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과 보석 십자수
날짜와 거리: 20201228 7km
코스: 사천교 – 홍제천 – 월드컵공원 – 불광천 – 집
누적거리: 2,855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올해 상담이 모두 끝났다. 오늘 치과 치료만 받으면 금년에 할 일은 모두 끝난다. 내년 1월 3일까지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다. 코로나로 인해 연말 모임이나 기타 모임들이 모두 자동적으로 취소가 되어 한가롭고 조용한 연말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어제 상담을 마친 후에 몇 정거장 전에 내려서 홍제천부터 걷기 시작했다. 여전히 사람들은 활기차게 운동을 하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스스로 살아갈 방법을 찾아간다. 인간의 지혜다. 집에 와서 아내와 와인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휴식을 취했다. 딸아이가 넥플렉스 가입한 후에 나도 같이 시청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덕분에 영화 한편을 태블릿 PC를 통해 시청했다. 태블릿 PC도 딸아이가 내 생일 선물로 사준 것이다. 주로 아내가 사용하고 있지만, 넥플렉스 덕분에 앞으로 나도 자주 사용하게 될 것 같다.
며칠 전 아내가 처갓집에서 장모님께서 만드신 보석 십자수 그림을 들고 왔다. 장모님의 무료함을 달래 드리기 위해 아내가 보내드린 십자수를 완성하셔서 다시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이다. 밑판에는 색깔 별 밑그림과 번호가 쓰여있고, 같은 색 알갱이를 봉투에 넣어 번호를 써놓았다. 이 작은 알갱이들을 하나하나 같은 번호가 인쇄된 밑판에 붙이면 완성이 된다. 장모님 말씀에 의하면 그림 한 개를 완성하는데 많은 시간걸린다고 하셨다. 잠이 안 오시거나 별다른 일정이 없으실 때 십자수 작업을 하시면 시간이 잘 지나가고, 집중도 할 수 있어서 쓸데없는 생각이 많이 없어진다고 하셨다. 노인회장을 맡고 계셔서 늘 사람들 만나고 외식도 자주 하시면서 바쁘게 보내셨는데, 코로나로 인해 외부 활동이 줄어들어 다소 무료해하셨다. 보석 십자수 덕분에 좋은 놀 거리, 할 거리를 찾으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좋아하시고 시간을 잘 보내고 계시니 좋은 일이다.
아내와 처남 부부는 매주 일요일에 처갓집에 가서 장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매주 일요일이 장모님에게는 가장 바쁜 날이고 힘든 날이기도 하다. 음식을 미리 준비하셔서 같이 식사를 한 후에, 남은 음식을 바리바리 싸서 보내주신다. 힘드시다고 나가서 외식하자고 해도, 장모님은 음식을 부지런히 만든다. 이런 일들이 장모님의 시간을 보내는 일 거리이자 놀 거리이다. 허리와 다리가 불편하셔도 몸을 억지로라도 많이 움직이시며 이런저런 일을 만들고 바쁘게 지내고 계신다. 예전에는 성경을 두 번이나 필사하셔서 성당에 보여주시기도 했다. 홀로 계신 시간을 나름대로 잘 보내고 계신다. 그 모습이 보기 좋기도 하면서 함께 살지 못하는 죄송스러운 마음도 든다. 장모님께서 활동하시는 영역이 있으니 무조건 우리와 함께 살자고 얘기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우리가 장모님 영역으로 들어가 함께 사는 것 역시 우리 생활이 불편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따로 살면서 마음만 안타까울 뿐이다.
아내도 코로나로 인해 탁구를 치지 못하게 되면서 가끔 무료해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는 손녀 돌보는 일로 제법 활기차게 보내곤 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손녀 만나러 가는 것조차 어렵게 되었다. 내년 2월에는 둘째 손주가 태어나니, 당분간 아내의 역할도 많이 늘어날 것 같다. 코로나가 변수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아내의 역할을 제법 많아질 것이다. 그렇게 1년 정도 지나고 나면 아내가 손주들과 딸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지극히 제한적일 것이다. 아내에게 보석 십자수 만드는 것을 권했는데, 아직은 그다지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재봉틀로 뭔가 만들고 싶어 한다. 그것도 좋은 일이다.
인간은 결국 혼자 살아가는 것이다. 함께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결국은 혼자다. 특히 나이 들어가면서 건강에 이상이 오기도 하고, 사회적 활동이 줄어들면서 만나는 사람들도 줄어든다. 혼자 잘 사는 방법을 각자 찾는 것이 중요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코로나가 우리에게 홀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5인 이하 모임 금지로 외부 활동이 줄어들고 있고, 사람들을 만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심지어는 가족끼리 만나는 것도 서로 꺼리는 상황이다. 이 기간을 잘 활용해서 혼자 살아가는 각자의 방법을 찾고, 만들고, 습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몰입할 수 있는 일도 좋고, 하면서 즐겁고 설레는 일도 좋고, 평상시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던 일을 하는 것도 좋다.
누구나 늙어간다. 늙어가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점점 더 증가한다. 어떻게 혼자 시간을 잘 활용하며 즐겁고 무료하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지가 노년 삶의 질을 결정할 수도 있다. 그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습관화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연습이 필요하다. 일단 몸에 익으면 그다음부터는 습관이 우리를 끌고 간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다행스럽게 걷기와 글쓰기라는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 이들은 몸에 익어서 나와 헤어지지 않을 정도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만약 이 일을 일주일 이상 하지 않는다면, 금방 이 친구들은 내 곁을 떠난다. 이들이 내 곁을 떠나지 않도록 꾸준히 몸을 움직이고 습관을 점점 더 강화해서 나의 일부가 되도록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홀로 즐겁게 살아가거나 또는 무료하게 살지 않기 위해 할 일을 찾고, 만들고, 습관화하는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루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