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알지 못하면 비판할 수 없다
날짜와 거리: 20201227 7km
코스: 증산역 – 봉산 – 봉산 산책길 1구간 일부 – 봉산 – 숭실고교 – 집
누적거리: 2,848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봉산 산책길이 지금 조성 중에 있고, 서울 둘레길 구간은 보수 중에 있다. 새롭게 조성된 길은 옛길로 그간 인적이 많지 않아 묻혔던 길을 다시 정비하면서 만들어졌다. 좁은 소로로 이루어진 길은 조용히 걷기에 아주 안성맞춤이고, 낙엽이 많이 떨어져 있어서 낙엽 밟는 소리를 들으며 걷기 명상하기에 좋은 길이다. 그 길은 힐링 숲 길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걸으면서 마음이 차분해지는 길이다. 앞으로 새로 조성된 산책길 구석구석을 돌아볼 생각이다. 산책길을 지나 봉산 능선을 조금 걸은 후에 새로 정비된 다른 길을 걸었다. 숭실교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 역시 소로로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이 길 역시 처음 걷는 길이다. 처음 걷는 길은 괜한 설렘을 준다. 숭실고교부터 증산로로 내려오는 길은 주택가와 상점들로 이루어진 길이다. 시내 길을 걸으면서 주변을 구경하기도 하고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도 있다. 예전에는 이런 길은 빨리 벗어나고 싶어 했던 적도 있는데, 이제는 이런 주택가와 시내, 도로를 걷는 것도 좋다. 길에 대한 편견이 많이 사라졌다.
‘당신은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The Power of Empathy)’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임상심리학자이며 하버드 대학교 의대 임상심리학 교수인 저자가 쓴 ‘공감’에 관한 책이다. 이 저자는 형의 극단적인 선택을 막을 수 없었던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며 공감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공감은 인간 상담심리학의 창시자인 Carl Rogers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 상담자의 자세 중 하나이다. 나 역시 상담을 진행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공감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아가고 있다. 아직 나는 공감이라는 세상에 첫 발 조차 내디디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Carl Rogers는 공감을 내담자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내담자와 똑같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내려놓아야 한다. 자신의 판단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비판하거나 어설픈 조언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누군가의 어려움을 들으며 자신의 경험이나 판단을 기준으로 조언을 하며, 불필요한 위로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불필요한 조언이나 위로보다는 그냥 옆에서 입 다물고 조용히 있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충분히 알지 못하면 비판할 수 없다.”라는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다. 누군가의 말, 행동, 감정, 생각을 들으며 우리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자신의 잣대로 재단하고 판단하는 일이다. 자신과 맞으면 좋아하고, 틀리면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기도 한다. 우리는 과연 상대방과 온전하게 만나고 있는가?라는 의구심이 든다. 오늘 만난 사람을 과거의 기억으로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모두 매 순간 변화한다. 생각도 변하고, 몸도 변하고, 감정도 변화한다. 매 순간 변화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의 기억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대한다. 동시에 과거 자신의 모습이 자신인양 패턴화 된 일상을 더욱 강화하여 경직되게 만든다.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다. 나 역시 오늘 만나면서 과거의 그와 만나고 있다. 그 역시 기억된 과거의 나와 만나고 있다. 우리는 둘이 만남을 하면서 네 개의 존재가 만나다.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 그리고 지금의 상대방과 과거의 상대방. 이 네 개의 존재가 혼재되어 과거와 현재 속을 방황하며 만난다. 또 과거가 혼재된 오늘의 기억을 다음에 만날 때 소환해서 과거 사람과 만남을 이어간다. 어느 순간에도 우리는 현재의 ‘그’와 ‘나’가 만날 수 없게 된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다 보면, 우리는 어느 누구도 비판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상대방이 어떤 말, 행동, 생각, 감정을 표현할 때, 상대방에 대한 확실한 이해를 하지 않는 한 그를 비판할 수 없다. 오히려 그런 순간에 자신의 판단에 대한 자가 검열이 필요하다. 과연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의 언행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아니면 과거의 그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자가 검열이 필요하다.
며칠 전 딸에게 영화 한 편 보고 싶다고 부탁을 했다. 온라인 상에서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어서 부탁을 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부탁을 하면 딸은 당일 내로 결과를 알려주곤 했는데, 이번에는 이틀이 지나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은근히 화가 올라오려고 하다가 그 감정을 알아차리곤 생각을 해 봤다. 딸 역시 어쩌면 온라인 상으로 구매할 방법을 찾지 못해서 대답이 늦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후에 딸에게 전화를 했더니 내 예상대로였다. 웃으며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얘기하고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일상 속에서 누구와 만남이나 대화를 하면서 우리는 쉽게 자신의 판단으로 상대방을 재단하고 쓸데없는 비판과 비난을 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이 올라올 때가 바로 자신을 자가 검열을 할 때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상대방과 지금-여기에서 만날 수 있게 된다. 상대방에 대한 비난이나 비판하기 전에 과연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상황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하고 있는지, 자신을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이 만남을 충실하게 만들어 주고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인간관계를 만들어 주며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