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118]

우이락(雨耳樂)

by 걷고

코스: 20201028 – 20201102 53km

누적거리: 2,399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망원 시장에 우이락(雨耳樂)이라는 선술집이 있습니다. 육전이 일품이고 다양한 막걸리를 맛볼 수 있는 식당입니다. '우이락'의 뜻은 비(雨) 오는 날 빗소리를 귀(耳)로 들으며 즐거움(樂)을 느끼라는 뜻입니다. 상상을 잠시 해 보시기 바랍니다. 비가 제법 운치 있게 오는 날 비를 바라보고, 빗소리를 들으며 친구와 막걸리 한잔 기울이는 즐거움. 바로 행복입니다. 어쩌면 행복이라는 단어가 조금 유치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지난 일요일에 걸었던 백봉산은 말 그대로 우이락이 된 걷기였습니다. 비를 맞으며 많이 걸었습니다. 산티아고에서도 많은 비를 맞았고, 국내 길을 걸으면서도 우중 걷기를 많이 했습니다. 제법 큰 강우로 산길이 금방 계곡으로 변해 물길이 생길 정도의 비를 맞으며 걷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추우면 걷기 나오기를 귀찮아합니다. 번거롭고 힘들고 걷기에 불편하니 나오기가 싫어지는 것입니다. 요즘 제 주변에 겨울에 추워서 어떻게 걷느냐고 물어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냥 나와서 걸으면 된다는 것을. 사계절 두루두루 걸어야 어떤 계절, 어떤 날씨에도 걸을 수 있는 편안함이 생깁니다. 날씨에 맞춰 옷을 맞춰 입고 나와서 걸으면 됩니다.


천마산역에서 버스를 타고 내리자마자 선계의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저절로 '참 예쁘고 아름답고 멋진 길이다.'라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였습니다. 바닥은 꽃과 낙엽으로 포장이 된 꽃 길이었습니다. 하늘은 단풍 하늘이었고, 살랑살랑 부는 바람은 단 바람이었습니다. 그 길을, 그 산을 우리는 발로 걷고, 눈으로 걸었고, 몸으로 걸었습니다. 잊지 못할 추억이었습니다. 중간에 내리기 시작한 비는 우리의 더위와 땀을 식혀주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몸을 적셔주었습니다. 사회에 찌들었던 몸을 씻겨주는 세신 의식이었습니다. 자연은 이렇게 우리에게 선물을 제공합니다. 다만 그 선물을 받기 위해서 산을 찾고, 자연을 찾아야만 합니다.

보시를 몸으로 실천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지인 한 분께서 비 오는 날 농장 안에 18명이 먹을 수 있는 라면, 조리도구, 커피, 면장갑, 우비 등을 챙겨주시며 흐뭇하게 웃고 계셨습니다. 머슴은 손님들과 겸상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준수하시며 스스로를 낮추셨습니다. 그 겸손함을 보며 저의 오만을 저절로 반성하게 됩니다. 식사를 마치자 같이 초입 구간을 걸으시며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 주셨습니다. 하산 후 길에서 헤맬 때도 어느 순간 차를 몰고 우리 앞에 '짠'하고 나타나셔서 마지막 길까지 챙겨주셨습니다. 그 배려와 친절, 보시와 넉넉함, 여유로움과 겸손을 통해 속은 든든해졌고, 마음은 배움으로 가득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길을 걸었지만, 지난 일요일에 걸었던 백봉산의 단풍은 제가 걸었던 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길이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단풍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번 산행에서 만난 단풍의 아름다움은 최고였습니다. 비를 맞으며 빗소리를 듣고 단풍으로 눈 호강을 하고 낙엽을 밟으며 낙엽 소리를 듣고 길동무들과 걸었던 이 기억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오랫동안 간직하게 될 것입니다. 코로나로 우울해하시지 말고, 집안에만 계시지 마시고, 주변 산을 찾아 단풍 구경하시길 바랍니다. 마스크 쓰시고 옷 잘 챙겨 입으시고 나와서 걸으시면 됩니다. 뜻밖의 행복을 찾으실 수 있게 됩니다. 오늘부터 날씨가 겨울 날씨처럼 추워진다고 합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주변 산길을 걸으시며 심신의 건강을 챙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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