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늘 하던 일, 명상과 책을 읽었다. 책 내용 중 기억하고 싶은 내용을 독서카드에 옮겨 쓰고 있는데 두통이 시작되고 목 뒷부분을 뭔가 누르는 느낌이 든다. 거북목을 교정하기 위해 나름 노력 중이다. 지난 번 목 디스크 증상이 있다고 해서 물리 치료를 받은 후 자세를 교정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명상 후 등과 머리를 벽에 붙이고 곧은 자세로 앉아서 자애명상을 20분 정도 했다. 목 뒷부분에 하중이 느껴졌다. 오후 세시 경 걷기 위해 집을 나섰다. 여전히 햇빛은 강하지만 가벼운 차림으로 나가니 몸과 마음이 가볍다. 햇빛을 가릴 수 있는 코스로 정해서 약 두 시간 반 정도 걸었다. 일요일에 집안에서 TV만 보는 것 보다 두 세 시간 정도 걸으면 컨디션도 좋아지고 운동을 했다는 뿌듯함도 느낄 수 있다. 앞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건강이니 매일 두 시간 정도 걷는 것을 일상화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약 35년 전 송광사 ‘단기 출가’에 참석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불교 공부를 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 당시 법정스님께서 회주 스님으로 단기 출가를 이끄셨고, 스님들께서 지도해주셨다. 한국 전통 선(禪)인 간화선 대신 위빠사나를 공부했다. 그 당시만해도 위빠사나는 매우 생소한 수행법이었다. 4박 5일 진행되는 내내 이유도 모르고 그냥 시키는 대로 따라 했다. 주리를 틀고 앉아 호흡에 따라 아랫배가 올라오거나 들어가는 것을 지켜봤고, 슬로우 비디오 연출하듯 아주 천천히 걸었던 기억만 있다. 지금에서야 그 공부법의 중요성과 이유, 진행 방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둔한 사람이다. 수행 지도를 해 주셨던 인연 있는 스님께서 프로그램 마친 내게 책 한 권을 선물해 주셨다. 그 책이 바로 ‘Zen Mind, Beginner’s Mind’ 였다. 영문판이어서 조금 읽다가 포기했던 책이다. 한참 후 그 책이 ‘선심초심’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며칠 전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예전에 다른 사람이 번역한 책을 한번 읽기는 했지만, 그 당시에는 그 책과 시절인연이 닿지 않았던 것 같다. 이번에 우연히 발견한 이 책을 차분히 읽게 되었다. 초심의 중요성, 명상법, 삶이 괴로운 이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람과 상황을 대해야 하는지 등을 이번에 읽으면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책도 시절 인연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초심을 강조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35년 전 처음 단기 출가에 참가했던 나 자신의 초심을 돌아볼 수 있었다. 35년 세월 동안 공부가 익은 것이 아니고 망가지고 있었다. 이 책을 지금이나마 만날 수 있게 되어 천만다행이다. 요즘 아침마다 명상을 하면서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호흡에 집중이 안 되고 망상만 떠오르거나, 어떤 주제를 갖고 앉아서 고민하거나 생각하고 있었다. 명상하는 시간에 망상만 붙들고 있었다. 이 책을 읽은 후 초심으로 돌아가 좌복에 앉았다. 망상 속에서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 공부 진전이 없어서 답답하던 차에 이 책은 감로수가 되어 공부에 대한 고민과 갈증을 풀어주었다.
“망념이 일어나는 것이 수행입니다. ‘이건 망념이군’이라고 알아차렸다면 그 자체가 깨달음입니다. 망념에 휘달리지 않고 그저 관찰만 할 때, 고요하고 평화로운 본래 마음 상태에 머물 수 있을 것입니다. (……) 어떤 것도 기대하지 말고 그냥 방석 위에 앉아있기만 하십시오.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본성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되찾는 것입니다.”
망념으로 고민하던 차에 이 글을 읽으며 위로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알고 있었던 것을 잊고 살았는데, 이 글은 공부법을 회상시켜 주면서 용기를 주었다. 고맙다. 이 책이 유일한 저서인 스즈키 순류 선사(禪師)는 일행삼매(一行三昧)를 강조하셨다.
“절을 할 때는 그저 절만 해야 합니다. 앉아있을 때는 그저 앉아 있기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한다면 보편적인 본성이 거기에 현존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면 보편적인 본성인 여러분의 진정한 본성을 완전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주변상황이 삶과 하나일 때, 달리 말해서 여러분 자신이 일어나고 있는 일을 늘 각성하고 있을 때,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망상 속에서 문제에 빠진 다음, 망상 속에서 그것을 풀려고 애씁니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실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글에서 또는 사람들과 얘기를 할 때, 지금-여기를 많이 강조해왔지만, 내 삶 속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얘기 하면서도 정작 자 자신은 자꾸 발목이 잡힌다. 이런 어리석음의 반복된 결정체가 ‘지금의 나’이다. 책 내용 중 아주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
“불자의 삶은 업에 따라 사는 삶이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수행의 목적은 실로 짠 옷감처럼 업으로 짠 마음을 잘라내는 데 있습니다.”
업보를 받으며 살지만, 그 업으로부터 벗어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무슨 행동을 하든, 어떤 말을 하든, 어떤 생각을 하든 모두 업이 된다. 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명상이다. 명상을 통해 올라오는 생각들을 붙잡지 않고 흘려 보내는 것이 ‘업으로 짠 마음을 잘라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망념이 일어나는 것이 수행이다.”라는 말씀은 심오한 수행의 의미를 아주 단순하고 쉽게 제대로 핵심을 표현한 것이다. 업으로 짠 마음이 바로 망념이고, 그 망념을 잘라내는 것이 바로 명상수행이다.
어리석어서 참 긴 세월을 허망하게 날려버렸다. 그럼에도 꾸준히 마음공부에 대한 생각만은 갖고 있었다.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책 ‘선심초심’ 덕분에 이제 잠에서 깨어났다. 책과의 인연이, 스님과의 인연이 이렇게 연결되고 있다. 그 스님께서 내게 35년 전에 주셨던 이유가 이제서야 드러났다. 책을 선물해 주셨던 스님은 오래 전에 입적하셨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 꾸준히 정진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스님 역시 35년 전 책 한 권을 통해 정진하라고 말씀 하시고 있다. 스님, 감사합니다.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정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