 자신들의 아픈 경험을 통해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며, 함께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걷기를 통해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난 사람들도 있고, 아직 회복 중인 사람들도 있다. 기꺼이 인터뷰에 응하고 자신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발간되는 것을 허락한 이유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사람들에게 걸으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다. 걷기는 누구나 쉽게 언제 어디에서든 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삶의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내미는 따뜻한 손길이다.


힘들었던 시기에 걷기 동호회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서로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웃고 떠들며 시름을 떨쳐낼 수 있었다. 그런 순간이 주는 짧은 시간의 여유와 숨 쉴 공간은 마음속 공간을 확장시킬 수 있는 삶의 마중물이 된다. 너무 지쳐있고 삶이 무기력할 때 사람들은 자꾸 뭔가를 더 해야만 할 것 같다는 불안감과 강박적인 생각으로 자신을 더욱 몰아붙인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것을 성취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보다는 조용히 자신을 들여다보는 마음의 동면을 취하는 것이 좋다. 적어도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그렇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린다는 것 자체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불안감을 견디고, 스트레스 상황과 마주치며, 요동치는 상황에서 차분히 자신을 지켜본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런 동면이 결국에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에너지를 준다. 걷기는 힘든 상황과 시간을 버티게 만들어 주는 아주 적합한 동면이자 운동이다.


시련은 결코 시련 자체로만 오지 않는다. 시련은 우리에게 선물을 가져다준다. 삶을 좀 더 여유롭게 볼 수 있는 시각,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여유로움과 관용, 가족과 자신에 대한 사랑,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기회 같은 큰 선물들이다. 내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은 나의 길을 열어 준 것이다. 그 길은 심리상담, 명상, 걷기를 접목한 심신 치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여 심신이 지친 분들에게 도움을 주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시련이 '나의 길'이라는 선물을 주었고, 걷기가 이런 선물을 받아들이고 실행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지금 걷기는 나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삶의 어려운 문제 해결사 역할을 하기도 하고, 주치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제는 걷기로 받은 감사함을 다른 분들에게 걷기를 통해서 나눠줄 때이다.


지금 서울 심리지원 서남센터에서 상담심리사로 활동하고 있다. 명상 수행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문화센터나 사회단체에서 명상 수행 안내를 하기도 했다. 동호회나 사회단체에서 길 안내자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은 이 세 가지, 걷기, 명상, 심리상담을 접목한 심신 치유 프로그램을 준비 중에 있다. 스트레칭을 통한 몸의 감각 느끼기와 침묵 걷기, 종소리 명상을 함께 할 수 있는 걷기 프로그램을 시험 운영 중에 있다. 그간 준비해 온 다양한 프로그램과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단체와 함께 또는 홀로 ‘걷고의 걷기 학교’를 준비하고 있다. 빠르면 내년 초부터 직장인을 위한 걷기와 일반 성인을 위한 걷기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코로나로 또는 개인적인 사유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인터뷰했던 열두 명의 이야기가 이들에게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고 싶은 의지도 사라진 무기력한 상태에서 하루하루 힘들게 버티고 있는 분들이 이 책을 통해서 의욕을 되찾고, 치유받고,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은 분들에게 밖으로 나와서 무조건 걸으라는 당부를 꼭 하고 싶다. 걷는 일은 돈도 필요 없고 아무런 준비도 필요 없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을 입고 신발만 신고 나와서 걸으면 된다. 집 주변부터 걷고, 주변 야산도 올라보고, 걷기 좋은 트레킹 코스를 찾아가서 걷는 것도 좋다. 혼자 걸을 자신이 없거나 길을 몰라서 망설인다면, 걷기 동호회를 검색해서 함께 걷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부디 지금 당장 문 밖으로 나가서 단 10분 만이라도 홀가분하게 걷기를 바란다. 자연 속에서 걸으면 걷기와 자연이 우리에게 길을 열어준다. 지금 상황이 어떻든 걷는 시간만이라도 아무 생각하지 말고, 우리 그냥 걷자.


<우리 그냥 걸어요>

우리 그냥 걸어요

아무리 힘들고 괴롭고 지쳐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도

당장 내일이 보이지 않아도

우리 그냥 걸어요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오른발, 왼 발, 오른발, 왼 발

두 발의 움직임만 따라가며

우리 그냥 걸어요

날씨, 낮과 밤 가리지 말고

발의 감각을 느끼고

바람, 숲 냄새, 새소리, 햇빛을 느끼며

우리 그냥 걸어요

걷다가 지치면 아무 데나 앉아서

물 한 모금 마시며

물 한 모금의 소중함을 느끼며


우리 그냥 걸어요

분노와 원망하는 마음 올라와도

그저 바라보며 흘려보내고

지금 느껴지는 몸의 감각을 느끼며

우리 그냥 걸어요

먼 길이 멀다 말고 한 발 내디디듯

과거와 미래 모두 던져 버리고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살면서

우리 그냥 걸어요

걸을 수 있다는 것이

먹고, 마시고, 울고, 웃고, 떠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 수 있게 될 때까지

우리 그냥 걸어요

깜깜한 터널 속에 갇혀 있어도

멈추지 말고 걸어요

터널이 끝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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