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몽상
최근 들어 문득 사진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걷는 것을 즐기게 되면서 멋진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고, 또 당시의 느낌을 짧은 글로 정리하고 싶어서입니다. 개인 블로그에도 올려서 다른 분들과 함께 공유하며 나누고 싶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그러나 워낙에 기계치에 가까운 저는 사진기의 복잡한 버튼들을 대하는 것이 겁이 나서 어찌 할 바를 모르는 탓에, 과연 제가 사진을 배울 수 있을지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하였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사진작가분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가 마련되어서 저의 이러한 고민을 조심스럽게 꺼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분 말씀이 요즘엔 카메라의 성능이 좋으니 염려하지 말고 그냥 많이 찍으면 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아주 제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요즘 분들은 사진을 배우는 것이 아니고 사진기를 배우고 있습니다. 자신이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사진기가 시키는 대로 사진을 찍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이 말씀은 제게 큰 격려가 되었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식사 후에 그 분 스튜디오에 들려 차 한 잔 나누며 사진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때 제게 보여주신 약100년 전에 제작된 사진기에는 렌즈 외에는 별다른 기능이 없었습니다. (제가 잘못 이해 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제 눈에는 그리 보였습니다.) 그 분은 그 사진기를 아주 소중하게 다루시며 요즘에도 그 사진기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또 교육자재로도 활용하신다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전도몽상이라는 글귀가 생각났습니다. ‘전도몽상’이란 앞뒤가 바뀐 꿈과 같은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뜻입니다. 자신이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고 사진기가 시키는 대로 찍는 모습, 참선한다고 앉아 있으면서 망상만 피우는 모습, 자동차를 편리하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애착과 집착을 갖고 있는 모습들이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전도몽상 된 삶의 모습입니다. 또한 살기 위한 집이 아니라 투자 대상으로서 집을 구입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축적하기 위해 살고 있고, 사람이 돈을 쓰는 것이 아니고 돈이 사람을 사용하는 모습 역시 그렇습니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는 모습,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고 타인에게 비춰진 삶을 사는 모습들도 모두 전도된 몽상입니다.
저 자신의 삶을 돌아봅니다. 삶의 과정에서 수많은 결정을 내려왔는데 그 가운데 잘못된 결정을 많이 내렸던 것 같습니다. 타인과 함께 하는 세상이기에 내가 소중한 만큼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했어야 하는데 늘 나 자신을 위주로 하는 결정을 내렸고, 나의 편안함과 이익을 위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어떤 일을 하면서 그 일에 최선과 집중을 다하지 못하고 만족해하지도 못했으며 늘 다른 일을 찾아다니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결과에 대해 자신의 결정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주변 상황과 사람들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날리곤 하였습니다.
결국 저 자신은 이기심으로 가득하고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해 집중하지 못했으며 모든 것이 내 탓이라는 단순한 이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삶은 그 자체로 이미 모두 이루어져있기에 그냥 주어진 삶에 만족하고 최선을 다하고 살면 되는데, 무엇인가 좀 더 편하고 좋은 것이 있을 것 같은 환상을 쫓아가며 현재의 삶을 잃게 되고 현재의 고마움과 행복을 잊고 살아왔습니다.
지환즉리 이환즉각 (知幻卽離 離幻卽覺) 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환상인줄 알면 떠나고, 떠나면 바로 깨달음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바로 보면 그 현상은 실재하지 않고 우리가 만든 하나의 환상과 환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진리를 알고 있으면서도 지행합일이 되지 않아 늘 갈등과 번민 속에 살아왔습니다. 전도 몽상으로 인한 괴로움을 정견을 통한 평온함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할 때입니다. 우리의 삶은 그 단순한 진리를 깨닫게 하고 마음 수행을 위한 좋은 터전이라는 것을 이제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2015.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