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는 말
날짜와 거리: 20201125 – 20201129 24km
누적거리: 2,612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어제는 장모님 생신 잔치를 장모님 댁에서 했다. 아내는 도토리 묵을 직접 만들고 작은 케이크를 준비했다. 처남댁은 잡채와 부추전을 준비해왔고, 처남은 막걸리와 족발을 사 왔다. 장모님은 국과 밥, 김치를 준비했다. 상 위에 차려 놓으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고 상이 가득하다. 막걸리 한 잔을 장모님께 올리고 모두 건배를 하며 장모님의 건강을 기원했다. 외식도 고려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아무래도 꺼림칙해서 집 안에서 조촐하게 생신잔치를 했다. 가족들이 모여 너무 편안하고 조용했고 오붓한 잔치를 했다.
다행스럽게 가족들 모두 무탈하다. 처남 사업은 힘든 상황에서도 일이 끊이지 않고, 조카도 최근에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만들고 잘 지내고 있다. 우리 집도 무탈하게 잘 살고 있다. 장모님은 ‘이서방이 제일 걱정된다.’라고 말씀하셨다. 경제적으로 혹시나 내가 어렵지 않나 하는 걱정을 담은 농담 반 진담 반의 따뜻한 말씀이다. 늘 우리가 경제적으로 힘들어할까 걱정을 많이 하시고 계신다. 굳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당신에게는 우리가 제일 신경이 쓰이시나 보다. 환갑이 넘은 사위는 그런 걱정이 한편으로는 고맙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쓰인다. 당신 건강만 신경 쓰시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서이다. 처남은 장모님께서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지금처럼 웃으시면 좋겠다고 했고, 나는 그러실 거라고 화답을 했다. 술 한잔 들어간 처남과 나는 그런 말씀을 드리며 속으로 눈물을 삼키기도 했다. 가족은 이런 것이다. 서로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을 갖고 조금이라도 더 아끼고 보살피며 살아가는 것이 가족이다.
요즘 장모님은 아내가 다녀갈 때마다 ‘고맙다’라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고 한다. 불과 한 달 전부터 그 말씀을 많이 하신다고 했다. 딸이 친정어머니 모시고 친정 집에서 하루 밤 보내고 오는데, 또 딸이 매주 일요일 친정 집에 들르는데 장모님은 딸에게 ‘고맙다’고 하신다. 어제는 우리 부부가 처갓집을 나오는데 장모님께서 나오셔서 ‘고맙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신다. 그런 말씀을 듣는 것이 오히려 민망스럽다. 모시고 살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죄스럽다. 함께 살자고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아직은 아니라고만 말씀하신다. 아직 당신의 활동 영역이 집 주변이고, 우리 집에 오시면 당신이 할 역할과 만날 사람들이 없어지는 것도 이유 중 하나 일 것이다. 또한 아마 아들 집도 있는데, 사위와 함께 사는 것이 아들 눈치도 보이기도 하셔서 불편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언젠가 기동이 어려워지시면 자연스럽게 모실 날이 올 것이다.
자식들이 부모님 댁을 방문하는데 왜 부모님은 ‘고맙다’는 말씀을 하실까? 우리 사위와 딸이 우리 집에 와도 아직 우리 부부는 딸 부부에게 ‘고맙다’라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반갑고 좋다’라는 말을 하지만. 얼마 전에 사위가 전화해서 12월 중순 경 같이 울릉도에 놀러 가자고 했다. 가족 여행인지 알았는데, 나와 사위, 둘만이 가자는 얘기였다. 사위가 장인인 나와 둘만의 여행을 가자고 제안을 하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나중에 딸을 통해 들어보니 만취해서 집에 들어와 내게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아마 술을 마시다 내 생각이 났었나 보다. 사위에게 여행 경비를 보내면서 ‘여행 가자고 얘기해 줘서 고맙다.’라고 카톡을 보냈다. 12월 21일부터 3박 4일간 둘만의 여행을 울릉도로 떠난다. 기대가 된다. 사위는 숙소 예약, 기차표와 배 예약을 하며 수시로 진행 상황을 알려준다.
장모님은 우리 부부에게 ‘고맙다’라고 말씀하시고, 나는 사위에게 ‘고맙다’라는 말을 한다. 아주 오래전에 나 혼자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모시고 2박 3일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차 안에서 두 분은 서로 다투시며 누가 옳으냐고 질문을 하셔서 진땀을 냈던 적이 있다. 아침에 씻고 나오는데 장모님께서 내 얼굴에 장인어른 스킨을 듬뿍 발라 주셔서 혼비백산했던 기억도 있다. 그때도 장모님은 ‘우리 여행시켜줘서 고맙다’라고 말씀하셨다. 늘 모시고 다닌 것도 아닌데, 단 한번 여행 모시고 다닌 것을 고맙다고 하시니 오히려 몸 둘 바를 몰랐다.
요즘 나도 사위를 보면 늘 안쓰럽고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의 책임을 지고 곧 태어날 아기까지 두 명의 아이들을 키워야 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기도 하지만, 동시에 안쓰럽다. 이번 울릉도 여행 가서는 각자 편하게 쉬자고 얘기할 생각이다. 남자들의 일생 중 오직 자신만을 위해 쉴 수 있는 날이 며칠이나 될까? 그런 면에서 여성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가족, 책임과 의무, 할 일, 사회적 부담으로부터 벗어나 오로지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장인과 사위가 아닌 두 남자가 모든 책임과 의무, 관계에서부터 벗어나 오직 자신들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어젯밤 TV 프로그램에 한 연예인이 최근에 모친을 여의고 묘소를 찾는 모습이 나왔다. 평생 ‘사랑한다’라는 말을 하지 못한 것이 가슴에 한이 된다고 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장모님께서 ‘고맙다’라는 말씀을 하실 때 ‘사랑한다’라는 말씀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꽃을 좋아하시는 분이시니 날씨가 풀리면 꽃구경을 모시고 자주 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아내만 홀로 처갓집에 보내지 말고, 가능하면 나도 함께 같이 가서 잠을 자고 오는 것도 좋겠다. ‘고맙다’라는 말은 단순한 ‘고맙다’라는 뜻이 아니다. 안쓰럽다, 잘 살아라, 잘 살았다, 서로 아끼며 살아라, 마음 편히 살아라 등등, 많은 뜻을 포함하고 있는 유언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가슴이 먹먹하고 서럽기도 하다. 얼마나 더 사실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부터라도 좀 더 자주 찾아뵙고 잘 모셔야겠다. 장모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