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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고 May 04. 2021

[걷고의 걷기 일기 0213]

신독(愼獨)과 SNS

날짜와 거리: 20210503  11km  

코스: 홍제천과 상암동 공원 나들이

평균 속도: 3.9km/h

누적거리: 3,842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병원에 들려 약을 처방받은 후 홍제천부터 걷기 시작했다. 홍제천과 불광천에도 봄이 찾아와 녹음이 가득하다. 도심 속 개천이라기보다는 깊은 산속에 들어온 느낌이 들 정도로 진한 녹색으로 가득하다. 같은 길을 걸어도 계절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보며 걷는 재미는 색다르다. 월드컵 공원에 드리워진 그늘과 햇빛, 생동감 넘치는 나무와 가냘픈 나무의 조화가 아름답다. 난지천 공원에 있는 연못이 마치 깊은 계곡처럼 느껴지며 햇빛으로 인한 음양의 대비가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문화 비축기지에서 매봉산 정상에 올랐다. 설치 중이었던 정상 뒤편에 데크길이 만들어졌다. 아직 완공되지는 않았지만. 시민들이 걸을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주었다. 데크길로 편안하게 걸을 수 있어서 좋지만, 예전 길의 그윽함과 고요함이 없어서 조금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다. 예전에 이 길을 걸을 때에는 마치 숨어있는 비경을 만난 느낌이었다. 많은 사람들을 고려한 배려와 길의 고유함을 유지하는, 개발과 보존 사이의 갈등을 잠시 느끼기도 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신독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많이 느낀다. 신독은 홀로 있는 시간에 자신의 언행을 삼간다는 의미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자신을 통제하거나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자신에 대한 성찰과 수행을 하는 것이다. 스님들은 일 년에 두 번 안거 기간을 갖는다. 여름에는 하안거, 겨울에는 동안거로 각각 삼 개월간 처절한 수행을 한다. 물론 안거 기간에 대중들이 모여 살기에 신독이 의미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주리를 틀고 앉아서 망상에 빠지느냐 화두에 몰두하느냐는 오직 자신만이 알 수 있다. 망상에 빠진 것을 빨리 알아차리고 다시 화두에 집중해야 한다. 입선하자마자 방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입선과 방선의 구분이 없는 참다운 수행이 바로 신독이다. 

 

혜국 스님께 직접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대중들과 떨어져 홀로 깊은 산속에서 수행을 하다 보니 외로움에 사무쳐 힘들어서 성철 스님께 전화를 드렸다. 성철 스님께서는 목석이 아닌 이상 어찌 감정이 없겠느냐고 혼내시면서 당신이 쓰시던 찌그러진 쇠 주전자를 보내주시며 찬 물을 담아 머리에 이고 좌선에 임하라고 하셨다. 좌선하다 잠에 빠지거나 잠시 화두를 놓치면 주전자가 넘어지며 물을 뒤집어쓰길 반복하면서 화두에 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법정 스님도 한 여름잠에 빠지거나 게을러지는 것을 삼가기 위해 낫으로 대나무를 날카롭게 다듬었다고 한다. 어떤 수행자는 날카로운 칼을 바닥에 새워놓고 잠에 빠지면 이마를 찧어가면서 수행을 했다고 한다. 신독이란 이만큼 어려운 것이다. 홀로 있는 시간에 자신을 삼간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신독과 대비되는 것이 바로 SNS라는 생각이 든다. 신독은 자신의 내부를 가득 채우는 일이고, SNS는 자신의 외부를 가득 채우는 것이다. 신독은 자신을 홀로 가두는 것이고, SNS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신독을 통한 자신은 충만하게 되고, SNS을 통한 자신은 점점 비어 가게 된다. 신독의 결과는 자신이 주인이 되는 것이고, SNS의 결과는 타인들의 시선이 자신의 주인이 된다. 사진을 보면 일상을 SNS에 올리는 것이 아니고, 멋진 사진을 올리기 위해 일상을 희생하고 있다. 또한 극적인 장면을 만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거나 연출하기도 한다. 사진 속에서도 진실과 거짓이 있다. 빼어난 거짓이 빈약한 진실을 덮는다. 나중에는 진실과 거짓과의 구별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자신을 만들어내면서 점점 자신은 ‘속 빈 강정’이 되어간다. ‘거짓 자신’이 ‘진짜 자신’이 되어가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한다. 

 

 우리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관계는 그만큼 삶 속에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진실이 없는 관계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고, 바람 불면 날아가는 꽃가루와 같다. 사람들이 신독보다 SNS에 빠지는 이유는 자신을 드러내어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과, 많은 구독자를 확보해서 경제적인 이익을 보고자 하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물이 차면 저절로 넘친다. 신독을 통해 내면을 가득 채우면 사람들이 저절로 알아보고 존경하며 가르침을 요청한다. 굳이 자신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 어쩌면 이런 분들은 드러내는 것을 지극히 싫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속은 빈 상태에서 남이 자신을 알아보고 존중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돌이 금이 되길 바라는 것과 같다. 돈을 종처럼 부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돈을 벌게 되면 돈이 사람의 주인이 된다. 노동과 노력이 없는 부귀는 독이 되어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 수도 있다. 각자 타고난 그릇의 크기가 있는 것 같다. 노력을 통해 그릇의 크기를 확장시킬 수도 있고, 그릇을 독으로 넘치게 만들어 자신과 타인, 주변 환경에 큰 해를 끼칠 수도 있다.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고 있고 재택근무도 늘어나고 있다.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줄어들면서 저절로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백신 접종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고, 집단 면역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다. 어떤 학자는 코로나도 독감처럼 매년 예방 주사를 맞을 수도 있다고 한다. 백신이 신체의 면역을 키우는 것이라면, 신독은 홀로 지내는 시간을 통해 마음과 정신의 면역을 키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는 신독과 SNS을 위한 좋은 기반을 만들어주고 있다. 선택은 각자에 달려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코로나 이후 삶의 질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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