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223]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2)

by 걷고

날짜와 거리: 20210520 – 20210522 24km

코스: 서울 둘레길 우이동 코스 외

평균 속도: 3km

누적거리: 4,007 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걷기 좋은 날씨다. 햇빛은 강하고 산속은 나무 그늘 터널이 만들어져서 걷기가 좋다. 미세먼지도 사라졌다. 점점 걷는 것이 더 좋아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매일 걷기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걷기 동호회에서 서울 둘레길 안내를 하고 있다. 사전 답사는 평일 오전에 진행하고, 공식 걷기는 주말 오후에 진행한다. 답사 시에는 체력에 자신이 없는 분들이 참석해서 산책하듯 걸으며 건강을 회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공지는 내가 올리지만, 참석 댓 글은 회원들의 선택이기에 참석자들에 대한 선별과 한계를 정할 수 없다. 다음번 공지에는 답사 시에 걷기에 자신 없는 분들의 참석을 희망한다는 안내를 덧붙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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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유제프 차프스키 저)를 읽었다. “유제프 차프스키는 소비에트 연방 그래조베츠 포로수용소에 함께 수용되어 있던 포로들을 위해 1940년부터 이듬해인 1941년까지 마르셀 푸르스트를 주제로 강의를 했다.” (편집자 서문) 서문에서 밝혔듯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포로수용소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소설의 저자 프루스트에 관한 강의를 한 것이다. 그 강의 내용을 정리해서 출간한 책이 바로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이다. 그들은 왜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극한의 상황과 공포 속에서 건축, 책,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 관해 강의를 하고 들으며 인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을까?


저자가 마르셀 푸르스트의 삶을 강의 주제로 생각한 이유가 무엇일까? 저자는 강의 속에서 책의 내용뿐 아니라 프루스트의 삶에 대하여 많은 부분을 언급하고 있다. 심지어는 프루스트가 겪고 있는 질병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를 하고 있다. 프루스트가 극심한 신체적 고통에 시달렸고, 소음에 관한 광적인 공포로 방음을 위해 코르크로 감싸고 있는 방에서 글쓰기 작업에 몰두했다고 한다. 프루스트가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목숨을 소설로 대체하고 있다고도 했다. 자신이 죽어가는 만큼 소설을 완성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글을 계속 쓰는 프루스트를 강의하며 저자는 삶의 의지를 다짐하고 있을 수도 있고, 그 점을 동료 포로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는 생각이 든다. 프루스트가 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자신이 작가임을 인식하며, 자신은 죽더라고 작가의 유산인 소설을 남기겠다는 의지가 포로들에게 시사하는 점이 매우 클 것이다.


고통 속에서 인간임을 잊어버리고 살아남기 위해 짐승처럼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모든 희망을 포기한 채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견뎌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강의를 하는 사람들이나 듣는 사람들 모두 강의를 통해 그간 잊고 있었던 정체성을 되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인간임을 재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이 짐승들과 다른 점은 사색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한다. 강의를 하며, 또 들으며 스스로 자신이 인간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삶의 의지를 다져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프루스트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은, 권수가 많은 ‘큰 소설’들을 대하소설이라 부른다. 이 명칭에 부응하는, 다시 말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정도에 이르는 소설은 없다. 이에 대해 설명해보겠다. 강물에 가끔 나무 조각이나 시체, 진주 따위가 같이 떠내려오는데 이를 강물의 특수한 측면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대하(大河)의 흐름이란 이런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고 지속되는 흐름 자체를 가리킨다. …… 이런저런 인물들에, 다시 말해 그들의 삶이 한 번도 멈추지 않고 ‘흐르는 것’에 놀라게 된다.” (본문 중에서)


이 내용이 강의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을 수용하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흐르는 것이 인생이다. 원하는 일만 생기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장애물들이 삶 앞에 놓여있다. 시체가 있는가 하면 진주도 있다. 오물이 있는가 하면, 꽃이 떠내려오기도 한다. 강물은 오물을 기피하지도 않고, 꽃만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시체를 보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진주를 보고 욕심내지도 않는다. 그냥 삶이라는 강물에 우연히 또는 어쩌다 떠내려오는 물건에 불과하다. 그 물건들을 품고 아무 일 없듯이 흘러가는 것이 강물이고 우리네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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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흐름이다. 우리의 역할은 주어진 상황을 수용하며 흘러가는 것이다. 태어남도 죽음도 우리가 결정할 수 없다. 삶과 죽음 역시 하나의 흐름 속에 존재한다. 삶이 끝나고 죽음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삶의 흐름이 죽음이고, 죽음의 흐름이 삶이다. 나의 몸은 죽지만, 유전자는 자손들에게 연결된다. 부모님을 안 계시지만, 유전자가 내게 남아 있듯이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모든 삶은, 생명과 죽음은, 모든 존재는 하나로 연결되어 큰 강이 되고, 더 큰 강으로 흘러간다. 강은 계속 흐른다. 흐르지 못하면 강이라 부르지 않고 호수나 저수지라고 부른다.


최근에 프로 스포츠단 상담심리사에 지원했지만 탈락했다. 아직 상담사로서 부적한 부분도 많지만, 나이라는 장애물이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 장애물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점점 더 높아질 것이다. 상담심리사로서 활동을 못 할 수도 있다는 절망감이 들기도 했다. 상담심리사는 나의 정체성 중 하나이다. 포기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자신에게 던지기도 했다. 최근에 만난 지인에게 사찰에서 상담 봉사를 하고 싶다는 얘기를 전하고 필요로 하는 곳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 아내도 이제 상담사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버리고 봉사 활동하며 살아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격려를 해주었다. 고맙다. 이 책은 상담심리사로서 정체성을 포기하려고 할 때 만난 책이라 더욱 고마운 책이다.


정체성은 포기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인간임을 포기한다면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정체성을 포기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고,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어도 인간임을 잊고 살고 싶지도 않다. 그럴수록 더욱더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갈 것이고, 정체성이 나를 버티게 만들어 줄 삶의 기둥이 될 것이다. 포로들에게 강의와 청강이 생존과 삶의 기둥이 되듯이. 빅터 프랭클은 포로수용소에서 ‘의미 치료’라는 심리치료 기법을 만들어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삶의 의미와 가치를 잃지 않는다면, 또는 발견해 낸다면, 버틸 수 있고 심지어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했다. 비록 포로로서 신체의 자유는 구속된 상태지만, 마음의 자유는 구속될 수 없다고도 했다. 마음의 자유는 오직 자신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책상 위에 ‘한 권으로 읽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이 놓여있다. 사전에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라는 책을 읽어서 책의 개요와 저자의 상황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어 책 읽는 재미가 남다를 수도 있다. 포로들은 강의와 청강을 통해서 힘든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다. 지금 나는 걷기, 명상, 독서, 글쓰기를 하며 하루하루 보내고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아직 못 버린 욕심이 많이 남아있다. 이 욕심은 어쩌면 아직도 왕성한 삶의 에너지가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이런 욕심과 에너지는 사그라질 것이다. 하나의 사그라짐은 다른 하나의 되살아남이다. 욕심의 사라짐은 바로 지혜의 발현으로 연결된다. 지금 나는 욕심에서 지혜로 나아가는 성장통을 겪고 있다. 이 역시 큰 강물의 흐름이다. 흐름을 인식하고 흘러가는 것이 인식하지 못하고 흘러가는 것보다는 조금 더 의미 있는 삶이 될 수도 있다. 욕심이다. 이 욕심마저 내려놓아야 한다. 책 읽을 설렘이 며칠 잘 흘러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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