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며
날짜와 거리: 20210101
코스:
누적거리: 2,883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어떤 상황에서도 시간은 지나간다. 새해가 시작되었다. 첫 걸음을 하지 못하고 집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했다. 가끔은 이런 날이 있어서 좋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나가기가 귀찮아서 쉬었다. 아침에 일어나 명상을 한 후에 신문을 보고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했다. 발뒤꿈치가 쓰라려 살펴보니 상처가 났다. 뜨거운 물에 발을 불은 뒤 깨끗하게 닦아내고는 연고를 발랐다. 잘 보이지 않는 뒤꿈치 부분이어서 아내가 연고를 발라주고 밴드를 붙여주었다. 같이 나이 들어가면서 이런 일을 돕고, 도움 받으며 살아가는 것도 좋다. 어차피 혼자 가겠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동안 서로 존재의 고마움을 느끼며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년 말에 길동무 한 분이 내 사진을 받아서 전 세계에 하나 밖에 없는 개인용 달력을 만들어주셨다. 작년 달력을 치우고 선물 받은 탁상 달력을 책상 앞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달력을 한 장씩 넘겨보았다. 사진을 길동무에게 전달할 때 어느 사진을 몇 월 사진으로 하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1월 사진은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하루 묵었던 알베르게인 성당에서 만난 신부님과 자원 봉사자들과 찍은 사진이다. 이 달력을 만들어 주신 분의 정성이 너무 고맙게 다가왔다.
신부님은 세족식을 엄숙하게 진행해 주셨고, 봉사자들은 음식을 정성스럽게 준비해 주시며 하룻밤 아주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배려를 많이 해주셨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성당에서 촛불을 켜놓은 채로 만찬을 대접받았고, 와인도 마시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에 길을 나서는데 은쟁반에 초콜릿을 담아서 선물로 주셨다. 그분들을 통해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교훈을 체득할 수 있었던 전체 일정 중 가장 중요한 날이었다. 그날 40km 이상 빗 속을 뚫고 걸었다. 알베르게가 없어서 예정된 코스 보다 한 코스 더 걸었고, 우연히 들어간 곳이 성당이었다. 온 몸이 젖었고, 배낭과 신발도 엉망이었지만, 이분들은 밝은 미소로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셨다.
산티아고 길을 걷는 사람들도 백인백색이다. 이 분들은 매일 다른 순례자들을 만나 미소와 친절함으로 맞이하고, 다음 날 아침 정중하게 보내드린다. 반복된 일상에서 지칠 수도 있고, 진상을 부리는 순례자를 만난다면 짜증도 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우리에게 보여준 모습을 보며 어떤 순례자들이 찾아와도 이 분들은 같은 모습으로 대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분들에게 배운 교훈이 바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였다.
어떤 사람, 상황을 맞이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일상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의 참된 의미일 것이다.
이분들과 찍은 사진을 1월 달력에 실은 이유는 바로 이분들에게 배운 가르침에 충실한 삶을 살고 싶다는 염원 때문이다. 또한 이분들과 찍었던 사진에 나타난 밝고 건강한 웃음을 잃지 말고 한 해를 보내자는 마음의 약속을 하기 위해서다. 금년 할 일들이 어느 정도 구체화되었다. 물론 사소한 일이나 다른 급박한 일들도 발생할 가능성도 있지만, 그때 가서 그 일들에 맞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다행스럽게 금년 1년의 출발은 안정적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상담 일정이 확정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고, 그에 따른 보상이 주는 안정감이 있어서이다. 코로나로 연말을 차분하게 보내면서 오전의 루틴이 만들어진 것도 생활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코로나가 세상을 많이 바꾸어놓았다.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경제적, 심리적, 신체적인 불안감과 불편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한다. 하지만, 이 사진을 보고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진리를 한번 상기하고, 건강한 웃음을 보고 한번쯤 큰 소리로 웃으며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힘든 분들에게 이런 주문이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 사진이 그분들에게 힘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나 역시 시작은 안정적이지만, 앞으로 일년간 어떤 일들이 발생할 지 전혀 모른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이 사진이 가르쳐준 진리를 되새기며 용기를 얻고, 희망을 되찾고,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 하루만 잘 살자. 내일이 되면 내일이 '오늘'이 된다. 오직 하루하루 잘 살면 된다. 매일매일 오늘 하루만 잘 살자. 새해 마음에 담고 싶은 말은 ‘오늘 하루만 잘 살자.’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역시 ‘오늘 하루만 잘 살자.’라는 마음으로 금년을 살아가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