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를 꿈꾸며
2017년 환갑을 맞이하여 내게 그간의 삶에 대한 보상으로 산티아고 여행을 선물하기로 했다. 약 10년 전쯤 우연히 어느 저자의 여행기를 읽으며, 언젠가는 한번 그 순례 길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걷기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그 생각이 좀 더 구체화 되었다. 작년에 동갑내기 동호회 회원과 함께 환갑 기념 여행으로 산티아고를 함께 걷기로 의기투합을 하였다. 최근에 통장을 개설하여 조금씩 저금을 하고 있으며, 책상에는 친구가 격려차 선물한 ‘부엔까미노’라는 산티아고 여행기가 있고, 책상 옆면에는 그 책의 부록에 수록된 산티아고 지도를 붙여놓고, 가끔은 책을 들춰보기도 하고 지도도 보며 그 꿈을 현실화 시키는 작업을 하며 스스로에게 삶의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 길을 떠난다. 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 여행을 하고 있을까? 지금도 젊은 대학생부터 70세 이상의 노인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또 구성원으로 보면 부부, 친구, 가족과 또는 홀로 걷는 순례자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들이 모두 종교적인 순례자는 아닐 것이고, 개인마다 목적이 다를 것이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걷기동호회 회원 분들 중 두 분이 이 길을 다녀왔다. 한 분은 환갑을 맞이하여 여행을 감행하셨는데, 그 이유는 자식들을 모두 출가 시킨 후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대학 졸업 후 바로 결혼하여 너무 남편에게 의존해 살아왔고, 자신의 삶이 없다는 것을 느끼며 독립성을 찾기 위해 결정을 하셨다 한다. 남편의 반대가 너무 심했지만, 정 못 가게 하면 이혼을 하겠다는 위협까지 하면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으며, 힘든 여정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순례를 마치시고, 그 이후부터는 자신의 삶을 살고 계신다고 하셨다. 지금도 꾸준히 걷기 동호회 활동을 하시면서 후배 회원들에게 이 순례 길을 권하고 계신다.
다른 한 분 역시 여성 회원으로 일류 고등학교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일과 사회생활의 즐거움에 빠져 지내다가 위암 판정을 받은 후에, 수술을 성공리에 마치고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내가 왜 이런 지경까지 되었는가 등을 고민하다 산티아고 순례를 하게 되었고, 다녀온 후에도 제주 올레길 완보, 걷기동호회 활동 등을 열심히 하면서 예전과는 다른 자신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 지금도 외국계 보험회사에 근무를 하고 있는데, 취업 조건으로 주말 근무 없고, 9 to 6 외에는 근무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입사를 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젊은 나이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앞으로 자신의 길을 어떻게 가겠다는 확신을 지니고 사는 모습이 부러우면서 대견스럽기도 하였다. 이 두 분의 산티아고 여행 목적은 한마디로 정리하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참 자기’를 찾는 것이라 말 할 수 있다.
나는 왜 이 길을 걷고 싶고, 왜 꿈을 꾸게 되었는가? 이 글을 쓰다 보니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었다. 내게는 삶의 중간 정산, 인생 이모작에 대한 구상, 그리고 영적인 성장을 이루고 싶은 것이 주된 이유이고 목적이다.
지난 약 60년의 세월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누어 질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태어나서 결혼 전까지, 부모님과 가족, 선생님, 친구들에 의지하며 자란 타인의 의해 성장한 나의 삶이다. 이 기간을 통해 나는 간난아이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며 스스로 경제적, 심리적으로 독립을 이루게 되었다. 그 기간은 여러 상황들을 만나고,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거치며 나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는 시기였다. 그 다음 단계는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고, 외동딸을 시집 보낸 기간이다. 이휘재라는 나의 이름은 사라지고, 누구 남편, 누구 아빠, 누구 아들, 사회의 직위와 맡은 역할로 불리워지며 살아왔다.
앞 단계에서는 나의 정체성을 찾고 나를 만드는 기간이라면, 그 다음 단계에서는 나 자신이 저절로 사라지는 기간이었다. 내가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았고,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 충실한 역할 연기자였다. 딸아이를 출가 시키며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부모님과 조상님들에게 진 빚을 갚았다는 후련함과 시원함 그리고 편안함이었다. 역할 연기를 한 사람이 그 역할에서 벗어난 후 맞이하는 자유의 평온함 같은 것이었다. 나를 만들고 찾았고, 다시 찾았던 나를 없애는 과정에서 나라는 사람은 많이 변하기도 하였고, 상처와 고통을 통해 성숙과 성장을 하기도 하였으며, 세상이 녹녹하지 않음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무지와 무력함을 뼈저리게 느끼며 겸손을 배우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삶은 내가 원하는 삶이라기보다는 주어진 책임을 다 해야만 하는 삶이었다. 내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없이 해내야만 하는 삶이었다. 그래서 나의 삶은 살았다는 표현보다는 살아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비록 그 삶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든 아니든, 성공했든 아니든, 그 역할을 내 나름대로 충실히 해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열심히, 그리고 바쁘게는 살았지만, 현명하게 살지 못했다는 아쉬운 생각이 너무 크다. 지난 세월 가장 안타깝고 후회스러웠던 일은 바로 과거가 묶어놓은 사슬을 풀어내려고 나의 거의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했다는 것이다. 현실을 잘 살면, 또 매 순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살았다면, 그 사슬은 절로 풀려지고 과거의 고통의 크기는 절로 작아지는데, 그 단순한 이치를 모르고 과거의 삶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고, 그 사슬은 더욱 더 나를 조여 왔다. 그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나 아깝다. 나는 이 여행을 통해 수 만 번 전생의 모든 업장과 현생의 과거와 이별을 함으로써 나의 삶의 중간 정산을 하려 한다. 마치 오랜 회사 생활을 한 사람이 자녀들 결혼 시킨 후에 퇴직금을 중간 정산하여 그간의 빚을 청산하고 조그만 집으로 이사를 가서 홀가분한 삶을 사는 것처럼.
