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친구가 ‘스노 크래쉬’라는 두 권으로 된 장편소설을 선물했다. 그 친구는 책 선물을 하며 메타버스 (Metaverse)에 대한 이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SF 소설책이라고 했다. 메타버스는 ‘현실세계’를 의미하는 ‘Universe’와 ‘가공, 추상’을 의미하는 ‘Meta’의 합성어로 3차원 가상세계를 뜻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 권의 책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과연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기도 했다. SF 분야는 별로 관심이 없는 분야이고 더군다나 메타버스 관련된 책이라고 하니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한 분야의 책만 읽지 말고 다양한 책을 읽어보라는 그 친구의 고마운 배려를 무시할 수가 없어서 읽기 시작했다. 메타버스 얘기를 신문이나, TV, 기타 매체를 통해서 듣긴 했지만 정확한 의미가 와닿지는 않았다. 최근 주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메타버스 관련주를 검색해 본 정도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메타버스가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고, 단순히 가상현실을 컴퓨터 내에서 구현해 낸 것이라는 생각만 갖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이 책의 저자인 닐 스티븐슨이 이 소설을 통해 처음으로 메타버스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컴퓨터 관련 용어나 지식이 전무한 나로서는 이 책을 읽으며 어떤 부분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일반 소설을 읽는 방식으로 줄거리를 따라가며 읽었다. 그럼에도 읽고 난 후 뭔가가 마음속에 남아있어서 글로 정리하고 싶어졌다. 가상세계와 현실세계가 서로 뒤엉켜 있다는 점이 혼란스럽게 느껴졌다. 전화 통화를 하며 상대방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질문에 “가상 또는 현실 중 어느 곳을 얘기하느냐?”라는 질문을 한다. 서로 먼 곳에 떨어져 있어도 아바타를 통해서 바로 앞에 있듯이 대화를 나누고, 그 대화 내용에 따라 현실 생활에 접목시켜 결정하고 행동한다. 아바타의 모습에서 상대방의 경제적, 지적 수준을 파악할 수도 있다. 아바타 모양의 정밀도와 표현력을 통해 상대방의 수준을 가늠할 수도 있다. 가상세계에서도 수준의 차이는 여전히 존재하고, 그 차이는 현실의 조건에 따라 만들어진다. 유토피아를 꿈꾸며 만든 가상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차등이 존재한다. 삶의 수준 차이는 어쩌면 인류 탄생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빈부의 차이, 사회적 위치의 차이, 체력의 차이, 언어의 차이, 사고방식의 차이는 인정하고, 각자 자신에 맞는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 될 수도 있다.
기업의 능력, 즉 가상현실 구축과 컴퓨터를 활용하는 기술이 정부를 능가하게 되며 정부는 일류기업의 하수인 역할을 한다는 점도 현실과 맞아떨어지고 있다. 정부의 자원은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므로 기업에 의지할 수밖에 없고, 이런 상황으로 인해 결국 정부는 기업의 지시를 따르게 된다. 그것도 최고 수준에 있는 상위 기업의 지배를 받게 된다. 반면 정부는 일반인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보안을 철저하게 하며 정부의 지위를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요즘 코로나에 대한 대처 방법으로 정부는 안전 문자를 발송하거나 백신 접종을 위한 안내, 재난 지원금 안내 및 사용법 등을 모두 기업에서 만든 방편을 이용하고 있다. 정부가 이런 기업들을 통제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기업의 통제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최근에 중국에서는 기업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는 이유도 아마 정부가 자신의 통제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불안 때문인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든다. 자신이 없으면 불안감이 높아져 통제를 강화하게 된다. 결국 통제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미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인간의 기능은 기계의 사용으로 인해 약해지고 기계의 통제를 받는다는 것이 현실화되어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헬멧을 쓰고 고글을 쓰게 되면 움직이며 컴퓨터를 이용해서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도 있고,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좀 더 자세히 파악할 수도 있다. 상대방의 몸속에 지닌 무기의 종류와 화력들을 파악할 수도 있고, 몸 안에 여러 기능을 지닌 도구들을 장착해서 다니며 몸을 보호할 수도 있다. 아주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도 있다. 쿠리에(배달원)가 우편물 배달을 위해 보드를 타고 작살로 자동차와 연결해서 무임승차하며 달리는 모습은 앞으로 곧 세상에 나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자동차는 작살을 떨궈내고 쿠리에를 떼어버리기 위해 작살이 붙지 못하는 재질을 사용하고 다양한 변칙적인 운전 기술을 가르칠 수도 있다. 음식 배달하는 사람들은 빨리 도착하기 위해 위험한 상황을 감수하기도 한다. 배달 오토바이와 자동차와의 보이지 않는 전쟁은 이미 도로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책에 나온 쿠리에의 방식이 언젠가 등장할 수도 있다.
