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의 나 (미래 일기)

미래 일기

by 걷고

연휴 중 ‘미래일기’라는 TV 프로그램을 우연히 시청하게 되었다. 세 사람의 연예인들이 나와서 약 40년 뒤의 자신의 모습을 만나는 자아성찰 프로그램으로 내게는 깊은 울림을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그중에 여배우인 K 씨의 내용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지금 30대 후반인 그 여성은 70대 후반의 자신과 남편의 얼굴을 보고, 늙음을 실감하며 서로 안쓰러워한다. 그런 분장을 해서 그런지 동작도 느려지고, 택시 안에서 영락없는 늙은이의 모습으로 졸기도 하고, 늙음을 인정하기는 싫지만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을 마주치며 어쩔 줄 몰라한다. 피아노 전공 교수인 남편은 부인만을 위한 퇴직기념 연주회를 멋지게 공연하며, 프러포즈할 때 연주했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신혼 초 살았던 집 근처를 돌아다니며 추억을 되새기기도 한다. 또한 부인이 스마트 뱅킹을 못하기에 혹시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면 부인이 어려움을 겪을까 염려되어 자세하게 알려주기도 한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고마움, 애틋함, 미안함, 안쓰러움, 죽음을 앞둔 안타까움 등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서로 울지 말라고 격려를 해 주기도 한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마지막에 K 씨는 길가에서 우연히 읽은 문구를 남편에게 얘기하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돈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은 중요하지 않지만, 돈으로 구할 수 없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 중요한 것이다.’ 아마 그 글귀는 K 씨가 앞으로 자신의 삶의 기준을 어느 곳에 두어야 하는지를 잘 표현한 것 같다.

그 프로그램을 보며 가슴이 먹먹해지며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70대 후반인 타인의 얼굴과 행동, 모습을 보며 나의 미래 모습을 보았고, 동시에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인생이모작을 위한 준비를 하며 세 가지를 기준으로 방향을 잡았다.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 남을 도울 수 있는 일, 그리고 일정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일. 이 세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일이 상담심리였다. 막상 자격증을 취득하고 200여 곳에 지원을 하였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없어 심리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 과정은 자신을 좀 더 단련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으며, 비록 상황은 변하지 않았으나 내면의 갈등은 많이 사라져서 지금은 편안하게 주어진 일을 하며, 앞으로 할 일을 위한 준비를 차분히 하고 있다.

설정한 세 가지 기준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일들은 다양할 텐데, 그간 너무 심리상담에 대한 환상과 집착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좀 더 넓은 시각으로 할 일을 찾아보게 되었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K양이 본 글귀가 떠오르며 너무 돈벌이에 집착하고 있는 나의 어리석음에 뼈저린 후회를 하기도 했다. 경제력은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는데 아주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만약 내가 곧 죽는다고 생각을 하니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중요성을 훨씬 더 많이 느낄 수 있었다. 건강, 가족 간 사랑, 추억, 따뜻한 마음, 미소와 웃음, 유머와 소소한 대화, 친구들과의 우정, 영적인 성장, 세상을 바라보는 건강한 시각, 균형 잡힌 사고, 분별없는 평등심, 화해와 용서 등등.

연휴 바로 다음 날 신문에 실린 ‘1.7평 독방에서 나를 만나다’라는 기사를 보았다. 참선 수행자를 위한 무문관 수행을 일반인들에 맞게 만든 수행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기사였다. 언젠가는 무문관 수행을 하고 싶다는 염원을 지니고 있었던 내게 그 기사는 미래일기라는 TV 프로그램과 함께 연결되어 강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내가 일 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10년 남짓일 것이다. 지금까지 너무 가장의 역할에 집착해왔던 자신을 보며, 나를 혹사시켰으면서도 정작 자신을 위한 휴식과 평온을 주지 못한 부분이 자신에게 미안했다. 사회생활의 명분으로 가정과 집사람에게 소홀하게 했던 부분도 미안했으며, 그간 만났던 많은 분들에게 몸, 마음, 입으로 지었던 모든 일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또한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돈보다 더욱 중요한 것들이 있음에 감사하고, 그 사실을 비록 늦게 알았지만 깨닫게 해 준 여러 상황에 대해 감사함도 느끼게 되었다.

죽음과 삶의 구분은 한순간에 일어나는 하나의 흐름일 뿐이다. 죽음을 바라보면 바른 삶에 대한 마음과 눈이 열린다. 그 열린 눈과 마음으로 바라 본 세상은 같은 세상이지만, 실은 엄청나게 다른 세상이다. 한 생각의 변화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변화시키고, 그 시각의 변화가 나를 변화시키며 주변과 세상을 변화시킨다. 미래일기라는 프로그램에 내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201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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