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 생신
날짜와 거리: 20211202 - 20211205 25km
코스: 북한산 형제봉 외
평균 속도: 4 km/h
누적거리: 5,539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장모님 84세 생신날 식구들이 모여 식사를 했다. 장모님 댁에 들어가니 선물이 가득하다. 장모님 여동생이신 처이모님께서 떡을 보내오셨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큰아들은 꽃을 보내왔고, 작은 며느리는 편안한 신발을, 장녀인 아내는 용돈을 드렸다. 제주도에 머물고 있는 외손녀는 갈치를, 박사학위 준비 중인 손자는 황남빵을 보내왔다. 받으신 선물을 상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다. 한 상 가득 생신 선물을 받으셨다. 둘째 아들 부부와 우리 부부가 장모님을 모시고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함께 했다. 장모님께서는 행복해하시며 소주도 한 잔 곁들여 식사를 즐겁게 하셨다. 식사 후 장모님 댁에 모여 작은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노래를 부른 후에 샴페인으로 축배를 마셨다. 장모님 생신 잔치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장모님께서는 매일매일이 당신 생신이라고 하시며 즐거워하셨다.
장인어른 돌아가신 지 7, 8년이 흘렀다. 처음에는 장모님께서도 힘들어하셨다. 노년에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장모님을 지켜보며 확인할 수 있었다. 장모님께서는 고통스러운 밤을 견디기 위해 성경 필사를 두 번이나 하셨다. 책도 읽으시고 신문을 꼼꼼히 챙겨 읽으셨다. 모두 시간과의 투쟁을 위한 방편이다. 나중에는 작은 구슬을 붙여 그림을 완성하는 작업을 하시며 밤을 지새우기도 하셨다. 눈에 무리가 와서 이제는 그 작업은 더 이상 하시지 못하게 되었다. 낮에는 바쁘게 보내신다. 노인회장 역할을 하시며 주변에 챙길 일도 많으시고, 유관 사람들과 함께 식사할 일도 많으시다. 가끔 시장이나 정부 관리들과 좌담회나 식사를 하시기도 하고, 음악회나 강연회 초대받아 외출하시기도 한다. 홀로 댁에 계실 때는 주변의 힘든 노인들을 가끔 집으로 모셔 식사를 대접하시기도 한다. 연세에 비해 바쁘시고 매우 활동적으로 잘 살고 계신 것 같아 송구스러우면서도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장모님은 슬하에 딸, 두 아들, 사위와 두 며느리, 한 명의 외손녀와 두 명의 손자들, 증손자와 증손녀가 있다. 특별히 경제적으로 매우 풍요롭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크게 힘들게 살고 있는 자식들이 없고, 큰 사고나 질병이 있는 사람들도 없다. 장모님께서는 갑상선암과 대장암 수술을 오래전에 받으셨지만, 지금은 건강하게 지내고 계신다. 허리와 무릎 통증을 느끼시고 계시지만 홀로 거동을 하시는 데 큰 불편은 없다. 축배를 드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50%는 감사함을 느끼고, 50%는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다. 가끔 저녁에 샤워 후 편안하게 눈을 감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에게 잘 대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유독 한 사람에게는 그 마음이 잘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일들을 겪으셨고 잘 살아오신 분께서 당신을 유독 힘들게 만들었던 한 인사에 대해서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마음 아프신 것 같다. 언젠가는 내려놓으실 날이 올 것이다.
약 4년 전 손녀가 태어났을 때, 장모님께서 우리 집에 머무시며 일주일 간 함께 지내신 적이 있었다. 내게는 첫 손녀이고, 장모님에게는 첫 외증손녀이다. 집안에 여성 사대(四代), 장모님, 아내, 딸, 손녀가 모여 지내는 모습이 매우 신기했다. 가족이란 이렇게 모여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대가 함께 모여 사는 모습은 요즘에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말도 못 하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갓 태어난 아이의 울음소리와 숨소리, 표정과 행동 하나하나에 온 식구들이 온 신경을 쓰며 아이 시중을 들고 있다. 말 없는 말을 알아들어야만 했고, 알 수 없는 행동거지의 의미를 파악해야만 했고, 아이가 깨면 모두 깨어났고, 아이가 잠들면 모두 잠들었다. 그 아이는 지금 씩씩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고, 남동생이 수개월 전 태어났다. 그 아이에게 베풀었던 관심과 사랑은 자연스럽게 둘째 아이에게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
순환이다. 태어남과 죽음 역시 순환이다. 언젠가 우리 모두 죽는다.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삶의 유전자가 우리 아이들과 손자들, 증손자들에게 전달되어 우리 삶은 계속 이어진다.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남에게 나쁘게 대하시지 않으시고 열심히 살아오신 덕분에 그 자손들도 큰 어려움 없이 살아가고 있다. 좋은 유전자가 이어진 것이다. 삶의 모습은 대물림이 된다. 오랜 기간 뿌리내린 가족의 역사에 거스르며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물론 개천에서 용이 나듯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며 잘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의 성취는 일반적인 사람들에 비해 엄청난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삶의 방향을 튼다는 것은 큰 강줄기의 방향을 바꾸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자식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은 부모의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이다.
언젠가 장모님께서 돌아가시고 나면 나의 부모님들은 모두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그 얘기는 곧이어 나의 죽음이 찾아온다는 얘기다. 부모님께서 살아오면서 늙고 병들고 죽어가듯이, 나 역시 그 틀을 벗어날 수 없다. 태어남은 늙고 병들고 죽음을 전제로 시작된다. 태어남이 없으면 자동적으로 다른 현상들도 사라진다. 마찬가지로 사랑이 없으면 미움도 없고, 즐거움이 없으면 괴로움도 없으며, 추위가 없으면 더위도 없다. ‘이것으로 인해 저것이 발생한다’는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는 의미다. 아주 쉽고 단순한 진리를 깨닫기가 참 어렵다. 삶의 즐거움은 고통을 수반하고 있다. 이 진리만 알고 있어도 세상은 살아가기가 참 편해질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명심할 일이 있다. 알고 있는 것과 체득한 것과의 거리는 상당히 가깝고도 멀다. 마치 머리와 가슴의 거리만큼 가깝고도 멀다.
장모님, 그동안 힘든 세월 살아오시느라 애 많이 쓰셨습니다. 이제 가슴속 모든 응어리 편안하게 내려놓으시고 마음속에는 평온함이,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한 나날을 보내시길 마음 모아 기원합니다. 비록 지금 모시지는 못하지만, 언젠가는 저희 부부가 모시며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아무 걱정 마시고 하루하루 즐겁고 건강하게 웃으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 맏사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