메타버스 내에 메타 바이러스가 존재한다. 세상 어디에서든 선과 악은 상존한다. 이 규칙은 가상현실 속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현실 사회의 마약이나 유해한 약물이 존재하듯, 가상현실에서도 그와 비슷한 유형의 바이러스가 존재하고, 바이러스로 인해 사용자가 실제로 정신적, 신체적 기능에 손상을 입기도 한다. 머리에 안테나를 심어서 사람들을 조정하는 통제방식은 마치 새로운 종교가 광신자를 만들어내는 것과 흡사하다. 기업은 이런 통제방식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기계화, 조직화하며 통제한다. 인간으로서의 기능을 점점 상실하게 되며 보이지 않게 노예가 되어간다는 끔찍한 상상도 하게 된다. 가끔 영화에서 미디어 황제가 미디어를 이용해 세계인을 통제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혹세무민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정부가 국민을 통제하는 방식은 겉모습만 다르지 실제로는 혹세무민의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통제해야 한다. 언론의 자유가 없는 한 일반인은 정부의 통제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앞으로도 이런 방식은 점점 심해질 것이고 약해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정보가 바로 권력이고 힘이다. 올바른 정보가 없다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국가는 정보를 점유하려 할 것이고, 정보 점유를 위해 기업을 통제할 것이고, 기업은 정부를 도와 국민의 통제를 돕게 될 것이다. 정보와 통제력은 결국 기업이 지니게 될 수도 있다. 결국 힘없는 국민만 더욱 통제의 대상이 되고, 사회와 기업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게 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보트 피플도 나온다. 큰 배에 붙어서 다니며 보트 피플끼리 서로 싸우고 어울리며 살아간다. 각국에서 온 보트 피플들은 각자 생존을 위한 힘든 삶을 이어간다. 정보의 부족이나, 접근 권한이 없거나, 사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결국은 정보화 세계에서 보트 피플이 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젊은 세대에 비하면 정보의 보트 피플이다. 모바일 뱅킹을 하고 SNS를 하는 이유도 보트 피플 중 최악의 난민이 되지 않기 위한 나만의 처절한 생존 방식이다. 점점 나이 들어가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정보의 보트 피플이 되어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적어도 기본적인 일상생활은 영위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는 있다. 앞서 가지는 못하더라고, 보트피플에서 낙오자가 되지는 말아야 한다. 꾸준한 관심과 노력밖에 없다.
메타버스의 좋은 기능도 많을 것이다. 굳이 해외에 근무하는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먼 곳을 여행할 필요도 없어지고, 아바타를 통해 사업을 진행할 수도 있다. 반면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만나지 못하고 아바타를 만나며 상대방에 대한 판단을 한다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다. 어쩌면 관상을 보는 사람들은 직업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또한 수많은 정보를 쉽게 접하며 삶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잘 활용하면 삶의 질을 높일 수도 있지만, 왠지 기초지식이 부족한 나로서는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많아질 것 같다는 두려운 생각이 앞선다. 아직 메타버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생긴 기우일 수도 있다. 이 책을 완독 한 후에 누군가가 내게 메타버스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다른 행성에 지구와 같은 세상을 하나 건설하는 것이고, 나의 복제품을 그 행성에 이주시켜 두 개의 ‘나’가 지구와 행성에서 활동하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