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165]
삶은 행상(行商)이다
날짜와 거리: 20210121 - 20210122 15km
코스: 일상 속 걷기
누적거리: 3,045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길 가에 있는 상점들이 문을 열고 물품을 진열하고 있다. 식료품, 과일, 생선 가게들은 각자 물품을 진열해서 팔고 있고, 옷 장수는 옷을 이동식 옷걸이에 걸어놓고 있다. 약국도 문을 열고, 자동차 판매점도 고객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길가에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고, 도로는 차들로 가득하다. 다만 구름은 무심한 듯 서서히 흘러가고, 북한산은 늘 그 자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구름과 산은 계절의 변화와는 무관한 듯 흘러가고 그 자리에 서있다. 사람들은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그에 맞는 준비를 하며 그 변화와는 상관없이 각자 할 일들을 하고 있다. 어제 아침에 모 단체 면접관으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서며 보았던 풍경들이다. 나 역시 할 일을 하기 위해 가고 있다.
갑자기 나의 모습이 행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나는 ‘면접관’이라는 행상이다. 어제의 나는 ‘강사’라는 행상으로 ‘전문대학 연계 고교 2학년 직업과정 위탁 교육’ 강사로 강의를 진행했다. 주 2회는 ‘상담사’라는 행상을 하고 있고, 지금 책 발간을 위한 ‘작가’ 행상도 하고 있다. 그 외에 ‘걷기 안내자’이며 ‘명상 수행자’라는 행상도 하고 있다. 내가 진열하고 팔고 있는 물품은 심리상담사, 작가, 걷기 안내자, 명상 안내자, 면접관, 강사 등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 행상이다. 다만 팔고 있는 물품이 다를 뿐이다. 또한 그 행상을 통해서 가족들 부양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어 가고 있다.
정치인들은 공약을 팔고 지키며 살고 있다. 교수들은 자신들의 학문과 전공을 팔고 있다. 사업가는 자신들의 제품을 팔고 있고, 직장인은 자신들의 업무 능력을 팔고 있다. 언론인은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팔고 있고, 작가는 글을 팔고 있다. 사람들은 각자 갖고 태어난 재능과 노력으로 만든 능력을 팔며 살아가고 있다. 장터에 가면 집에서 키운 닭을 들고 나온 행상도 만날 수 있고, 자신이 재배한 농산물을 들고 나온 행상도 만날 수 있다. 건강한 노동의 대가를 판매하며 삶에 필요한 것들을 구입해서 살아간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삶은 ‘사고파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팔고, 필요한 것을 사는 행위가 삶이다. 그런 행위에 각자의 사상과 철학과 의미를 담아 삶을 만들어 간다.
행상의 생명은 전문성에 있다. 내가 팔고 있는 여러 가지 제품들 즉, 상담, 명상, 걷기, 강사, 작가는 모두 심신 건강과 관련이 있다.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뿐이지, 굳이 다른 제품들을 추가할 필요가 없다. 전문성을 유지하고 키워나가기 위해서 꾸준한 공부를 하며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다. 내 행상을 풍요롭게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게 하기 위해서 할 일이 있다. 독서, 걷기, 그리고 명상이다.
독서를 통해 생각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것이다. 알고 있고, 경험한 것 자체만으로는 자신의 세계에 빠질 위험이 있다. 편견과 쓸데없는 고집만 생길 뿐이다. 독서를 통해서 자신의 사고의 변화와 확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 걸으며 자연을 통해 배우고, 읽었던 내용을 되새기며 자아 성찰을 할 수 있다. 또한 신체의 건강은 자신의 일을 성취하는데 필요한 집중력과 지구력을 키워준다. 명상은 과거로부터 벗어나 지금-여기에 살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과거의 경험과 상처가 현재를 묶어버리면 늘 과거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다. 또한 명상을 통해 긍정적인 마음 근육을 키울 수 있다.
행상의 생명력을 만들어 주는 것은 ‘꾸준함’이다. 전직 프로야구 선수 홍성흔은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 준 것이 바로 ‘108배’라고 했다. 그는 7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108배를 했다고 한다. 108배를 하는데 15분에서 20분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하지만 매일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이다. 행상이 오늘은 노점을 열고 내일은 닫는다면 그 행상을 찾는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같은 시간에 열고 같은 시간에 닫으면 사람들이 신뢰를 하며 찾아온다. 내 행상을 풍요롭고 신뢰감 있게 만들기 위해 매일 독서, 걷기, 명상, 글쓰기를 하고 있다. 가끔 귀찮고 게을러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하고 있다. 누가 방문하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꾸준히 행상을 열어 놓는 것이다.
그렇다면, 행상은 반드시 물건을 팔고 생산적이어야만 하는 것일까? 예전의 어르신들은 별 할 일이 없어도 아침에 일어나 집안 뜰을 빗질하거나 논이나 밭에 나가셔서 둘러보고 잡초를 뽑기도 하고 가족사도 챙기고 친구들 만나며 하루를 보냈다. 비록 그 일이 생산적이지 않는 일이라 할지라도 집 안에만 머물지 않고 꾸준히 몸을 움직이며 살았다. 그냥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살았다. ‘나무를 심은 사람’의 주인공이 매일 상수리 열매 100개를 심듯이. 그냥 할 일을 찾고 하는 것이다. 비록 그 일이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가정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냥 매일매일 좌판을 깔고 앉아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우리 삶이 아닐까? 북한산이 아무 할 일 없이 그 자리에 그냥 있는 것, 구름이 할 일 없이 무심하게 흘러가는 것, 행상이 손님이 오든 알든 그냥 좌판을 펴고 있는 것, 그것이 우리네 삶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