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걷는가?’라는 가제의 책 작업을 하느라 약 2주간 걷기 일기를 쓰지 못했다. 브런치에서 열 명의 작가에게 출간의 기회를 주는 프로젝트 원고 마감일이 11월 1일 이어서 마음 바쁘게 준비하느라 일기를 쓸 수가 없었다. 이제 원고 초안과 목차가 마무리되었다. 앞으로 수정하기만 하면 된다. 이번에 글을 쓰면서 느꼈던 점은 글쓰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찾아볼 자료도 많아지고, 한 문단 쓰는데 서너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아마추어 작가가 이 정도니 프로 작가들이 글 한 줄 쓰기 위해서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
네 분의 대통령과 법정 스님의 장례를 진행했던 대장원 송귀 유재철 선생과 딸이 며칠 전 ‘침묵 예능 아이 콘택트’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차분히 앉아서 시청했다. 지인과 인연이 있는 분이어서 더욱 관심을 갖고 보게 되었다. 대한민국 대표 염장이로 명장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 딸에게 부탁할 말이 있어서 출연을 신청했다고 한다. “내 염을 네가 해 주면 좋겠다.”라는 부탁에 딸은 아무 거리낌 없이 “그게 그렇게 어려운 부탁이야? 그럴게.”라고 답을 했다. 부전여전이다. 결코 쉽게 꺼낼 수 없는 말을 던졌고, 결코 쉽게 답할 수 없는 답을 던졌다. 대화를 했다기보다는 마치 선문답 하듯 서로 던지고 받았다.
유선생의 복장은 모든 구속을 벗어나 훨훨 날아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세속의 모든 욕망을 버린 복장이다. 하긴 3,000여 명 이상의 염을 직접 진행하셨으니, 욕심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오랜 직업은 사람을 바꿔놓기도 한다. 30년 이상 염을 해온 사람은 어쩌면 이미 세상사를 초탈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안이 변하면 겉은 저절로 변한다. 겉은 가릴 수 있지만, 속은 가릴 수 없다. 반면 딸의 복장에서 활기가 느껴지고 삶을 채워 나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30대 초반인 그녀는 앞으로 일정 기간 채우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버리는 연습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아빠와 딸의 깊은 신뢰감도 인상 깊었다. 아빠의 품에 안겨 있는 딸의 어릴 적 사진을 관에 넣어달라고 부탁했고, 딸은 그 사진을 보고 감동에 젖어 눈물을 흘렸다. 아빠는 딸을 어릴 적부터 여러 모임에 데리고 다녔던 것 같다. 사물놀이패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다. 아마 딸은 이런 경험들을 통해서 어릴 적부터 본인이 의식을 했든 못했든, 아빠의 삶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식에게 자신의 죽은 몸의 염을 맡기는 것은 일반인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평생 염을 하고 살아온 아빠 역시 그 부탁을 하기가 매우 어려워서 신청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딸의 말 한마디, “그게 그렇게 어려운 얘기야?”, 로 아빠의 부담을 가볍게 입으로 훅 불 듯 날려버렸다.
염장이 아빠를 둔 딸자식이 아빠의 직업으로 인해 힘들게 살아오지나 않았는지 유선생은 신경이 많이 쓰였던 것 같다. 딸은 쿨하게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살아왔다고 했다. 어려운 얘기를 너무나 쉽게 풀어나가는 부녀를 보니 부럽기도 하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자신의 직업으로 인해 자식들이 어릴 때 혹시나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 걱정하시는 부모님들이 있다면, 이 프로그램을 자녀들과 함께 시청하길 권한다. 부모의 마음은 모두 같다. 혹시나 자식들이 부모로 인해 걱정하거나 피해를 입을까 부모들은 늘 걱정하며 살아가고 있다. 반면 자식들은 오히려 부모님 걱정을 하며 살아간다. 이제 서로 걱정 그만하고 각자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자. 그게 서로를 위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죽음은 손님이다.’라는 말이 가슴에 많이 와 닿는다. 수동적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능동적으로 기쁘게 맞이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이장희의 노래 ‘그건 너’를 들으며, 관 속에 어릴 적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을 가슴에 품고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했다. 죽음을 즐겁고 기쁘게 맞이하겠다는 것이다. 죽음은 결코 슬픈 일이 아니다. 삶이 반드시 즐거운 일이 아니듯, 삶과 죽음은 그냥 흐름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는 삶은 행복해야만 하고, 죽음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착각 속에 삶을 탐착하고 죽음을 혐오하면 살아가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시청한 후 나의 삶을, 죽음을 생각해 봤다. 일전에 외동딸에게 내가 죽으면 장례식을 하지 말라고 얘기하며 그냥 화장해서 날려버리라고 했다.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크게 좋은 일 한 일이 없으니 누군가가 나의 죽음을 추모할 일도 없을 것이다. 크게 나쁜 일 한 일도 별로 없으니, 누군가가 나의 죽음 앞에서 욕을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굳이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도 얘기했다. 내가 죽은 후 정 아빠 생각이 나면 가족들이 모여 식사하는 시간으로 대신하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장례식과 제사에 대한 부탁을 한 셈이다.
남은 재산은, 별로 없겠지만, 1/3은 아내의 뜻대로, 1/3은 손주들에게, 1/3은 둘레길에 벤치를 만들어 설치하라는 부탁을 하고 싶다. 산티아고 길을 걸을 때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자식들이 순례자들이 편히 쉴 수 있는 벤치를 설치한 것을 보았다. 보기 좋았다. 걷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내가 자주 다녔던 서울 둘레길, 상암동 주변 공원, 지리산 둘레길, 한라산 둘레길 등에 벤치를 설치해서 걷는 분들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 쓰고 있는 ‘걷고의 걷기 일기’는 평생 쓰려고 한다. 이 일기가 유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상시에 느끼고 생각했던 내용을 일기로 써서 남기면 내가 죽은 후에도 딸, 사위, 손주들이 글을 읽으며 내 생각을 할 수도 있고, 삶을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소망도 있다. 이런 부탁과 소망을 이 글을 통해서 딸아이에게 하고 있다. 따를지 않을지는 그들의 선택이다. 죽은 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빨리 이승을 벗어나는 일 외에는.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서 잠시나마 나의 죽음을 좀 더 깊게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되어 기쁘다. 유선생과 따님, 그리고 그분 가족의 평화와 행복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