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활동했던 영어회화 클럽인 PTC (Pine Tree Club) 선후배와 함께 전등사를 다녀왔습니다. 세월을 따져보니 만난 지 40년이 넘습니다. 그 긴 세월을 같이 보내고 지금도 어울리고 있는 것을 보니 보통 인연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선후배로 예의를 지키고는 있지만, 모두 환갑이 넘은 분들이니 이제는 그런 관계보다는 친구라는 표현이 더욱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호칭이 어떻든 어떤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는가가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 대학 시절 만나 서로 함께 늙어가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서로 의지하고, 말동무도 되고, 같이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오랜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맙습니다.
한 친구가 자신의 차로 우리를 태우고 전등사로 출발했습니다. 차 안에 웰컴 드링크라는 커피를 미리 준비해서 전달해주는 섬세함과 배려가 고마웠습니다. 전등사를 찾아온 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최소한 10년은 넘은 것 같습니다. 낯 설은 풍경이지만, 절에서 풍기는 차분함과 중생을 받아들이는 넉넉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평일임에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학생들은 야외 학습을 나왔는지 밝게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고, 일부 학생들은 사찰 안내자의 설명을 귀 기울이며 듣기도 했습니다. 오랜만에 사찰을 찾으니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고, 걷기 위해 산을 찾을 때와는 다른 편안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함께 갔던 친구들과 함께 대웅보전에서 삼배를 올렸습니다. 다행스럽게 모두 불교에 관심을 갖거나 불교 공부를 하고 계신 분들이라서 어색함이 없었습니다. 한 친구는 가까운 가족 중 한 분이 간암에 걸려 곧 수술을 한다고 하며 약사전에 들려 불공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분의 회복을 기원합니다. 한 친구는 어릴 적 외할머니께서 집에 불상을 모셔놓고 기도를 하셨다고 하며 부처님 밥을 먹고살았다고 합니다. 처음 듣는 얘기였지만, 이런 얘기를 통해서 서로를 좀 더 이해하게 됩니다. 한 친구는 불교 공부 모임에 다닌 지 몇 년이 지났고, 스승님을 잘 만나서 공부를 잘 지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참 오랜만에 사찰을 찾아 마음의 휴식을 취하기도 했습니다. 같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어릴 적 모습은 사라졌지만, 중년의 건강하고 멋진 모습들이 보기 좋습니다.
사찰 참배를 마친 후 바닷가에 위치한 조개구이 집에 들러서 조개 구이를 주문했습니다. 한 친구가 친절하게 직접 구우며 서로 다투지 않도록 적절한 배분을 해주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마치 제비 새끼가 어미 제비가 물고 온 모이를 받아먹듯이 넙죽넙죽 받아먹었습니다. 그 친구의 봉사와 희생 덕분에 우리는 편안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운전 때문에 술을 마실 수가 없었고, 저는 저녁에 상담이 있어서 마실 수 없었습니다. 아쉽지만 참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덕분에 다른 두 친구는 음식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희생 아닌 희생이 다른 사람에게 큰 즐거움과 편안함을 줄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이런 행동을 희생이라고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우리에게는 그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어떤 상황에서든 그렇게 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희생 아닌 희생은 고마움으로 기억되고, 고마움에 대한 보상으로 우리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따뜻한 마음을 전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가 나이 더 들어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언젠가 이런 여행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올 때, 우리는 추억을 꺼내어 얘기하며 서로 웃고 울 수 있을 겁니다.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친구입니다.
전등사(傳燈寺)는 등을 전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등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무명 속에 헤매고 있는 중생들에게 불을 밝히는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불가에서는 자등명 법등명 (自燈明 法燈明)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자신을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아 자신과 진리에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을 등불로 삼으라는 말씀은 불성, 본성, 본래면목을 보고 체득하라는 말씀입니다. 진리에 의지하라는 말씀은 진리 외의 어떤 것도 믿거나 의지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자신과 진리는 실은 하나의 다른 표현일 것입니다. 삶의 이치를 보고 체득한 후, 이치에 어긋난 언행을 하지 않고 지내면 마음이 늘 평안해져서 안심(安心)을 이룰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종교를 찾는 이유는 마음이 불편해서입니다. 안심을 얻게 되면 불편함은 저절로 사라지겠지요. 전등사를 다녀오며 다시 한번 자등명 법등명을 마음속으로 되새겨 봅니다.
서울에 도착한 후 저는 상담실로 향했고, 한 친구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어서 어머니 곁으로 출발했습니다. 한 친구는 아들이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은 날이니 맛있는 음식을 해 주겠다고 서둘러 출발했습니다. 마음공부를 하며 희열감을 느끼고 있는 한 친구는 그 희열감이 공부의 동력이 되어 계속 공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전등사 여행을 끝내고 편안한 일상으로 복귀했습니다. 심우도의 그림 중 6단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그림이 기우귀가(騎牛歸家)입니다.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림입니다. 어제 우리가 서울에 도착해서 각자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바로 기우귀가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우리의 마음공부 여정을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귀한 인연을 만나 40년 넘게 알고 지내며 좋은 추억을 쌓아나가고 있고, 귀한 공부 인연을 만나 마음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늘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