인생 이모작 구상이란 지금부터 죽음에 이르는 동안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삶의 설계도를 만드는 것이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어떤 삶을 살면 삶의 의미를 찾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과거 삶의 여러 굴곡 속에서도 나를 꾸준히 지켜 주었던 것은 불교와 명상, 상담, 그리고 걷기이다. 오랜 기간 공부해왔던 불교와 명상이 삶이 지옥처럼 느껴질 때 마다 감로수가 되어 지옥고를 면하게 만들어 주었고, 삶에 대한 심한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 우연한 기회에 만난 상담은 나를 대학원에 진학하게 만들었고, 학문적인 공부와 상담 수련 과정을 통해 상담심리사로 만들어 주었으며, 동시에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심리적인 안정과 평안함을 얻게 해 주었다. 마라톤과 걷기는 심리적 불안과 고혈압을 마주치게 되자,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으로 시작을 하였고, 그런 신체적인 운동을 통해 심리적인 불안 장애를 많이 극복할 수 있었다.
결국 불교, 상담, 걷기가 나를 살렸고, 지금의 나는 심리적으로 많이 안정이 되었으며, 나름 일상 속에서 작은 행복감을 느끼면서 살고 있다. 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서 주위 사람들의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고, 심리적으로 고통 받는 분들에게 명상, 상담, 걷기를 통해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는 것이 내게 주어진 하나의 소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을 통해 나는 내 삶의 의미를 찾게 되고, 그런 일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나의 생각이 진짜 나의 생각인지, 아니면 심리적 유희나 보상심리로 하는 생각인지를 약 40일 간 800km를 걸으며 확인해 보고 싶고, 아울러 앞으로 나의 인생을 어떻게 펼칠 것인가에 대한 구상을 하고 싶다.
영화 '와일드‘는 걷기를 통한 과거 상처의 치유와 영적 성장의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은 인생을 거의 포기하게 된 순간 여행사에서 우연히 발견한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을 연결하는 4285km의 PCT (Pacific Crest Trail) 안내서를 보고 걷기 도전을 감행하였고, 성공 하였다. 걷다가 울기도 하고 세상을 향해 욕을 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치유해가면서 세상을 수용하는 법을 배웠다. 거의 여정이 끝날 무렵 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아무것도 없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곤 스스로 그 말에 놀라기도 한다. 그런 통찰이 바로 영적인 성장일 것이다.
나는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메세타 평원에서 목 놓아 울 것 같다는 느낌이 가끔 든다. 그 평원은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는 평원이다. 가끔 나 자신을 생각하면 아무 것도 없는 사막을 홀로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외로움이 무섭지는 않다, 하지만 외로움은 서럽다. 홀로 삶의 사막을 횡단하며 살아왔던 내 자신이 서럽고 슬픈 것 같아 그런 나를 위해 한껏 울고 싶다. 일종의 자기정화이며 자기자비이다. 40일 간의 여정을 통해 그런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불신이 신뢰로, 미움이 사랑으로, 분노와 억울함이 용서와 화해로 자연스럽게 변화되는 영적인 성장을 이루고 싶다.
상담공부를 시작하면서 내면의 긍정적인 변화들이 많이 생겨났다. 요즘 드는 생각은 그런 변화의 속도가 앞으로 점점 더 빨라질 것이며, 깊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러기 위해서 스스로 나 자신을 잘 살펴보고,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고, 하루하루 단순하고 편안한 삶을 살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 노력이 바탕이 되어 약 2년 뒤에 산티아고에서 산고를 겪고 태어난 신생아처럼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그 아이는 세상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을 알면서도 수용하되 빠지지 않고, 그것들의 본질을 잘 바라보고, 그 속에서 평온함을 유지하며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가장 평범하고 평안한 아이가 될 것이다.
(산티아고 출발 전에 왜 이 길을 걷고 싶은지 정리하고 싶어서 썼던 글을 올립니다.)
(산타이고 순례 중 머물렀던 순례자를 위한 병원 겸 성당, 숙소인 곳에서 신부님과 자원봉사자 분들과 함께 찍은 사진. 이 곳에서 세족식을 받았고,이 분들은 모두 성자이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