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책 발간 프로젝트에 출품하고 나니 뭔가 빠져나간 허전한 느낌이 든다. 게으름도 생기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동시에 홀가분함도 느껴진다. 잠시의 게으름과 휴식은 다음 일을 위한 충전의 시간이기도 하다. 끝은 시작이다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어떤 주제로 책을 쓸 것인가 고민을 해보기도 했다.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 것이다. 기회가 되면 발간도 할 것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정리한 생각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소통하고 살고 싶다. 걷기와 글쓰기는 평생 할 일이다. 이 두 가지는 하면서 즐겁고, 나누며 행복하고, 심신의 건강과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
비록 늦게 알게 된 좋아하는 취미지만, 이 취미거리가 앞으로 삶의 활력을 만들어 줄 것이다. 홀로 해도 좋고, 여러 사람과 같이 하고 나눌 수도 있어서 더욱 좋다. 주제는 걷기와 관련된 것으로 길, 걸으며 느낀 소감, 길동무들의 삶 등이 될 것이다. 한참 절을 찾아다니며 힘든 시간을 견뎠던 기억이 떠올랐다. 절을 찾아가며 길을 따라 걷기도 했다. 사찰마다 잊힌 옛길들이 있다. 그 길들이 지금은 조금씩 조성되어 개방되고 있다. 그 길들을 걸으며 길에 대한, 또 사찰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한다. 동시에 이 좋은 길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기억나는 곳이 몇 군데 있다. 미황사의 ‘참 사람의 향기’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 아침 포행으로 걸었던 옛 길이 지금은 ‘달마 고도’로 조성되었다. 주변 암자 12개를 연결한 17.8km에 달하는 길로 2017년 말쯤 개통되었다. 아침마다 포행했던 그 길이 지금도 눈에 선하고, 그 이후에 몇 번 다녀왔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전에 걸었을 때에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울 정도로 인적이 드물었던 곳이다. 7부 능선을 따라 걷는 이 길은 눈 앞에 해변이 펼쳐져 있어서 조용히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이다. 이 길을 한국의 산티아고 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88년경 송광사 단기 출가 4박 5일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다. 마지막 날 송광사에서 선암사로 넘어가는 옛길을 걸었던 기억이 있다. 그 길을 어떻게 고무신을 신고 넘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약간은 힘들게 정신없이 따라 걸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이 길이 알려져 사람들이 많이 걷는다고 한다. 회향 후 글을 써서 낸 것이 송광사에서 발간한 소책자 ‘출가 4박 5일’에 실렸던 기억도 있다. 그 당시 내가 쓴 글의 제목이 ‘장님이 되어 버린 여름’이다. 지금은 그 책자를 찾아볼 수 없어서 많이 아쉽다.
월정사 단기 출가 3주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 2005년으로 기억된다. 단순한 수행 프로그램이 아닌 행자가 되기 위한 기초 프로그램이다. 전나무 숲길을 빗 속에서 삼보일배하며 걸었던 기억도 있다. 상원사에서 적멸보궁까지 삼보일배를 하며 목이 쉬도록 정근을 했던 기억도 있다. 삭발식을 하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고, 깎은 머리를 전나무 숲에 묻기도 했다. 지금은 삭발 탑(?), 뭐라고 명명했는지 기억이 명확하지 않지만, 이 세워져 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가는 ‘선재 동자길’도 다시 한번 걷고 싶다. 이 길은 조성된 지 오래되어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는 길이다.
부안에 있는 월명암에서 내소사까지 가는 산 길은 참 아름다운 길이다. 월명암은 인연이 있는 절로 몇 년간 매년 일주일 정도 머물렀던 절이다. 아주 초라한 절이지만, 선방까지 갖춘 당당한 절이다. 주지스님의 원력으로 지금은 사찰 규모가 많이 커졌다. 무릎 수술을 마친 후 수술 담당 의사와 몇몇 불자들과 함께 월명암에서 내소사까지 약 4시간 정도 걸었다. 그때 담당 의사가 앞으로 무릎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책임이며, 자신의 수술을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 후배가 내소사 템플스테이 팀장으로 머물고 있다고 연락이 왔다. 후배 연락을 받고 나니 그 길이 그립다.
설악산 봉정암에서 철야 정진을 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그 길을 오르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오른 후의 희열감은 아주 강했다. 가을쯤으로 기억하는데, 해발 1244m에 위치한 봉정암은 아주 추웠다. 비닐로 천막이 만들어진 법당에서 다라니경을 밤새 독경하며 철야 정진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잠 잘 곳이 부족하여 철야 정진할 수밖에 없었지만, 덕분에 공부를 잘할 수 있었다. 공양 후 식기를 씻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양철로 만들어진 긴 싱크대에 흐르는 물로 식기를 세척하며 손 시렸던 기억도 떠오른다. 이 길도 걸어볼 만한 길이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곳은 위의 다섯 군데밖에 없지만, 사찰을 다니며 스님들과 얘기 나누다 보면 절로 가는 예 길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찰 순례에 관한 책을 몇 권 구입했다. 작가들이 어떤 식으로 글을 썼는지 참고하고 싶었다. 아마 사찰의 역사, 문화재, 사찰과 관련된 전설이나 옛날이야기, 머물렀던 스님들의 일화가 대부분일 것이다. 나름대로 차별화할 수 있는 점을 찾아 부각해서 글을 쓰고 싶다. 그중 가장 관심 있는 것이 ‘천년 옛길”이다. 그 길을 걸으며 길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 사찰 자체보다는 길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
기획안을 준비해서 불교 신문이나 잡지사에 연재를 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타진해 보려고 한다. 또한 사찰에도 연락해서 취재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도 알아볼 생각이다.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홀로 가면 된다. 아무런 부담 없이 찾아가서 걷고, 원고 마감에 대한 부담 없이 편하게 쓰면 된다. 매월 한 곳을 2년 간 다니면 24편의 글을 쓸 수 있다. 2년 후면 책 한 권 발간할 수 있게 된다. 옛 길을 걸으며 사찰에 대한 공부도 하고, 수행도 하고, 길 속에서 ‘길 없는 길’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절로 가는 천년 옛 길’ 프로젝트를 생각하고 글로 정리하고 나니 활기가 되살아난다. 그 길을 생각하면 벌써 가슴이 벅차고 설렌다. 결과와 상관없이 생각 자체만으로도 이미 행복하다.
내년 초까지는 브런치에 출품했던 글로 발간 작업을 하는데 매진하고, 책 발간 후 기획안을 준비해서 시작하려고 한다. 그전까지는 사찰 옛 길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도움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유관 서적도 읽으며 서두르지 않고 준비해나갈 생각이다.
글로 정리하다 보니 그간 인연 맺었던 사찰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만났던 스님들이 떠오르고, 도반들의 얼굴도 생각나고, 사찰의 모습도 떠오르고, 정진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내 삶에서 불교는 빠질 수 없는 아주 중요한 뼈대다. 어쩌면 이 프로젝트가 회향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귀한 인연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