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의 나 (적선)

적선(積善)

by 걷고

며칠 전 아내가 하루에 한 가지씩 착한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 아내는 택배 아저씨에게 시원한 음료수 드리기, 아파트 경비원 분들에게 수박 드리기, 같은 아파트 노인 분들 병원에 따라가기, 동호회 탁구장에서 컵 닦기 등 일상생활 속에서 조용히 실천을 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막상 실행하려면 쉽지 않을 거 같은데 매일 꾸준히 실행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아침 출근 시 버스 앞좌석에 앉아 눈을 감고 음악을 듣다 잠시 눈을 떴는데, 확연하게 눈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임산부처럼 보이는 여성분이 제 앞에 서 있어서 잠시 갈등을 하다 자리를 양보하였습니다. 제 딸아이도 곧 출산을 앞두고 있기에 딸아이 생각이 나기도 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분 가방에 임산부 표식이 달려 있었습니다, 그 임산부는 웃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고, 버스에서 내리며 다시 제게 눈인사를 건넸습니다. 그 눈인사가 아직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으며 하루 종일 저를 기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분의 눈인사는 잠시 좌석 양보에 대한 갈등을 느꼈던 제 모습을 부끄럽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주위의 존재들에게 뭔가 착한 일을 하는 것을 적선이라 하고, 또 그 적선은 남이 모르게 하는 것이 좋다 하여 음덕을 베푼다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적선은 받는 사람이나 존재들이 좋아하는 만큼이나 또는 그 이상으로 적선을 베푼 사람들에게도 즐거움과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그 날의 눈인사가 저를 하루 종일 행복하게 만들었던 것이 바로 좋은 예가 될 것 같습니다. 적선은 타인을 위한 행위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위한 행위라 보는 것이 맞고, 그런 행위를 받아주는 적선의 대상자는 우리에게 적선을 베풀 기회를 주시는 분들이기에 당연히 고맙고 귀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뭔가 좋은 일을 했다고 자랑하고 하는 행위는 오히려 스스로 지은 복을 달아나게 하는 행동이고, 베풀었다는 생각으로 상대방을 무시하는 행위는 자신의 복을 차 버리는 행위와 같습니다.

적선을 한다는 것이 반드시 뭔가 상대방이 필요한 물건을 제공한다거나, 큰 노력이 필요하다거나, 돈이 많이 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웃는 얼굴, 따뜻한 말,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경청, 먼저 건네는 인사말 등도 일상에서 얼마든지 실행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적선입니다. 불교에서는 무재칠시(無財七)라는 말이 있습니다. 재물이 없어도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 보시라는 뜻입니다. 따뜻한 눈빛, 미소를 머금은 얼굴, 공손한 말씨, 예의 바른 몸가짐, 착한 마음, 자리를 양보하는 행위, 남의 마음을 헤아려 도움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불교에서는 보시행에는 세 가지가 없어야 한다고 합니다. 베푸는 자가 없어야 하고, 받는 자가 없어야 하고, 베푼 행위가 없어야 한다고 합니다. 만약 이런 것이 남아있다면 참된 의미의 보시는 이루어졌다고 할 수 없습니다. 베푸는 자는 베풀었다는 마음이 남아 있기에 기대 심리가 있을 것입니다. 받은 자는 받았다는 마음이 있기에 빚을 지고 있다는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베풀었던 물건이나 행위가 있다면 그 이상 받고 싶어 하거나 아니면 되돌려 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을 수 있습니다. 보시는 이런 마음으로 이뤄져야 참다운 보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시는 결국 어떤 자취도 남기지 않기에, 보시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자리를 양보한 행위도 제가 기억을 하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참다운 보시행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적선은 나와 남을 모두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아내의 일일 일선(一日一善)이 평생 지속되기를 바라며, 저도 일상 속에서 같이 동참하며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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