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카메라 거치대를 허리에 차고 1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무려 일만 장의 사진을 찍은 사진작가 최연돈님의 전시회를 다녀왔습니다. 같이 산티아고 길을 걸은 길동무의 사진전을 보러 가는 마음이 들떠있었습니다. 일만 장의 사진을 정리하고 전시회 출품할 사진을 선정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을 겁니다. 또한 정리 작업을 하며 산티아고를 다시 다녀온 느낌을 받기도 했을 겁니다. 작가는 반갑게 맞이해주었고, 테이블에서 사진 액자 작업을 기쁜 마음으로 하시는 부인의 모습도 보기 좋았습니다. 가정과 일, 그리고 취미 생활을 균형감 있게 유지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작가 최연돈님과 함께 전시장에서 사진 한 컷
많은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그중 몇 장의 사진이 제 시선을 끌었습니다. 산티아고 떠나기 전 준비물을 펼쳐놓고 찍은 사진을 보며 가슴이 설렜습니다. 저 역시 돌아오는 길에 제 짐을 배낭에 넣기 전 찍은 사진을 찾아보았습니다. 그 당시의 설렘, 긴장, 불안, 흥분의 감정이 떠올랐습니다. 막상 다녀온 후 돌이켜보면 그중 30% 이상은 한 번도 사용하지도 않았던 물건이 있습니다. 불안으로 인한 준비물이 오히려 우리를 힘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많은 번민과 짐을 벗어버리기 위해 어리석게도 짐을 더욱 짊어지기도 합니다. 온전히 불안 속으로 뛰어드는 일은 참으로 용기 있는 행동이라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떠나기 위해 정말로 많은 짐이 필요할까요? 앞으로 길을 걸으며 짐 줄이는 연습을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성당 앞 출입문에 가득 놓인 신발 사진을 보며 뭉클해졌습니다. 순례자들이 몇 백 킬로를 걸어온 신발들입니다. 신발에 절을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의 몸, 짐, 마음의 무게를 신발들은 묵묵히 받아들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순례를 잘 마칠 수 있도록 아프다는 소리 조차 내지도 않고 견뎌내 주었습니다. 신발 속에 담긴 땀 냄새가 물씬 풍겨왔습니다. 전시장에 놓여있는 신발과는 완전히 다른 살아있는 신발입니다. 비록 사진 속 신발은 멈춰있지만, 그 사진은 활동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진 이면에 담긴 순례자들의 여정을 담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전시장 좌측에는 선반형의 전시대에 산티아고를 걷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담은 작은 액자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한결같이 그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있습니다. 틀림없이 오랜 기간 먼 길을 걸어오느라 지쳐있고 힘들 만도 할 텐데 얼굴에는 미소, 자긍심, 행복감이 가득해 보였습니다. 길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나 봅니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신체적 운동이 아니라는 진리를 이 사진들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길을 오기까지 그분들에게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사진을 보면 큰 폭풍이 지난 후의 고요함과 경건함이 느껴집니다. 이 사진은 길을 걸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가는 사진전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있을 겁니다. 아마도 제 생각에는 ‘걸으세요’라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길 속에서 만난 분들을 거울삼아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성찰을 통한 내면의 성장을 이루길 바라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길 위에서 평등한 존재이고, 존중받고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걸으며 자신의 아픔을 치유한 후에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고 다가가게 됩니다. 자신이 얻은 마음의 평화는 다른 사람과 환경에 전달되어 세상이 평화로워질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길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연결해 주는 물리적 환경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연결해 주는 아름다운 환경을 제공해 주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길은 스승이고, 길에서 만난 분들도 스승이고, 우리 자신이 우리의 스승이 되기도 합니다.
양평에서 오신 걷기를 좋아하시는 세 분과 함께
작가와 얘기 나누고 있는 중에 세 분의 여성이 방문하셨습니다. 어떻게 오셨냐고 물었더니, ‘걷고의 걷기 학교’ 밴드에 올라온 사진전 공지를 보고 찾아왔다고 하셨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누군가가 제가 쓴 글을 읽고 방문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반갑게 인사하고 사진도 한 장 같이 찍었습니다. 사진전을 통해서 걷기를 좋아하는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역시 길이 연결해 준 귀한 인연입니다. 길은 이렇게 사람들을 연결해 줍니다. 양평에서 먼 길을 와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서울에 오시면 길 안내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언제 오실지는 모르겠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길 안내를 할 생각입니다.
이 분들의 방문은 앞으로 글을 쓸 때 더욱 책임감을 갖고 신중하게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중에게 자신의 사진을 보여 준 작가 역시 단순한 자기만족이 아닌 대중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한 컷 한 컷 찍으리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글, 사진, 영화, 음악, 연극 등 어떤 작품들도 결국은 대중에게 호소하고 대중에게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글 한 줄, 사진 한 컷 모두 책임감을 갖고 쓰고 찍는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10월 28일까지 갤러리 로열 소 전시장 (지하 1층)에서 <최연 돈 산티아고 사진전>이 열립니다. 길과 걷기에 관심 있는 분들께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전시장 들려서 사진도 보시고 작가와 즐거운 대화를 나누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