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을 걷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빅터 프랭클(Vikor Frankl)이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저술한 저서이다. 그 책에서 그는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서도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행복을 찾아 낼 수가 있다고 하였고, 그 이론을 바탕으로 하여 의미치료(Logo Therapy)이론을 정립하였다.
강제수용소에서 지내는 사람들 중에 자살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근거 없는 기대감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금년 크리스마스에 나갈 수 있겠지, 내년 1월 1일에 연합군이 우리를 해방시켜주겠지, 추수감사절에 맞춰 연합군이 우리를 구해주겠지 라는 스스로 상상으로 만들어 낸 허구를 사실로 믿고 희망을 지니고 있다가, 그 시점에 현실화 되지 않자 절망감에 자살을 한다는 것이다. 허황된 기대감을 만들어 내는 상상력, 그 기대감에 맞춰 사는 에너지, 그 기대감이 만들어 낸 결과에 대한 들뜬 희망 등이 순간적으로 삶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듯 하지만, 곧 절망으로 바뀌고, 그런 강한 절망감이 허탈감과 상실감으로 이어져 죽음을 택하게 된다.
오늘 행복듬이님이 안내하는 길은 처음 가는 길이고, 궁금했던 길이기에 기대감과 설렘을 안고 참여를 하였고, 약 서른 명 정도의 걷기마당 식구들은 늘 그렇듯이 즐겁게 수다를 떨고 한껏 웃으며 걷기를 하였다. 처음 본 분들도 계셨고, 오랜만에 나오신 분들도 계셨지만, 삼삼오오 어울려 걸으며 어색함은 어느덧 사라졌고 우리는 한 식구가 되어갔다.
걷기를 하며 힘들고 지칠 때, 5시에 끝나기로 했으니 이제 40분 남았다, 저 앞에 다리까지만 가면 끝나겠지, 라는 기대감은 오히려 우리를 더욱 힘들게 만든다. 특히나 오늘처럼 강한 햇볕이 내리 쬐는 날에 강변을 따라 포장된 지루한 길을 간다는 것은 피로감을 쉽게 느낄 수 있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게 된다. 길 중간에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코스모스 꽃밭과 박들이 주렁주렁 걸려있는 터널, 다리 밑의 시원한 바람과 그늘 등이 우리들에게 힘을 불어 넣어주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피로감은 더해가고, 그 피로감은 가끔 우리에게 곧 끝날 것이라는 근거 없는 희망과 기대감을 불어 넣어주며, 그런 생각들은 결과적으로 우리를 더욱 힘들게 만든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아직 나오지 않은 결과를 미리 예측하고 상상하는 것들은 우리 자신을 힘들게 만든다.
길을 걸을 때에는 도착지에 대한 마음은 내려놓고 주변 경관도 구경하고, 길동무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가끔은 바로 앞 사람의 발뒤꿈치를 보거나 혼자 사색을 하며 걷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언제 도착할지, 지금 여기가 어딘지, 얼마나 더 가야 목적지에 도착하는지 하는 생각을 쉬고 그냥 걷는 것에 집중하며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목적지게 가기 위해 걷는 것이 아니고, 걷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아마 우리의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하고 생각해 본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오늘 주어진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목표를 이루게 되는 것 같다. 미래에 대한 기대나 상상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런 상상을 하는 순간에 현재는 사라지게 되고, 현재가 없는 미래는 절로 사라지게 된다. 걸으며 몸으로 직접 배우게 되는 좋은 가르침이다. (201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