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사람, 삶 (해파랑길 6회 차)

호미곶에서 포항 영일 신항만

by 걷고

손녀와 함께 한 해파랑길

아침 5시 30분에 집을 나서는데 시간을 잘못 확인 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날이 밝습니다. 두어 달 전에만 해도 어둠 속을 뚫고 나오는 발걸음은 마치 몰래 집을 빠져 나오는 도둑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어느새 어둠은 물러가고 밝음이 발걸음을 상쾌하고 가볍게 만들어 줍니다. 이번 길에는 어떤 길이 우리를 반겨주고 어떤 추억을 안고 돌아올지 벌써 기대가 됩니다. 또한 어둠이 아닌 밝은 길을 나서는 마음도 훨씬 편안합니다. 아마 새벽 같은 이른 아침에 아내가 아침을 챙겨주는 수고로움이 은근한 미안함으로 남아있었나 봅니다.

포항행 KTX를 타고 여정을 시작하였습니다. 4인용 좌석에 앉아 지난 한 달간의 얘기도 하고 각자 준비해 온 음식물을 나눠 먹기도 하며 길동무와 함께 걷기 위한 시동을 겁니다. 누군가와 낯선 길을 걷는다는 것은 사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길동무들의 마음과 건강 상태도 중요하고 그 분들과 호흡을 함께 하며 팀웍을 이루기 위한 마음의 준비도 필요합니다. 여러 번 같이 걸은 분도 계셨지만, 처음 해파랑길에 참가하신 분도 계십니다. 새로운 분의 동참은 분위기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분위기를 통해서 우리는 서로 맞춰가고 자신을 바라볼 수 있고 양보와 배려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됩니다. 그래서 홀로 걷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함께 걷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KTX 천정에 매달린 모니터에 어느 할아버지의 얘기가 소개 되었습니다. 부인과 무료한 생활을 보내시던 70대 중반의 할아버지께서 외국에 살고 있는 손자가 너무 보고 싶으셨습니다. 아들 내외와 상의한 후에 당신이 손자에게 들려주고 보여주고 싶어 하시는 것을 그림으로 그려서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내는 그 그림에 맞는 글을 써 주시고, 아들 내외는 그 내용을 영어로 번역하여 올리며 가족 행사가 되었습니다. 그 그림과 글들이 사람들의 인기를 얻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팔로워가 약 34만 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할아버지 부부의 생활은 활력으로 넘쳐났고, 가족 전체의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가족 간의 대화는 물론이고 손자와의 교류를 통해서 온 가족이 함께 숨 쉬고 사랑하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그 분들에게 먼 이국에 살고 있는 아들 내외와 손자와의 물리적인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끈끈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옆 좌석에 자녀 세 명과 함께 여행을 하시는 부부를 보았습니다. 가장 어린아이가 11개월 된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가 너무나 사랑스럽게 보였습니다. 그 아이를 보며 곧 태어날 손녀가 생각났습니다. 갑자기 손녀가 너무 보고 싶어졌습니다. 모니터 상에 나타난 할아버지의 모습과 옆 좌석에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며 저와 곧 태어날 손녀의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앞으로 손녀와 어떻게 소통하고 손녀를 위해 뭔가를 하는 것이 좋은지 그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스타그램? 트위터? 손녀만을 위한 일기? 손녀만을 위한 블로그? 고민을 해봐야겠습니다.

호미곶에서 영일대로 가는 길은 해파랑길의 백미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해안가를 따라 조성된 길을 걸으며 탁 트인 바다, 시원한 파도소리, 진한 바다냄새, 파도가 자갈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나타나는 포말, 자갈들이 지저귀는 느낌이 드는 움직이는 소리, 태평하게 바다를 유영하는 갈매기 등의 모습이 눈과 귀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데크길로 조성된 길도 있지만, 데크길이 끊겨진 곳에는 대충 이어붙인 징검다리 같은 좁은 길과 너덜길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 길을 걷다가 파도가 밀려오면 피하기도 하면서 파도와 함께 즐거운 숨바꼭질을 하였습니다. 파도는 잡으려 달려들고, 우리는 잡히지 않으려 팔짝 뛰며 피하기도 하였습니다. 타이밍을 잘 못 맞추면 고스란히 파도에 잡혀 신발과 바지는 소금물 세례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벌칙은 행복한 벌칙입니다. 이 길을 걸으며 손녀와 손잡고 같이 걷고 있는 저의 모습을 그리며 스스로 행복해하기도 하였습니다.

길을 걷다가 지방방송국에서 취재 나온 분들과 마주쳐 간단한 인터뷰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방송국인지도 모르겠고 언제 방영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길을 걸었고, 파도와 멋진 추억을 쌓았으며, 우리끼리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추억을 만든 것으로 이미 충분합니다. 인터뷰 역시 우리에게는 하나의 추억입니다. 너덜길을 많이 걷고 물 벌칙을 받아 대부분 발목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약 7시간에 걸쳐 20km를 걸은 후에 택시를 타고 영일대로 이동하였습니다. 유원지답게 영일대에 들어서자마자 정신이 없어졌습니다. 길은 차로 가득하고 해변에는 길거리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고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며 지금까지 걸어 온 곳과는 사뭇 다른 세상이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내일은 철인3종경기가 열린다고 현수막과 안내물이 넘쳐흐르고 모 식당의 개업을 축하하는 자리에는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면 도로에 있는 숙소를 예약한 후에 허기진 배를 고기로 가득 채우며 즐거운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늦은 저녁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포항제철의 야경을 보았습니다. 마치 쇳물이 흐르는 관을 연상시키듯 시뻘건 관이 빛을 발하는 조명이 가관이었습니다. 사진을 찍었지만 먼 곳에서 찍어서 잘 나오지 않은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다음 날 아침 영일대 해안가를 걸었습니다. 영일대(迎日臺)는 일출을 맞이하는 곳입니다. 아침에 영일대에 올라 포항제철과 끝이 없는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희망과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영일대 해안에는 철인3종 경기가 진행되어 곳곳이 통제 구간이었습니다. 사이클을 타고 달리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선수들을 보았습니다. 그분들은 달리고 우리는 그 옆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 분들의 유니폼에는 각자의 이름이나 자신을 상징하는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그 중에 ‘00파파’와 ‘제 남편’이라는 글자가 기억에 남습니다. 모두 가족을 생각나게 하는 글자입니다.

그 글을 보며 우리 가족을 다시금 떠올립니다.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장모님만 생존해계십니다. 딸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고, 며칠 후에는 태어날 손녀를 만나게 됩니다. 아내와 나는 서로 아끼며 존중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곧 태어날 손녀를 만나면 이제와는 전혀 다른 가정이 될 것입니다. 새로운 생명의 출현은 새로운 가정의 분위기를 만들어줍니다. 앞으로 저와 아내는 함께 어떻게 손녀와 즐거운 추억을 쌓고 같이 살아갈지 행복한 고민을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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